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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드카피 Dec 26. 2022

021. 사기꾼 엄마의 크리스마스

올해도 어김없이 우주 대사기극에 동참하며



한참 방송 중인 알쓸인잡에서 김영하 작가가 이런 말을 했다. 크리스마스는 희대의 사기극이라고. 맞는 말이다. 전 세계 아이들을 상대로 전 세계 어른들이 한날한시에 같은 거짓말을 한다.

"오늘 밤에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놓고 갈 거야."


자정 무렵의 007 작전을 올해는 남편에게 맡겼다. 선물을 사고 숨기는 것까지 에너지를 너무 소비한 탓이다. 크리스마스 선물은 숨기는 게 가장 힘들다. 미리 사놓고 집 어딘가 구석에 그것들을 숨겨놓아야 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다. 덩치가 큰 선물이면 더하다. 작년에는 인형의 집이 그랬고 올해는 5단 주차타워가 그렇다. 나는 아이들이 잘 나가지 않는 추운 베란다에 두고 담요를 덮어놓는 방법을 2년째 쓰고 있다. 그러나 아이들은 언제 어떤 행동을 할지 모르는 존재이기에 긴장을 늦출 수는 없다. 몇 주 동안 베란다는 거들떠보지도 않다가 갑자기 신난다고 뛰어 나가는 것이 아이들이다. 올해도 위기의 순간이 두어 번 있었다. 무사히 넘긴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크리스마스이브 저녁, 아이들은 내 옆에 옹기종기 누워서 눈을 감을 줄 몰랐다. 

"엄마, 진짜 산타가 와? 우리 집 비밀번호 알아?"

"글쎄, 요정이니까 창문으로 들어올걸?"

"엄마, 왜 몰래 와?"

"들키면 음... 쨔잔! 하고 놀라는 기쁨이 덜하니까?"

"엄마, 산타가 우리 집에 왔다가 다른 친구집에 가?"

"그럼 온 동네를 다 돌지."

질문에 하나하나 답을 하다 보면 할 수 있는 대답이 떨어진다. 머릿속에서 말이 뒤죽박죽 엉켜서 하마터면 산타는 없다는 뉘앙스를 풍길 뻔하기도 한다. 식은땀 나는 순간이다. 종알종알하던 아이들이 어느새 잠들고 나도 아이시절을 새삼 떠올려 본다. 밤에 진짜 산타가 올까? 궁금해하며 잠이 들던 그때. 겨울밤은 따뜻했고 이불도 포근했다. 새벽에 산타를 혹시 봐도 모른 척해야지 하는 생각도 했던 거 같다. 몰래 들어온 할아버지 요정이 놀라면 안 되니까 말이다. 


다음 날 아침, 트리 장식 아래 놓인 선물들을 보고 아이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산타 할아버지가 내 마음을 어떻게 알았지?!"

진심으로 신기해하는 녀석들. 그런 녀석들을 보면서 그제야 내 맘이 놓인다. 올해도 사기 잘 쳤다.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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