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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음악산책

나와 쥐포구이, 그리고 얄궂은 하느님

Pat Metheny - The trust will always b

by 고요한

야식으로 쥐포를 구웠다. 얼마 전에 부모님이 통영 여행을 다녀오시며 사온 거다. 통영이 쥐포로 유명했었나 잠시 의문이 들었지만 구워서 먹고 보니 맛이 썩 괜찮아 턱이 아픈 줄도 모르고 2마리를 순삭 했다. 동남아에서 만든 쥐포의 설탕함유 비중이 늘고, 가스불에 직화로 구우면 골판지도 맛있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로 묻어두자.

어쨌든 거의 3년 만에 쥐포를 먹었는데 문득 내 인생 최고의 쥐포가 생각났다. 20여년전 여의도순복음교회 앞에서 사먹던 그 쥐포. 당시 나는 매주 일요일 교구버스를 타고 꼬박꼬박 교회에 나가는 성실한 교인이었다. 어머니는 만화동산을 보고 싶은 나를 유인하기 위해 1,000원을 주셨다. 500원은 헌금. 500원이 용돈이었다.

10살이었던 나는 차마 헌금 500원을 삥땅칠 수 없었고(11살부터는 삥땅쳤다), 용돈 500원을 아껴 썼는데 자판기에서 200원짜리 우유를 뽑고 200원짜리 쥐포를 사먹었다. 남은 100원은 집에 오는 길에 삼보오락실에 들려 ‘삼국지 천지를 먹다2‘에 투자하거나 구경하다가 삥을 뜯기곤 했다.

연탄불에 구워 신문지 2장으로 포장해줬던 쥐포는 정말 꿀맛이었다. 어린애 손바닥만한 쥐포가 얼마나 감질나게 맛있었던지 예배시간 내내 빨아먹었던 기억도 있다. 그러던 중 쥐포 값이 300원으로 뛰었다. 사이즈는 그대로였고 내 입맛도 변하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맛이 없었다. 가용자원의 40%까진 허용됐지만 60%는 용납할 수 없는 맛이었다.

수요-공급곡선이 무엇인지 피부로 느끼게 된 이후 쥐포에 흥미는 뚝 떨어졌고 비례해서 교회에 가는 날도 차차 줄어들었다. 오락실에 투자하는 돈은 반비례해서 늘어났다는 것도 한동안은 비밀이었지만 내가 교회에 나오지 않는다는 전화가 집에 걸려온 뒤로는 공급이 0이 되어버렸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만약 쥐포를 가용자원의 60%를 주고도 먹을 정도로 좋아했다면. 아니면 어머니가 용돈을 1,000원으로 올려주셔서 300원짜리 쥐포를 가용자원의 30%만으로도 구매할 수 있었다면. 아마 교회를 다닌 기간이 길어졌을 것이고 한국사회에서 대형교회의 역할에 강한 반발과 의구심을 품은 지금의 나는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느님, 저에게 제가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차분한 마음과 제가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와 언제나 그 차이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커트 보니것의 SF소설 <제 5도살장>의 일부분인데 쥐포 하나로 세상을 판단하는 개인의 가치관과 용기, 그리고 지혜의 폭이 갈려버리는 있는 세상을 창조하시다니. 언제나 느끼는 바지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참말로 얄궂고도 얄궂다.




팻 매스니(Pat Metheny)가 구상에만 5년. 녹음은 1년. 제작비 75만 달러가 들어간 대표작 [Secret Story]의 수록곡이다. 창세기를 거쳐 아담과 이브가 쫓겨나기 바로 직전의 에덴동산이 있다면 아마 이 앨범을 닮지 않았을까.

가사 한 줄 없는 9분 짜리 연주곡이지만 퍼커션과 드럼으로 표현한 원시자연이 지닌 신비스러움과 생명력. 낙원을 떠나 광야로 나아가야 하는 인간의 두려움과 도전정신이 격정적인 기타솔로로 빼곡하게 새겨져있어 지루함을 느낄 틈이 없다. 창조론자는 말할 것도 없고 이런 음악을 만들도록 인류가 발전해왔다는 측면에서 진화론자도 꼭 들어야 할 앨범이다. 종교를 뛰어넘어 인류를 대화합 시키는 명반 중의 명반.


음악듣기: https://youtu.be/2DxfuGI_D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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