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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희승 Dec 14. 2020

오라질년! 조밥도 못먹는 년이 설렁탕은

김첨지의 간절한 삶의 추동(推動) 설렁탕

김첨지의 간절한 삶의 추동(推動), 설렁탕

“이런 오라질 년! 조밥도 못 먹는 년이 설렁탕은. 또 처먹고 지랄병을 하게.” 라고, 야단을 쳐보았건만, 못 사주는 마음이 김첨지에게는 영 시원치 않았다" 


                                                                                                     -현진건의 운수좋은날 중에서- 


얼마가 지났을까, 그날은 그에게 운수좋은 날이었다. 난생처음 거금을 벌어 오랫동안 병을 앓고있던 아내가 그토록 먹고싶어 하는 설렁탕 을 사온 그날 이었다. "설렁탕을 사왔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왜 먹지를 못하니! 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 " 


그의 설렁탕을 향한 열망은 곧 삶의 추동(推動)이었다. 그의 삶을 추진하는 동력이 되는 추동 말이다. 아내에게 설렁탕을 사주려면 아침에 눈을 떠야하고 나가 부지런히 손님들을 실어 날라야 한다. 장거리 손님이나 몸집이 무거운 손님이 와도 기꺼이 감내 할 수 있다. 이 돈으로 설렁탕을 사야하니까. 설렁탕은 그에게 노동을 할 이유이자 삶의 목표이다. 날이 지고 달이 바뀌고, 한해가 저물 때 쯤 나 자신에게 묻는다, “너의 추동(推動) 무엇인가?”


쉬이 답이 나오지 않는다. 수백만 가지의 생각들이 고리에 또 고리를 문다. 누구에게는 죽기전에 꼭 먹고싶었던 열망이, 김첨지의 눈물로 차마 먹지 못해 버렸을 그 설렁탕이 오늘은 나의 추동이 된다. 해가 지고 쌀쌀해진 저녁 시간 설렁탕집에 들어와 서둘러 자리에 앉았다. 이른 저녁 시간 때문이었는지 식당은 한산했다. 곧 큼지막한 깍두기기와 보글 보글 끓고 있는 설렁탕을 내어왔다.


단시간 고기를 많이 끓여 국물이 맑은 곰탕과 달리 설렁탕은 오랫동안 사골을 고아 국물이 뽀얀 게 특징이다. 이집의 설렁탕은 정석대로 장시간 끓인 우유빛 같은 뽀얌을 가지고 있었다. 이 뽀얀 국물은 구수하면서도 장시간 끓인 개운한 맛이 낫다. 특히 밥을 말으니, 그 맛은 고기를 숭늉에 끓인듯 살짝 달큰하면서도 구수하고 찐했다. 탕안에는 약간의 사태살, 수육 그리고 도가니가 들어있었다. 투명한 빛깔의 도가니는 부드러우면서 쫄깃해 씹는 맛이 일품이었다.


설렁탕 국물에 퉁퉁 불은 밥 알갱이들을 한술 떠 깍두기를 얹어 먹으면 입에서 사각사각 하는 소리와 함께 시원 매콤 달큰한 무 맛이 났다. 잘 익은 것도 그렇다고 갓무친 석박지의 맛도 아니었다. 다 먹은 후에도 대파를 곁들여 시원하고 구수한 국물 맛이 오랫동안 입안을 맴돌았다.그동안 우리 민족은 허기짐과 서러움을 따뜻한 국밥으로 달래왔다. 간절한 삶의 추동이 없을 때 이 나의 허기짐을 오늘 누군가의 그 간절한 설렁탕으로 채워본다.


(내돈 내산) 먹은 곳: 첫번째 사진- 한촌설렁탕 8천원, 두번째, 세번째 사진- 외고집 설렁탕 1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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