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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드카피 Dec 15. 2022

020. 눈; 어른의 마음을 녹이는 작은 발자국



눈이 내린다. 아 춥겠다, 하는 생각이 먼저 든 아침. 아이들은 빨리 밖으로 나가고 싶어서 안달이다. 작은 손에 장갑을 끼고 작은 발에 부츠를 신고 뛰지 말라는 나의 잔소리를 들으며 종종종 병아리처럼 걸어간다. 어떻게든 하얗고 넓은 눈밭을 찾아내서 기어코 발자국을 남기려고 이쪽저쪽으로 뛰고 또 뛴다. 나는 가만히 새하얀 눈밭에 찍히는 발자국이라기에는 너무 작은 그 발자국들을 본다. 아 춥겠다, 하는 생각이 잠시 사라진다. 생각이 사라지고 다른 생각이 솟아난다. 발자국들이 너무 작고 귀엽다.


눈은 치우기 귀찮은 것이고, 창밖으로 봐야 멋진 것이 되었다. 차 밀리겠네, 춥겠다 생각이 먼저 난다. 지하주차장에 차 세워놓을 걸, 오늘 마트는 못 가겠네, 약속은 내일로 미룰까, 온갖 생각들이 떠오르는데 정작 눈 자체에 대한 생각은 떠오르지 않는다. 그냥 언젠가부터 그렇게 되었다. 딱히 어른이 됐기 때문은 아닌 것 같은데 어른이 된 탓이라고 책임을 미뤄보기도 했다. 그런 미루기조차 하지 않은지 꽤 되었다.


그런 나의 마음을 녹여준 것이 아이들의 발자국이다. 콩콩콩 찍힐 때마다 꽁꽁 언 마음을 통통 두드리는 듯하다. 통통 두드리면서 밖으로 나와요 나와요 하는 듯하다. 저 안쪽에 숨어있던 어린 마음이 살짝 용기를 내서 나오는 듯하다. 이 눈을 나도 한번 밟아 볼까. 신발 젖을 걱정은 하지 말고 한번 꾹 밟아 볼까.


어릴 때 눈 오는 날이면 철퍼덕 주저앉았던 것 같다. 가물가물 하지만 차가운 것도 신나고, 흩날리고 춥고 축축해도 마냥 신났다. 그때 내 발자국도 아주 작았을 텐데. 내 엄마도 나를 보며 지금의 나처럼 생각했을까 조금 웃음도 난다. 분명히 똑같았을 터이다. 옷 젖을 거 걱정하면서 뛰지 말라고 하면서 당신도 눈에 발을 폭폭 담가 봤겠지.


"엄마 추어어어"

말은 그렇게 하면서 손과 발은 여전히 눈을 파고드는 녀석들. 강아지란 말이 딱 어울린다. 저 작은 강아지들이 만족할 때까지 뛸 수 있게 하려면 음, 두툼한 장갑과 모자, 목도리가 있어야겠다. 장바구니에 또 몇 개 담기겠군. 눈이 오는 날에 마음 훈훈한 방구석 쇼핑이라니. 또 한 번 아이들에게 고마운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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