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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꾸꾸 Nov 29. 2022

[도쿄] 신맛 커피는 싫지만,  커피잔을 든 내가 좋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온 푸글렌 커피

안녕하세요. 저는 올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경주마처럼 살아온 27년의 인생을 뒤로 하고, 저에게 1년이란 선물을 주었습니다. 진정한 나를 찾고, 저 자신의 행복을 알아보기 위해서 말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이 일기장 이름을 꾸꾸씨의 행복여행이라고 지었습니다. 대학교 1학년 시절 행복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여행을 떠난 꾸뻬씨처럼, 저도 행복을 찾아 매일을 여행하는 여행자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이 일기장은 항상 행복하기만을 바랐던 제가, 행복을 찾기 위해 저에게 주었던 1년 간 겪었던 희로애락을 담은 일기장이에요. 행복했던 순간보다는 행복하기 위해 고민하고 처절하게 침잠했던 순간이 더 많기는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깨달은 게 있다면, 감정은 항상 요동치는 것이고, 요동치는 감정의 파도 위를 유연하게 헤엄쳐나가는 방법을 조금씩 배워나가면 계속해서 행복의 순간을 마주치게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행복했던 순간도, 슬프거나 외로웠던 순간도, 그 어떤 순간도 제 일기장에 담길 겁니다. 우리의 모든 감정은 소중하니까요.


"진한 감정들이 풍부하지 않은 삶이란 살아가기에 밋밋한 것이다. 밝음이나 즐거움을 인지하기 위해서는 어둠이나 슬픔을 알아야 한다."

_질 볼트 테일러의 ⟪나를 알고 싶을 때 뇌과학을 공부합니다⟫ p50



오늘은 멀리 여행을 떠났던 도쿄의 커피숍에서 발견한 행복을 함께 나눠보려고 해요. 푸글렌 커피입니다.






푸글렌 커피




Open 9AM - Close 10PM

도쿄 아사쿠사역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위치



Fuglen은 노르웨이어로 새를 뜻한다고 해요. 북유럽 감성 물씬 풍겨지는 빈티지한 감성에, 밤에는 바로 변신하는 만큼 바리스타분들께서 직접 앞에서 커피를 제조해주시는 것을 구경하는 맛도 쏠쏠했습니다.


아시아권에서는 일본 시부야에 1호점을 낸 이후로 현재는 도쿄 여러 지역에 체인점을 두고 있습니다. 특이한 점은 커피 원두를 얕게 로스팅하며 과일향과 산미가 진한 노르웨이식 커피를 맛볼 수 있다는 겁니다.


라떼를 선택해도 아주 시큼한 라떼이기 때문에 저와 같이 고소한 커피를 좋아하신다면 다소 놀라실 수 있지만, 먹어보지 못한 베이커리류와 푸글렌 특유한 따뜻하고 빈티지한 감성 탓에 우리 동네에 있다면 입맛을 바꿔서라도 단골이 되었을 것 같은 카페였습니다.




푸글렌에서 발견한 행복


얼마 전에 자기 계발 유튜버 드로우 앤드류 님의 채널에 올라온 김종원 작가님의 영상을 봤습니다.


"열차에 타면 저는 책을 탁 올려놓고, 커피 한 잔을 옆에 올려둡니다. 마시지는 않는데, 기분 좋아지라고."


하기 싫은 일을 습관으로 만들고 싶을 때, 좋아하는 것을 결합해보라는 말이 있죠. 러닝머신 뛸 때만 좋아하는 드라마를 본다던지, 헬스장에서 운동이 끝나고 나오며 좋아하는 카페의 커피 한 잔을 마실 생각으로 운동을 가게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저에게는 커피가 하기 싫은 일을 하게 해주는 원동력과 같은 존재인 것 같습니다. 물론 커피가 주는 에너지와 향기가 참 달콤하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커피잔을 올려두고 노트북을 두드리거나 책에 열심히 밑줄을 그을 때의 제 모습이 마음에 든달까요?






신맛 커피는 싫지만


여행 첫날에는 내내 비가 내렸어요. 그리고 다음날 아침 8시, 눈을 뜨자마자 커튼을 열어젖혔습니다.


"얘들아, 하늘 좀 봐!!!"


밝게 구름이 걷힌 하늘 사이로 쏟아지는 밝은 햇살이 얼마나 기분 좋았는지 모릅니다. 그런 햇살 아래, 특별한 계획 없이 길을 나선 저와 친구들은 도쿄 아사쿠사의 길목에서 푸글렌 커피를 우연히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햇살 아래 문을 활짝 열어젖힌 푸글렌 커피의 포근함과 아늑함에 한눈에 반했고, 우리는 홀린 듯이 그곳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이런, 고소한 커피를 좋아하는 저와 친구들에게는 푸글렌 커피가 입맛에 영 맞지 않았던 겁니다.


저는 평소에 커피는 고소한 맛과 신맛으로만 구분할 뿐인 평범한 커피 중독자입니다. "음, 이 커피는 콜럼비아 수프리모 원두를 사용해서 달콤한 아로마향과 초콜릿향이 느껴지는 고소함이구나"하고 마시지는 않지만, 그래도 푸글렌 커피의 신맛은 존재감이 독보적이었습니다. 한없이 달콤해 보이는 이 샤케라또마저도 도저히 끝까지 마시기 어려워 종일 손에 들고 다녔다면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얼마나 시큼한 커피였는지 상상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저는 커피잔을 들고 다니는 내내 기분이 좋았습니다. 커피를 한입 홀짝거릴 때마다 입에 닿는 커피의 시큼함이 짜릿할 정도였는데, 왜 그랬을까요?




커피잔을 든 내가 좋아



첫째는, 비싼 7000원짜리 커피정도는

고민 없이 덥석 사 마실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 좋았나 봅니다.


어린 시절 집안이 어려웠던 저는 뭔가를 고를 때 가장 싼 것을 고르는 게 몸에 습관처럼 배어있었어요. 가격과 편리함, 가격과 경험 중에 고르라면 조금은 가격의 힘이 컸었던 것 같습니다. 커피는 가장 기본 사이즈로, 택시는 아예 없는 옵션. 그런데 언제부턴가 제가 메뉴를 고를 때, 가격이 아니라 오롯이 먹고 싶은 메뉴나 그곳의 분위기를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비싼 스타벅스 커피를 왜 마시는지 공감하지 못했던 제가 어느 순간부터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골드 레벨이 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일요일 오후 3시, 대학가에 사는 저는 자그마치 스타벅스에 자리를 잡기 위해 3군데나 자리를 옮겨야 했던 적도 많습니다. 하지만 스타벅스에서 맥북을 탁 열고, 좋아하는 플레이리스트를 틀어놓고 일을 하고 싶었던 것이죠. 옆자리에 빼곡히 앉아 과제를 하는 대학생들의 모습을 보면 덩달아 집중력이 상승하는 것 같거든요. 저렴한 테이크아웃 커피를 사들고 집에서 할 수도 있었지만, 그곳에서 저는 커피와 함께 경험을 구매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가격보다는 경험을 선택할 수 있을 만큼 조금은 성장한 제 자신이 대견했는지도요.



둘째는,

익숙함을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좋은 점은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어떤 일을 할 때 행복한지 알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시행착오가 줄어들고, 슬픔과 두려움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의 교착 상태에 빠졌을 때, 예전의 극복했던 경험을 떠올리며 전보다 빠르게 빠져나올 수 있게 된달까요?


그런데 반대로, 익숙한 것만 선택하게 되면서 조금은 일상이 단조로워지는 면도 있는 것 같아요. 어린 시절은 매일이 좌충우돌 놀라움과 흥분의 연속이었다면, 점차 차분하고 고요한 일상이 반복되는 것 같다는 생각을 참 많이 했습니다.


삶이 예상한 대로 흘러가기를 바라면서도, 단조로움에서 쉽게 지루함을 느끼는 저를 보면 어떨 땐 참 간사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런 저에게 푸글렌 커피의 시큼함은 고소함이란 익숙한 행복 대신 단조로운 일상에 짜릿한 변주를 준 깜짝 선물이었습니다. 카페베네의 캐러멜 마끼아또만 먹던 중학생 꾸꾸가 어른이 되어 아메리카노의 맛을 알게 된 것처럼, 고소한 커피만 먹던 꾸꾸가 신맛 커피의 세계의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이랄까요?






살면서 크고 작은 선택을 하고, 선택에 따른 결과는 반반입니다. 우리가 예상했던 대로 흘러가거나,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거나. 우리는 결과를 완벽히 통제할 수 없죠. 예상했던 대로 일이 흘러가지 않았을 때 그것을 실패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실패 또한 하나의 과정이라는 겁니다. 인생은 계속 흘러가게 되어 있고, 행복도 슬픔도, 성공이나 실패도 끝이 아닌 긴 영화에서 결국 지나가게 될 한 장면이라는 겁니다. 김종국이 그랬잖아요. 인생은 사진이 아니라 동영상이다.


제가 기대한 푸글렌 커피는 진하고 풍미 깊은 고소함이었지만, 예상치도 못했던 시큼함이 코를 찔렀습니다. 하지만 실패는 아니었어요. 저는 푸글렌 커피잔을 들고 걷는 일본 여행의 둘째 날 하루 종일, 좋았거든요. 인생은 생각하기 나름이니까요.


또 모르죠. 언니의 아메리카노를 빼앗아 마시고는 도대체 이 쓴 물을 왜 마시냐고 했던 중학생 꾸꾸가 이제는 아메리카노를 사랑하게 된 것처럼, 푸글렌 커피의 강렬했던 기억을 시작으로 저도 시큼한 커피를 즐기게 되는 날이 오게 될지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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