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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즐기는 방법

루시드 폴 - 걸어가다 듣다가

by 고요한

요즘 카톡방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날씨 좋다’인 것 같다. 직장인이고 학생이고, 백수고 간에 하루에 한 번은 이 말을 한다. 아니 한 번도 적다. 아침에 한 번, 점심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술에 취해 한 번. 네 번 정도 한달까. 물론 이렇게 많지는 않겠지만 돌아가면서 한 번씩 하다 보니 하루 종일 날씨 좋다는 말을 듣는 기분이다. 그러나 날씨 좋다는 말은 같은 단어 아래서도 다른 의미로 쓰인다.


우레탄 바닥에서 줄넘기를 하는 누군가는 날씨 좋다는 말을 ‘운동하기 좋다’는 뜻으로 쓰는 것 같다. 오늘도 출근한 누군가는 ‘개 같은 회사 왜 오늘도 부르고 지랄이야’에 가깝게 느껴진다. 어떤 사람은 ‘이럴 계절에 맥주 안 마시면 언제 마시냐’는 듯한 뉘앙스다. 이 사람은 일 년에 맥주를 천 캔쯤 마신다. 유라시아 대륙 반대편. 도버해협을 지나 영어 공부를 하러 떠난 친구에겐 ‘맥주는 한국보다 맛없고 영어는 너무 어렵다’는 의미로 보인다. 나는 날씨와 상관없이 일관되게 우중충하다.


어쨌든 ‘날씨 좋다’는 말 한마디에도 이렇게 다양한 감정을 쏟아내는데, 공통된 의견 한 가지가 보인다. ‘날씨 좋다’는 말은 결국 ‘걷고 싶다’는 의견으로 수렴된다는 것이다. 이상한 일이다. 날씨가 좋으면 할 수 있는 일이 무궁무진하다. 등산을 가도 되고, 드라이브를 해도 된다. 하지만 많은 선택지를 걷어치우고 결국 걷는 것으로 귀결된다. 걷기에 대한 집착은 마치 평소에 못 걸어서 한이 남은 사람들 같기도 하다.


올해 새롭게 유행한 단어 중 하나로 ‘스테이케이션’이 있다. Stay와 Vacation의 합성어인데 멀리 나가지 않고 집에 머물며 휴가를 즐기는 것을 말한다. 실질임금이 줄어들어 나가서 쓸 돈도 없고, 사람이 붐비는 곳을 싫어하는 세태가 반영된 단어라고 한다. 어쩌면 걷기에 대한 욕망도 스테이케이션과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자의든 타의든 한정된 자원에서 선택할 수 있는 최상의 선택이라면 마음만 바빴던 가을의 한 귀퉁이를 허물어 걷기 위한 공간을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2009년 발표한 4집 [레 미제라블]의 수록곡이다. 루시드 폴 최고의 역작이라는 평과 함께 그 유명한 ‘고등어’가 실린 앨범이기도 하다. 앨범 제목처럼 서글픈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를 위한 위로와 치유를 향한 곡들로 가득 차있다. ‘걸어가자’는 공학박사로의 길을 그만두고 전업 가수로 전환이라는 자전적 고민이 담긴 곡이라고 한다.




루시드 폴 – 걸어가자


걸어가자 처음 약속한

나를 데리고 가자

서두르지 말고 이렇게

나를 데리고 가자


걸어가자 모두 버려도

나를 데리고 가자

후회 없이 다시 이렇게

나를 데리고 가자


세상이 어두워질 때

기억조차 없을 때

두려움에 떨릴 때

눈물이 날 부를 때

누구 하나 보이지 않을 때

내 심장 소리 하나 따라

걸어가자 걸어가자


걸어가자 처음 약속한

나를 데리고 가자

서두르지 말고 이렇게

나를 데리고 가자


세상이 어두워질 때

기억조차 없을 때

두려움에 떨릴 때

눈물이 날 부를 때

누구 하나 보이지 않을 때

내 심장 소리 하나 따라

걸어가자 걸어가자


걸어가자 걸어가자

걸어가자 걸어가자


음악듣기: https://youtu.be/ihEhn5Pbqx0

루시드 폴 - 걸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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