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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희승 May 08. 2024

김태희랑 살아도 전원주랑

13화

지혜의 입이 꾹 일자로 다물어졌다. 양 미간에는 내천자가 희미하게 잡혔다. 화난 듯 보였다. 상간녀 선미에게 연락해 보는 게 화낼 일인가? 평소 지혜는 자신에게 해 될 것 같으면 지레 화부터 냈다.


내가 선미에게 연락한다면 자기 입장이 난처해지겠지. 전부 인에게 가서 남편이 선미랑 바람났다. 입방정을 왜 떨었냐며 지수에게 한 소리 들을 일이었다. 왜냐면 대학동기인 지수가 본걸 지혜가 내게 옮겼으니. 동창회회장이며 오지라퍼인 지수가 선미 찾는다며 연락처 묻는다면 이 얘기가 나올 것이다. 그럼 또 학창 시절 별명인 공포의 주둥아리로 지혜는 소환될 것이었다.

학교 때는 이 사람한테 저 얘기, 저 사람한테 이 얘기. 이간질에 분탕질 치다 동아리에서 쫓겨났었다. 회사 다닐 때도 이 버릇 못 고쳐서 정치질로 잘렸다. 또다시 이런 일을 벌이는 지혜에 대한 평판은 동창회에서 조차 나빠질 것이었다. 태호선배가 바람 폈다고 소문낸 게 지혜라며? 그것도 전부인한테 가서 선미라고 친절하게 알려줬대자나? 걔 아직도 그러고 다녀? 지 버릇 못 고쳤구나. 쯧쯧. 개가 똥을 끊지. 동창생들에게 비난과 야유에 시달릴 수도 있다. 대학 동창회는 그녀에게 소중하다. 유일하게 남은사회적 네트워크로 일자리 같은 소스를 주는 곳이다. 동창생들에게도 평판이 나빠진다면 지혜의 사회생활은 위기를 맞는다. 그녀의 입장에서는 화낼 만 아니 심각해질 상황이었다.


수연의 머릿속에 또 하나의 가설이 떠올랐다. 만약 태호선배랑 선미가 불륜 사이가 아니라면? 그냥 지수가 꺼낸 얘기를 지혜가 부풀린 거라면? 그걸 내가 선미에게 연락해서 알게 된다면? 거짓말쟁이가 되니 입장이 난처해질 수도 있다. 두 가지 다 자신이 선미에게 연락하는 건 지혜에게 좋지 않았다.


“뭘 연락을 해. 다 끝난 마당에.”

 

탕수육 하나를 재가되도록 씹은 후 지혜가 내뱉은 첫마디였다.


‘다 끝난 마당에?’


하마터면 입 밖으로 꺼낼 뻔했다. 수연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소주잔을 입에 털어 넣었다. 다 끝난 마당에 이 얘기를 꺼낸 건 누군데? 사람 약 올리는 것도 아니고. 아냐. 지혜는 얘기할 수도 있지. 그래 그럴 수도 있지? 가 돼? 지금? 나라면 전 부인한테 가서 니 남편이 사실 너랑 이혼한 이유는 딴 여자가 있어서고 걔가 대학 후배야 라고 얘기할 거야? 아니. 미쳤어? 왜 긁어 부스럼이야. 그런데 지혜는 왜 얘기한 거지? 아냐. 일단 이게 중요한 게 아니야. 누가 불을 지른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불을 끄는 게 먼저야 라고 판단한 수연은 금세 원래 문제로 돌아왔다.


‘나는 왜 선미가 궁금해졌지?’


수연은 단 한 번도 태호의 마음을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다른 여자를 좋아할 거라는 상상조차 해보지 않았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을 때, 사람들은 흔히 왜 나에게 이런 일이?라는 질문을 해본다.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뭐가 부족해서 딴 여자를? 아냐, 김태희랑 결혼해서도 전원주랑 바람난다는데. 내가 그럼 김태희? 그 정도는 아니잖아?. 아니 그게 아니라 내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는 거지. 참! 바람 안 핀 놈은 있어도 한 번만 핀 놈은 없다 는데 혹시 계속 그랬던 거 아냐? 그냥 내가 몰랐던 거지.


근데 이제와 다 헤어진 마당에 이걸 캐고 있는 나도 재미있네. 그걸 친절히 알려주는 지혜도 웃기고. 이걸 알려는 이유가 뭐야? 한수연. 자신에게만은 솔직해져 보자. ‘다시 태호랑 잘해보고 싶어서'. 그렇지. 무슨 사정이 있었겠지 라며 삼 년의 세월 퉁치고 어물쩍 이해한 다음, 다시 행복했던 때로 돌아가고 싶은 거 아냐?   


그런데 선미를 알아서 뭐 하게? 왜 선미가 너보다 뚱뚱하고 못생기면 안심이 될 것 같아? 더 자존심 상하는 건 아니고? 상간녀를 실제로 보면 평생 바람피운 일을 못 잊는 다는데, 왜 알려고 해? 보면 태호랑 예전처럼 돌아갈 수 없어. 판도라의 상자는 열면 끝인 거야.


이성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수연이 머리를 갸웃거렸다. 몰라. 모르겠어. 그냥 궁금해. 차라리 몰랐다면 그냥 넘어가겠는데 이왕지사 안거 얼마나 어떻게 만났는지 궁금하네. 그리고 만에 하나 별사이 아닐 수도 있잖아? 진짜? 그럴까? 별 걸 다 끌어들여서 만남을 합리화하는 거 아냐? 아니야. 그냥 궁금증만 해소할 거야.


지혜가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수연은 얼른 인스타 그램을 켰다. 친구추천 목록에 이지수가 떴던 게 기억났기 때문이었다. 지혜가 가르쳐주지 않는다면 이러는 수밖에. 목록을 뒤졌지만 랜덤 하게 뜨는 모양인지 이번에는 지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수연은 곧 지혜 계정으로 가서 좋아요를 누른 사람 중에 지수가 있는지 찾았다. 빙고! 그리고 지수에게 디엠 메시지를 보냈다.


‘지수야. 오랜만이야. 나 수연 선배. 내가 하도 활동을 안 해서 너 인스타 하는지 몰랐네. 지혜 계정을 통해 이렇게 인사라도 한다. 잘 지내지?’


통속적이지만, 속이 뻔히 보일까 봐 일부로 진부하게 보냈다. 지수는 의아할 것이다. 나랑 별로 친하지도 않았던 선배가 웬 메시지? 하겠지만 예의 바르고 붙임성 좋은 성격이라 일단 답장은 해줄 것이다. 그다음이 문제였다. 뭐라고 하면서 선미에 대해서 물어보지? 고심하고 있던 그때. 지 이 이 이이이 잉~ 예상치 못한 답장이 빠르게 왔다.


'꺄악~ 수연 온니! 웬일이야! 진짜 오랜만이에요! 이렇게 먼저 디엠을 다 주시다니. 덩실덩실~ 넘 반가워용!! 저야 뭐 그럭저럭 지내요. 대리다는 덕분에 월화수목 금. 금. 금.이지만요 ㅠㅠ 쿨럭. 온니도 잘 지내시죠?'


.....

의미 없는 말들이 오고 갔다. 수연은 더 이상 대화소재가 없었다. 뭐라고 대화를 이어나가야 할지 아득했다. 선미라는 그 이름, 어떻게 꺼내지 하며 애먼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고 있었다. 그때 또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온니. 혹시 선미 궁금하신 거 연락 주신 거 아녀요? 제가 또 궁예 아닙니까. (사실 지혜한테 들었어요. 이건 비밀!. 헤헤~)'


지혜는 빛보다 빨랐다. 수연은 어안이 벙벙했다. 뭐라 하지. 태호 선배랑 선미랑 진짜 바람난 거 맞냐고 네가 직접 봤냐고 물어볼까? 아님 연락처만 물어볼까 고민하던 사이. 다시 진동이 울렸다.


'선미 번호 010-45XX-7854 예요! 또 궁금하거 있으면 톡 남겨 주세용. 그럼 저는 이만 꿈나라로~ 온니도 즐잠 되셔용!'

  

어라? 이렇게 일사천리도 진행된다고? 인스타를 켠 지 오분 만에 선미의 연락처가 손에 들어왔다. 오늘은 늦었으니까 일단 자고 내일 생각해자. 수연은 샤워를 하고 잠자리에 누었다. 비몽 사몽 잠이 들 것 같은데…  카톡~이 울렸다. ‘이 시간에 뭐지?’ 하며 눈을 어스름하게 떴다.


‘선배님 저 선미예요. 지수에게 연락처 물어보셨다고 해서 기다리다가 먼저 선톡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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