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종 살이를 하지 말자.
이별 후 일 년쯤 지나 생각했다. 수연은 태초의 이성 관계를 떠올렸다.
초등학교 이 학년 때였다. 새로운 감정을 배웠다. 처음으로 이성에게 호감을 느꼈다. 대상은 반장인 박성준. 활달하고 공부까지 잘해 인기가 좋았다. 얼굴이 하얘 포카리스웨트 같은 청량감을 주었던 아이. 그래서 그럴까. 걔를 처음 본 순간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시원했다.
어느 날이었다. 선거철이 가까워지자 여기저기서 용돈이 조금씩 들어왔다. 보육원 원장님은 체육복을 사랬지만 그 돈으로 성준이가 좋아하는 드래곤볼 카드를 샀다. 소심한 성격답게 쭈뼛거리다가 줄 기회를 번번이 놓쳤다. 결국 카드는 한 학기 내내 가방 속에 신세였다.
하지만 신은 수연 편이었다. 운명의 장난처럼 둘은 다음 학기에 짝꿍이 되었다. 실은 키 순서대로 짝을 지었는데 그사이 수연의 키가 성준만큼이나 큰 것이었다. 짝이 된 그날, 아홉 살 수연은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우리 오빠가 싫증 난다며 버리지 뭐람. 아깝게 시리. 너 가질래? 난 이런 거 별로라..”
머릿속으로는 좀 더 친해지면 주려고 했는데 계획은 지켜지지 않았다. 마음으로는 실로 한 학기나 기다렸던 것이다. 드래곤볼 카드를 받아 든 성준이 환하게 웃었다. 그의 기쁜 표정이 수연을 기분 좋게 했다. 없는 오빠까지 지어낸 죄책감도 사라졌다. 그다음부터 좋은 걸 보면 성준이 생각났다. 아직 어려 언어로 개념화하지는 못했지만 누군가를 좋아하는 게 행복임을 알게 되었다.
얼마 후, 성준은 뚜껑을 열면 멜로디가 울리는 전자 필통을 주었다. 수연은 뛸 듯 기뻤다. 하지만 예쁜 필통은 곧 보육원 언니들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분한 마음에 그들의 신발을 감춰 원장님한테 귀싸대기를 맞았다. 뺨에는 기스가 났지만 마음에 상처는 없었다. 필통은 없어도 되었다. 그걸 준 성준의 마음을 확인했으니까. 우리가 같은 마음이라는 걸 알았으니까. 그걸로 되었다.
수연은 성준이 있어 행복했다. 보육원 출신이라고 놀림을 당해도 괜찮았다. ‘그게 네 탓도 아니잖아.’ 그가 따뜻하게 말해주었으니까. 그때부터였다. 이성을 좋아하는 감정만 있다면 살아지겠구나. 그걸 붙들면 나도 행복하겠구나. 본능적으로 그것을 따랐다. 버려진 아이라는 비참함은 빛바랜 사진처럼 엷어져 갔다. 아버지는 투자실패로 빚독촉에 시달렸다. 면도칼로 경맥을 그어 어린 딸을 떠나갔다. 그 후 엄마는 술로 세월을 지새웠다. 해가 뜨고 달이 지고 날이 가는지도 모른 채. 어린 딸을 향해 입버릇처럼 말했다. 너만 없었어도. 그러다 어느 날 사라졌다. 수연의 나이 여섯 살이었다.
날이 갈수록 삐쩍 마르고 땟국물까지 흘렀다. 배가 고파 늘 편의점 주변을 서성댔다. 야외 테이블 위에 남은 음식들을 주워 먹었다. 그것마저 없을 땐, 안에 들어가 컵라면 국물통에서 라면찌꺼기를 건져먹었다.
알바생이 구청에 신고를 해주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보육원으로 옮겨져 배고픔은 면했다. 하지만 고아로서의 고단한 삶이 시작되었다. 누굴 만나나 어딜 가나 같은 보육원생들끼리도 부모의 부재를 버림으로 받아들였다. 에미 아비한테도 버림받은 재수 없는 아이, 수연을 그걸 내면화해 자기 정체성을 만들어 나갔다. 버려졌다는 열등감과 자괴감은 어린 수연을 집어삼켰다. 늘 주눅 들어있었다. 거부당한 괴로움에서 그를 구한 건, 뜻 모를 이성에 대한 사랑이었다.
수연은 남자를 아니 사랑을 찾아다녔다. 남자들에게 사랑받는 대상이 되고 싶었다. 그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여성성을 획득하려 부단히 도 노력했다. 머리를 기르고 치마를 입고 말투도 상냥하게 바꾸었다. 나를 여성으로 좋아할 수 있게 여자처럼 보여야 했다. 나이가 들면서 몸매도 가꾸고 메이크업 기술도 터득해 꾸밈의 능력은 날로 향상되었고, 그 덕분에 절세미인은 아니지만 이쁘장하다는 소리를 종종 들었다.
그러자 나비가 꽃을 찾는 것처럼 남자들이 수연을 찾아왔다. 늘 좋지만은 않았다. 운이 좋으면 착한 남자를 만나 사랑받았다. 재수 없을 때는 나쁜 남자에게 걸려 처 맞고 돈까지 뜯겼다. 그러나 행운의 여신은 수연 편이 아니었다. 남자들은 처음에는 잘해줘도 곧 비위를 맞추려 애쓰는 수연을 시시해했다. 가끔 그녀를 종처럼 부리는 이들도 있었다. 무시받고 맞아도 수연은 참았다. 이유를 부과해 나름 합리화했다. 부모를 잘못 만나서. 어릴 적 트라우마 때문에. 지금 아파서, 처한 사정이 안 좋아서. 이조차 안되면 문제를 반대로 돌렸다. 그 사람 때문이 아니야. 내가 고치면, 내가 잘하면 달라질 거야. 그렇게 자신을 설득했다. 실은 헤어지는 게 맞는 것보다 더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수연은 굴종의 관계에서 조차 일종의 안정감을 느꼈다.
그런 수연에게 태호는 로또나 다름없었다. 외적 조건이 아니라 마음 때문이었다. 그는 한결같이 수연을 사랑하며 잘 대해주었다. 어린 왕자가 장미를 키우듯 벌레를 잡아주고 햇빛을 쬐어주며 살뜰히 보살 폈다. 늘 햇볕을 향하는 해바라기 같이 그는 수연만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그로부터 살아있음을 느꼈다. 그렇게 애정결핍을 채운 그녀는 완전한 존재로 다시 태어났다. 남자의 완벽한 사랑의 대상이 된 그녀는 그렇게 사랑의 종이 되었다. 이번 주인님은 좋은 사람이니까 하며 안심하며 살았다.
그런데 갑자기 태호가 떠나갔다. 역시는 역시군. 내 인생의 기본공식은 똑같구나. 부모도 내 버린 년을 누가 좋아하겠어. 다시 그녀는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렸다.
사랑받는 즐거움을 얻기 위해 버려지는 괴로움을 견뎌야 하는 것일까? 언제까지 나는 남자한테 사랑을 갈구하는 존재로 살아야만 할까? 개줄에 묶여 주인이 이리 끌면 이리로 저리 끌면 저리로 가는 그 신세가 다시 되고 싶은 건가? 나의 희로애락을 남자의 손에 쥐어주고 싶나?
히스테리의 각성이 시작되었다.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깡에 따르면 히스테리는 일종의 심리구조이다. 그는 '마음이 수학공식이나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라고 했다. 붕어빵 틀이 구조화라면, 무엇을 부어도 붕어의 모양으로 나온다. 즉, 쌀을 부워도 밀가루를 넣어도 계란을 깨뜨려도 결국 다 붕어다.
히스테리 구조를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의 사랑의 혹은 욕망의 대상이 되고자 한다. 기쁨도 슬픔도 증오도 환희도 어떤 감정도 붕어로 나온다. 다른 사람의 심리와 관계해 내 심리가 발현된다. 그때 나는 타자의 대상이다. 그가 기뻐야 내가 즐겁고, 내가 행복해도 그가 슬프면 힘든 것이다. 다시 말해 그가 내 마음을 채우는 것이다. 쉽게 한자식으로 대상의 대는 -對 대할 대 -이다. 내 감정은 그에 대해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왜 히스테리는 되는 것일까? 프로이트식으로 말하면, 태초의 관계 때문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엄마(혹은 주 양육자) 이런 관계를 맺은 것이다. 울면 엄마가 화내니까. 방긋 웃으면 젖을 더 먹을 수 있어. 짜증 많은 엄마의 아이는 엄마의 비유를 맞추며 생존한다. 엄마에게 사랑받는 존재가 됨으로써 삶을 얻는다. 즉, 살아있으려 히스테리가 된다. 생존은 인간의 본능이므로.
수연의 자각은 태호마저도 버리고 있었다. 히스테리성을 탈피하려는 것이었다. 태호를 기다리지 말자. 그럴 필요 없겠다. 다른 남자도 만나지 말자. 나 혼자 서보자. 내 인생은 나의 것. 이왕지사 이렇게 버려진 마당에 홀로 서보자. 물에 빠진 김에 조개나 줍는 거지 뭐 하며 호기롭게 생각하려 애썼다.
그러나 외로움은 문득문득 찾아왔고, 다시금 남자의 안락한 품으로 돌아가고 싶을 때가 있었다. 그때마다 다시 버려진다면을 떠올렸다. 그 괴로움을 반복할 수 없어. 두려움으로 자신을 설득했다. 때로는 이제 혼자 사는 거야 하며 싯타르타의 마지막 설법을 떠올렸다. “내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신에게 의지해라". ‘자등명 (自燈明)’을 가슴에 새기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렇게 삼 년이 흘렀다.
혼자도 괜찮겠다 싶었는데, 별안간 태호에게 연락이 왔다. 다시 안락한 그의 품으로 돌아가고 싶은 자신과 한참을 싸우고 있는데, 뭐?? 그에게 여자가 있었다고??? 수연은 깨질 것 같은 두통을 느꼈다. 이제와 안다고 뭐가 달라져? 생각하면서도 입은 통제가 되지 않았다.
“선미에게 연락해 볼까? "
식은 탕수육을 씹고 있는 대학후배에게 느닺없이 내뱉었다. 선미가 정말 궁금해졌다.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게 아닐까 싶었지만 통제가 되지 않았다. 수연은 지혜 쪽으로 자세를 고쳐 앉았다. 당장 만날 테세로 대답을 기다리면서…
-13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