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명의 여인들 OST - Message Personnel 듣다가
친구들과 좋아하는 여배우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여러 여배우의 이름이 거론됐는데 ‘좋아하는’이라는 단어에도 정교한 기준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절대적인 미모(美貌)를 기준으로 할 것이냐, 배우에 알맞은 외모(外貌)를 따질 것이냐에 따라 리스트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내 경우 미모가 기준이라면 김태희, 손예진, 전지현, 나탈리 포트만, 에이미 아담스를. 연기를 놓고 본다면 전도연, 문소리, 천우희, 정유미, 메릴 스트립를 꼽는다.
물론 이 기준 역시 절대적이지는 않다. 미모와 연기가 반비례 관계는 아닌 탓이다. 미모가 좋다고 연기가 떨어지지 않으며, 연기가 좋다고 미모가 떨어지는 건 아니다(물론 예외도 있다). 특히 외국배우는 대사를 통한 연기의 수준고하 구분이 불가능한 탓에 미모의 배우들도 대체로 연기를 잘한다고 느끼는 편이다. 하여튼 이 미모냐 연기냐를 놓고 쓸데없는 고민을 하는 중인데 그래도 굳이 따진다면 나는 연기에 더 적합한 얼굴을 가진 배우에게 매력을 느낀다. 가장 좋아하는 배우인 전도연처럼 말이다.
어디서 봤던 내용처럼 전도연은 어느 배역이든 이질감 없이 관객들을 설득할 수 있는 외모를 가졌다고 한다. 눈에 띄는 미모로 남성을 호리는 배역도 소화할 수 있고(<무뢰한>,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너는 내 운명>), 예쁘장하긴 하지만 그냥 주변에 있을 법한 평범한 인물도 가능하다(<밀양>,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접속>). 전도연의 놀라운 배역 스펙트럼도 특별히 튀는 곳 없는 하얀 도화지 같은 외모의 덕을 봤을 것이다.
최근 전도연과 같은 느낌을 받은 여배우는 프랑스의 이자벨 위페르(Isabelle Huppert)다. 1953년에 태어나 70년대부터 스크린을 누볐으니 전도연을 한국의 이자벨 위페르라고 부르는 게 맞겠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여배우인지도 모른 채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피아니스트>를 통해 처음 그녀의 영화를 접했다. 억눌린 성적욕망으로 파멸하는 여성을 그려낸 영화의 주제도 주제였지만, 그보다 나를 사로잡은 건 배우가 영화를 잡아먹는다는 느낌. 특히 여배우가 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느낌을 받은 건 <밀양>의 전도연 이후 처음이었다.
평범하고 가녀린 몸에서 시종일관 뿜어내는 서늘한 기운으로 7월의 무더위도 잊게 한 <피아니스트>의 잔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 틈만 나면 그녀의 영화를 찾아보고 있다. 특히 좋았던 건 <여자 이야기>, <의식>, <레이스를 짜는 여인>인데 여배우의 힘을 느끼고 싶다면 꼭 한번 찾아보길 권한다. 청순한 소녀에서 팜므 파탈 매춘녀까지 여배우가 소화할 수 있는 모든 배역을 소화하며 필모그래피를 화려하게 채워나갔기 때문에 그녀의 모든 작품을 보는 건 쉽지 않다. 게다가 구하기 어려운 프랑스 영화라는 건 늦게나마 팬이 된 내게 큰 걸림돌이다.
세월의 무심함은 누구든 피해갈 수 없다. 내가 늙는 것만큼 아쉬운 건, 좋아하는 가수나 배우에게서 무심함의 흔적을 발견할 때다. 전도연도 그렇고 이자벨 위페르도 그렇고. 이제야 배우의 매력을 알게 된 내가 그녀들의 전성기를 함께 지켜보지 못한 아쉬움이 너무 크다. 특히 이자벨 위페르 최고의 연기라는 <비올레트 노지에르> 한국어 자막이 없어서 보지 못하는 게 아쉽다. 영화 한편 보자고 불어를 배워야 하나.
2002년 개봉한 프랑수아 오종 감독의 영화 <8명의 여인들(8 Femmes)>의 수록곡이다. 1958년 출간된 로베르 토마의 희곡을 각색한 코미디 뮤지컬 영화로 2002년 베를린 영화제에서 여성 출연진 모두가 은곰상을 받았다. 이자벨 위페르는 이 영화에서 신경질적인 노처녀 ‘오귀스틴’ 역으로 열연을 선보인다.
원곡은 1973년 프랑스와즈 아르디(Francoise Hardy)가 발표한 동명의 앨범 [Message Personnel] 타이틀곡이다. 사랑하는 연인과 전화를 끊고 아쉬움과 못 다한 말을 나지막히 읊조리는 아르디의 보컬이 매력적이다.
8명의 여인들 OST - Message Personnel (by Isabelle Huppert)
Au bout de téléphone il y a votre voix
Et il y a les mots que je ne dirai pas
Tous ces mots qui font peur quand ils ne font pas rire
Qui sont dans trop de films, de chansons et de livres
Je voudrais vous les dire et je voudrais les vivre
Je ne le ferai pas: je veux, je ne peux pas
전화기 끝에는 아직도 당신의 목소리가 남아 있어요.
또한 제가 미처 하지 못한 말들도 있구요.
만일 그 말들이 즐겁지 않다면 두려워할 모든 말들을요.
무엇이 그토록 많은 영화들 속에, 노래들 속에, 책들 속에 있는지요.
저는 당신께 그것들을 말하고 싶답니다.
또한 저는 그것들을 실감하고도 싶구요.
하지만 저는 그렇게 하지 못할거에요.
저는 원하기는 하는데, 할 수가 없답니다.
Je suis seule à crever et je sais où vous êtes
J'arrive, attendez-moi, nous allons nous connaître
Préparez votre temps, pour vous j'ai tout le mien
Je voudrais arriver, je reste, je me déteste
Je n'arriverai pas: je veux, je ne peux pas
저는 몹시 외로워요.
그리고 저는 당신이 어디에 계신지도 알아요.
제가 가겠어요. 저를 기다려주세요.
우리는 우리 자신을 알게 될거에요.
당신을 위해 당신의 시간을 마련해두세요.
저도 전적으로 저의 시간을 가질게요.
제가 가서, 머물며, 저를 미워하고 싶답니다.
하지만 저는 가지 못할거에요.
저는 원하기는 하는데, 할 수가 없답니다.
Je devrais vous parler,
je devrais arriver ou je devrais dormir
J'ai peur que tu sois sourd, j'ai peur que tu sois lâche
J'ai peur d'être indiscrète
Je ne peux pas vous dire que je t'aime peut-être
저는 당신께 이야기를 하던가,
가던가, 아니면 자는 편이 좋을거에요.
저는 당신이 들으려 하지 않을까 두려워요.
저는 당신이 맥이라도 빠질까 두려워요.
저는 제가 주제넘은 것이 아닌가 두려워요.
저는 분명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가 없답니다.
Mais si tu crois un jour que tu m'aimes
Ne crois pas que tes souvenirs me gênent
Et cours, cours jusqu'à perdre haleine
Viens me retrouver
Si tu crois un jour que tu m'aimes
Et si ce jour-là tu as de la peine
A trouver où tous ces chemins te mènent
Viens me retrouver
하지만 만일 어느 날엔가 당신께서 저를 사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당신의 추억들이 저를 거북하게 한다고는 생각하지 마세요.
그렇다면 숨이 끊어질 때까지 달려와서 저를 다시 만나보세요.
만일 어느 날엔가 당신께서 저를 사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말이에요.
그리고 만일 그날 당신께서 어디론가 가야할 모든 길들을 찾기가 어렵다면,
저를 다시 만나러 오세요.
Si le dégoût de la vie vient en toi
Si la paresse de la vie s'installe en toi
Pense à moi
Pense à moi
만일 당신에게 인생살이가 지긋지긋하다는 생각이 들거나,
인생을 나태하게 사는 듯한 생각이 당신 안에 자리하게 되면,
저를 생각하세요.
저를 생각하세요.
Mais si tu...
하지만 만일 당신께서...
음악듣기: https://youtu.be/McorU_GQDl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