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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꾸꾸 Mar 12. 2023

[발리] 여행에서 다시 일상으로

적적함과 설렘 그 사이


2주간의 발리 여행의 끝에 한국에 와서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그릭요거트랑 견과류 먹기.


뭐, 다른 사람들로 치자면 긴 여행 끝에 김치찌개나 쌀밥이 그리운 것과 비슷한 것으로 보면 되겠다.


7시간의 칠흑 속 롤러코스터 막바지에 튼 동. 정신을 부여잡고 사진을 찍게 만드는 오색빛 하늘.


참 새삼스럽지 않다. 2주 간 여행 끝에 한국에 돌아가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것이 캐슈넛 먹기라니.​

발리에서 읽은 책 중 한 구절이 떠오른다.


우리 삶을 이루는 것 중 상당수는 사실 습관이고, 이 습관이 행복한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 이동진 독서법




갑자기 타임머신을 타고 17세기 외딴 섬에 떨어진다면 무엇부터 할 것인가 상상해보자. 사실, 특별히 할 수 있는 게 없겠지만 평소와 같이 일단 행동하는 것으로 시작하지 않을까?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면 어제와 같은 시공간 속에서 일단 습관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채우고, 최소한의 결정이 남는 시공간을 여집합으로 둔다.

_책 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 이동진 독서법

이렇게 여행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가장 처음 든 생각은 이랬다.​


"지하철 풍경이 회색빛이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집에 가서 좋아하는 커피와 그릭 요거트, 그리고 짭쪼름한 캐슈넛을 한 움큼 입에 털어넣을 생각에 설렜다. 집에 오자마자 밤 11시가 되기 3분 전, 새벽배송을 받으려고 다급하게 그릭요거트를 주문했다. ​그리고 삼시세끼 베이글에 요거트를 먹는 중. 질릴 때까지 하나만 조지는 나란 사람이다.


발리에서 데려온 그래놀라와 블루베리잼과 함께하는 삼시세끼


아니,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돌아와서 적적했지만, 요거트를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는 것이다.




여행이 끝난 뒤의 여운은 적적함과 안정감 사이를 줄다리기 한다.


낯선 여행지에 던져진 두려움은 설렘으로 느껴지고,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여행지에서의 일상에 적응한다. 그리고 다시 돌아왔을 때 사라져버린 도파민의 금단 현상은 우울감으로 느껴지곤 한다.​


"효... 집에 오니까 뭔가 아주 살짝쿵 울적하다?"

나의 친구 눌이 내게 건넨 말. 그렇다. 여행이 끝난 뒤의 여운은 왠지 모를 묵직한 아련함을 남긴다.


적적함과 아련함, 긴장이 풀린 뒤의 가라앉는 기분.


그리고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아쉬움.


하지만 우리의 일상은 평범함과 습관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사이 찰나의 공백을 평소와 다른 선택, 다른 일과로 채워 삶을 조금 더 다채롭게 만들게 된다. 그리고 특별한 시간으로 채우는 그 공백만으로 행복할 순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


여행지에서 아침에 커피를 마실 때 행복했고,

카페에서 빵을 먹으며 책을 읽을 때 행복했고,

친구와 이야기하며 단지 산책을 할 때 기분이 좋았고,

웃으며 뛰노는 아이들을 볼 때 웃음이 나왔다.


여행지만이 주는 특별함이 사라진 일상이지만, 여행지에서 행복했던 이유는 일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행복의 이유와 동일한 순간들이었던 것이다.



| Epilogue

120ml 잼과 공항 보안검색대 아저씨


​잼 한 통이 100ml를 넘을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소중한 잼이니 가방에 넣고 다녀야지 했는데, 그대로 나의 가방은 공항 보안 검색대에서 삐용삐용 소리를 울리며 컨베이어 벨트 뒷편으로 빠졌다.


'아니 뭐 걸릴 게 없는데?'

하며 당당하게 검색대로 걸어간 나는 이내 얼굴이 새하얘졌다.


'아니, 내... 내 잼이....!'

"no Jam, over 100ml "

라며 단호하게 바로 옆 쓰레기통에 버리는 보안검색대 아저씨.

'아니... 아니 ... 포장도 안 뜯은 나의 잼이...!'

쓰레기통에 쳐박아지는 빛도 못 본 나의 잼.

온통 상상의 맛으로만 가득했던 나의 잼.​

처량한 얼굴로 아저씨에게 말했다.


"Please,,, don't throw away it...

Please... You get it... It's new..."


버리지만 말아주세요... 아저씨가 대신 먹어 주세요... 제발....


​-


정말 난 아저씨라도 대신 먹어주길 바랐다.


갑자기 쓰레기통에서 잼을 다시 꺼내시더니


"No transfer? Go where"


하는 물음에


"Yes, no transfer. To South Korea. Please you get it... don't throw away..."


하며 다시 한 번 애원했더니


"Okay."

잼은 나의 품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지금 주구장창 내 입 속으로 한아름 가득 담기고 있다.


공항 검색대의 다른 줄을 서 다른 보안아저씨를 만났더라면,

그날 보안아저씨 기분이 좀 안 좋아서 더 빡빡하게 검사했더라면,

평생 맛보지 못했을 이 맛.



어쨌튼 행복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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