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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드카피 Nov 02. 2022

엄마는 몇 살이야_011. 손톱

매일 손톱만큼 자라는 너



아이들이 참 빨리 크는구나를 느끼는 것 중 하나가 손톱이다. 그저께 잘라준 거 같은데 오늘 옆에 앉아서 문질문질 만져보면 어느새 손가락 끝 위로 톡 올라와 있다.

"엄마 나 손톱에 때꼈다~"

놀리는 건지 자랑하는 건지 타박하는 건지.

"이리왓! 자르자!"

"꺄하하하하하"

신난다고 도망간다. 손톱 한 번 자를 때마다 도망가는 속도도 더 빨라지는 듯하다.


첫째의 손톱 자르기는 돌 무렵까지 007 작전이었다. 한밤중에 몰래 핸드폰 조명을 입에 물고 요리조리 엄마의 자세를 바꿔가며 '네가 잠든 사이에'를 찍었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후다닥. 둘째는 뭣도 모를 때부터 적응시키자 해서 본인 눈앞에서 보여주며 잘랐다. 덕분에 첫째 때 못 느꼈던 손톱의 귀여움을 알았다. 쌀알만큼 작고 종이만큼 얇은 손톱. 맨지르르한 느낌이 귀여운 손톱. 일주일에 두 번은 잘라줘야 할 만큼 빨리 자라는 손톱. 대략 한 달에 8번 정도 자르게 되니까 100번 정도 자르면 아이가 한 살을 더 먹게 되는 셈이다.


키나 몸무게는 아이를 매일 보기 때문에 자라기는 하는지 늘기는 하는지 정확히 알기 어렵다. 하지만 손톱은 다르다. 때가 되면 잘라줘야 하고 그때마다 어딘가는 자라고 있구나를 확인하게 된다.


어느 날 아이들의 손톱을 자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기 때는 손톱 가위가 있었을까? 나는 언제부터 손톱을 혼자 잘랐지? 언제까지 엄마가 잘라줬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그래서 내 손을 봤다. 가을 겨울에는 건조해서 하얗게 트는 부분도 생기고 누가 봐도 단단하고 손톱깎이로 자르면 딱딱 소리가 나는 어른의 손, 어른의 손톱이다. 너의 손톱도 언젠가 이렇게 단단해지고 거친 부분도 생기겠지.

"손톱이 많이 단단해졌네."

"그래?"

해맑은 아이는 자기 손을 보면서 그냥 웃는다. 너무 많이 자르지 마! 를 덧붙이면서.


나는 어른이 되면서 이 손톱만큼은 단단해진 걸까. 어려웠던 손톱 자르기를 혼자 할 수 있게 된 것처럼, 어려운 일을 해결하거나 넘기거나 잊거나를 잘하고 있는 걸까. 엄마 되기가 처음은 어려웠는데 지금은 익숙해진 걸까 혹시 너무 무뎌져 버린 건 아닐까. 잘려 나가는 아이의 손톱을 보며 지나간 내 시간을 우물우물 곱씹었다.


아이에게 많은 걸 바라지 않는다. 딱 손톱만큼. 너의 손톱이 단단해지는 만큼 너의 마음도 함께 단단해지길 바라고. 끝난 손톱들을 후두둑 버려 버리는 것처럼 지나간 일들은 훌훌 털어버릴 수 있길. 그때가 되면 너도 너의 아이의 손톱을 자르며 꺄르르 즐거워하길. 딱 그만큼만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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