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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드카피 Oct 24. 2022

엄마는 몇 살이야_007. 이불

덮고 차고 덮고 차고 팽팽한 기싸움




환절기다. 아침저녁으로는 찬바람이 불고 낮에는 햇볕이 쨍하다. 소름이 돋다가 땀이 송송 나는 이 계절은 아이들의 콧물이 끊이지 않는 계절이기도 하다.

침대의 이불부터 바꿨다. 아니, 바꿨다기보다 침구에 이불을 추가했다. 여름에는 이불이 거의 없다시피 했으니까. 아주 얇고 깃털 같은 여름 이불도 아이들은 뻥뻥 발로 차 버렸으니까. 이불을 꺼내면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아침이 쌀쌀하니 이제는 이불을 좀 덮겠지 싶어서. 하지만 어설픈 기대였다.


아이들의 다리와 허리에 힘이 생기고 발길질을 시작하면 이불 전쟁이 시작된다. 덮고 차고 덮고 차고 덮고 짜증내고. 이쯤 되면 엄마들은 온갖 이불들을 사들인다. 길어서 다 찰 수 없는 이불, 얇아서 둘둘 말리는 이불, 무거워서 차올리기 힘든 이불, 극세사로 만든 느낌 좋은 이불, 사각사각 시원한 이불, 좋아하는 캐릭터 이불, 동물 귀가 달린 이불 등등. 하지만 결국에는 덮고 차고로 끝이 나고 만다.


아이들이 말을 잘하게 된 요즘은 더 웃프다. 밤잠 재울 때,

“엄마, 이불 덮어줘."

뻥.

“엄마, 이불 덮어줘."

뻥.

한 대 쥐어박을 수도 없고 정말. 이불이 답답하다고 하면 일단 걷었다가 새벽녘에 덮어준다. 분명히 깊이 잠든 때를 노려 덮는데 어떻게 알고 기가 막히게 번쩍 눈을 뜬다. 그리고 다시 뻥. 겨울에는 한 단계가 더 있다. 자기가 발로 차 놓고 썰렁하니 일어나서 엄마에게 화를 낸다.

“엄마, 이부울!"

한 대 쥐어박을 수도 없고 정말.


다행히 획기적인 육아템으로 수면조끼와 배앓이 방지 덧옷 등이 잘 나와있다. 다리 아래로 단추를 탁 채워놓고 나면 펭귄같은 아이들이 뒤뚱뒤뚱 따뜻하게 걸어다닌다. 나름 두툼하고 잘 여며지는 옷이라서 감기에 걸릴 걱정을 덜어준다. 그래도 왜인지 엄마의 마음은 이불을 덮어주고 싶어 진다. 이불 위로 토닥토닥 아이의 가슴을 두드릴 때 오르락내리락하는 이불의 귀여운 모양새를 지켜보고 싶어서. 오르락내리락하는 이불과 쌕쌕거리는 숨소리가 어우러져 내 오감을 자극할 때면 지루함 없이, 하염없이, 계속 계속 아이를 바라보게 된다.



4년 정도 이불 전쟁을 하는 동안 이불의 일이 좀 달라졌다. 이불은 아이들의 보온 역할보다는 장난감 역할을 더 톡톡히 한다. 배도 되고 자동차도 되고 텐트도 된다. 아이들이 해적이 되어 이불을 타고 온 집안 구석구석을 여행하니 바닥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건 물론 엄마의 몫이다. 낮에는 상상 속 해적과 싸우고 밤에는 꼬꼬마들의 발차기와 싸우고. 이래저래 휴전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인 듯하다. 오늘 밤도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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