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이 세계로 확장을 시작한 대항해시대, 캐리비언에 해적들이 활개치던 시절이 있었다. 세계로 뻗어나가는 유럽의 해양 강국들간의 경쟁이 치열했고, 동인도회사가 영국에 있는데 네덜란드에도 있었다는 걸 알고 아, 내가 그래서 헷갈렸구나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던 그 시기에는 프리깃이나 전열함 같은 멋진 범선들이 큰 돛을 펴고 바다를 가르곤 했다. 지난 5월 영국 여행을 갔을 때 Tate Britain에서 본 JWM Tunner의 웅장하고 매혹적인 바다 그림에도 범선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배들을 만드는데 엄청난 나무가 쓰였더라. 한번쯤 들어봤을 영국 넬슨 제독의 배 HMS Victory는 참나무만 5천그루가 들었다는 말도 있다. 배 한 척에 숲 하나인 셈이다.
1801년 영국과 덴마크-노르웨이 해군이 코펜하겐 바다에서 벌인 해전에서 덴마크 해군의 절반이 날아간다. 이후 다시 배를 건조하며 재기를 노리던 덴마크 해군은 1807년 2차 코펜하겐 전투에서 건조 중이던 배들까지 몽땅 부서지며 거의 전멸에 이르게 된다. 배 한척 만드는 데 무려 2~3천 그루의 참나무들이 필요했다고 한다. 배 한 척에 2천그루만 잡아도 50척이면 10만그루의 참나무가 필요하다. 그것도 200년 전에 심어서 곧고 크게 잘 자란 참나무로.
당시 덴마크의 산림 면적은 국토 대비 약 4% 정도였다니 거의 없는 수준이었다. 당연히 해군의 재건은 힘들었고 덴마크가 다시 바다에서 영국과 경쟁을 할 일은 없었겠지. 그래도 배는 다시 만들어야 하니까, 200년 전에 심었을 참나무는 다 쓰고 없으니 다시 심어서 잘 가꾸고 있었는데 기술이 발전하면서 선박들을 철구조로 만들게 된다. 거기에 증기기관을 얹어서. 그러니 배를 만들기 위해 심었던 참나무들, 즉 Navy Oak들은 배가 되지 않고 그대로 곱게 잘 자라서 지금은 엄청 크고 두꺼운 거목들이 되었다. 그리고 덴마크는 조림 사업에 힘쓰고 산림 관리를 잘해서 지금은 산림 면적이 14% 정도로 늘었다고 한다. 3배 이상 늘었으니 잘했다고 해야겠지만 대한민국은 62%가 넘는다.
그렇게 잘 자란 Navy Oak가 있으니 어디에 쓰면 좋을 것인가? 바로 의자다. 그래서 덴마크의 가구회사 PP Møbler는 바로 그 Navy Oak 중에서도 고르고 골라서 The Chair 같은 한스 웨그너의 의자들을 만들고 있다. 나름 좋은 결말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한스 웨그너의 The Chair라면 바로 존 F. 케네디와 닉슨의 대선 TV 토론에서 등장했던 의자다. 덕분에 미국에서 한스 웨그너의 브랜드가 하늘 높이 치솟아버렸다. 한스 웨그너는 The Round Chair라고 이름을 지었지만 미국에서 하도 유명해져서 그냥 ‘그’ 의자 하면 알아듣는 수준이 되어버려서 그냥 The Chair가 되었다. 대단하다.
2019년 4월 파리의 노르트담 성당에 화재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들도 많으리라. 아직 가본 적도 없는데 불이라니, 저걸 어쩐단 말인가 했는데 다행이 건물의 앞, 뒤 파사드는 괜찮고 중간의 지붕과 첨탑만 무너졌다. 그것만 해도 큰 손실이겠지만 일단 얼굴은 괜찮다니 다행이다. 지금까지 복구 공사를 해서 2024년에 완료할 예정이라니 언제 가볼지는 모르겠지만 가림막 없는 노르트담 성당을 볼 수 있겠다. 그런데 그 노트르담 성당의 지붕, 그것도 나무다. 유럽의 성당들을 보면 겉이 돌로 되어 있으니 석조건물이겠지 싶겠지만 그 안에 나무로 된 골조가 다 있다. 그런데 노트르담 성당의 지붕을 복원하는데 프랑스에서 환경 논란이 벌어졌다는 소식은 아는가.
그 첨탑과 지붕에 참나무 1,000그루가 들어간단다. 큰 건물이니까 그 정도 들어갈 수도 있겠지만, 서울의 남대문 복원 공사 할때도 전국에서 좋은 소나무를 골라썼다는 이야기는 들어봤을 것이다. 프랑스 역시 원래대로 복원하려면 좋은 참나무를 골라서 벌목하고 1년 이상 건조한 후에 만들어야 했다. 그런데 참나무를 1,000그루나 잘라야 한다니 반대의 목소리가 있었다. 근처에서 볼 수 있는 참나무 말고 곧게 자란 아름드리 참나무 1,000그루. 아깝기도 하고 혹시 철제골조나 콘크리트처럼 현대 건축물의 소재로 하면 나무를 자르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싶었겠지. 그런데 알고보니 그런 현대 건축물의 자재를 생산하고 시공하는데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의 양이 어마어마하다. 그런데 나무로 지으면? 나무는 태우거나 썩지 않는 한 저장하고 있는 이산화탄소는 나무에 고정된 채 보관하게 된다. 그러니 나무로 지으면 이산화탄소가 오히려 적게 나온다. 아름다운 참나무를 벌목하는 것은 아쉽지만 다시 심으면 된다. 그러면 이산화탄소를 먹으며 무럭무럭 자라나 다시 아름다운 나무가 된다. 그래서 나무로 건축을 하면 친환경 건축이라고 하는 것이다. 결국 프랑스도 이런 점 때문에 참나무로 복원하되 특별한 의미가 있는 지역의 나무나 자원해서 보내온 참나무들을 쓰기도 한단다.
그런데 여기서 또 재밌는 사실. 노르트담 성당의 복원에 쓰일 참나무도 Navy Oak다. 프랑스니까 이건 루이 14세 시절에 배를 만들기 위해 심어둔 참나무들이다. 그것 참, 나도 그런 나무 하나 어디서 얻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럼 Captain Chair를 한번 만들어볼텐데.
+ 참고문헌
- Denmark's Navy Oaks Repurposed
- PP Møbler - In alliance with nature
- Hundreds of Centuries-Old Trees Felled to Rebuild Notre-Dame’s Iconic Spi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