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위를 둘러보니 항상 맞던 그 주사실이 맞는데, X레이 기계도 있고, 의사선생들도 내 옆에 서서 주사를 놓고 있는 모습이 제 3자의 시점으로 보였다. 뭔가 이상하다.
마취 중 각성을 한 것이라기엔 온몸에 감각이 하나도 없다.
'이거 이상한데요?' 아무리 말해도 입 밖으로 소리가 나오질 않는다.
그때 선명하게 알람소리가 들려왔다. "삐비비비" "삐비비비" "삐비비비"
아, 꿈이었구나. 얼마나 무서웠으면 꿈까지 꿀까.
그렇다, 오늘 허리 주사를 맞는 날이다.
허망함에 부스스 일어나 준비를 했다.
작년 4월에 2차 주사 시술 때 발끝까지 불타는 고통을 느낀 터라, 무서워서 3차 주사를 예약만 해놓고 가기 전날 취소를 했었다. 태어나 처음 느끼는 고통에 도저히 더 맞을 엄두가 안 났던 것이다.
2차 주사 후 500미터 이상 걸을 수 있게 되어 다행이었는데, 효과는 2달 정도 유지되더니 도로 아파졌다.
사람마다 다르다고 하긴 했다. 누군 한 번 맞고 1년을 안 아팠네, 누군 3번 맞아도 효과가 없네,, 사케사인가보다.
불행히도 나는 완전 짱짱 효과보다는 미미한 효과 쪽에 가까웠다.
반년가까이 흐르며 참고 지냈는데, 다시금 아파지고, 어느 날은 누워서 일어나지도 못했다.
'안 되겠다. 다시 주사를 맞아야겠다.'라고 결심하고, 마침 허리약도 다 떨어져 가서 세브란스 병원에 예약을 했다. 역시나 인기 많은 정형외과라 한 달을 기다려 1월에 진료를 볼 수 있었고, 주사는 거기서 또 한 달을 기다려 2월에서야 맞게 된 것이다.
참고로 4, 5, 6번 디스크 탈출, 특히 5번 척추신경관 완전 협착으로 발끝까지 방사통이 있다.
아침 8시. 신촌역에는 이미 셔틀을 기다리는 줄이 길었다. 흔들리는 셔틀버스에 몸을 싣고 멍 때리다가 문득 17년을 통근 고속버스 타고 수원에 있는 직장을 다녔던 생각이 나서, 버스도 멀미 때문에 잘 타지도 못했던 내가, 무려 17년이나 다녔다는 게 새삼 놀라웠다. '17년간 대기업에서 버티기'시리즈는 조만간 연재할 예정이다.
8시 40분에 본관 도착하여 마취통증과에서 의사진료를 간단히 하고, 바로 주사실로 이동, 바지만 갈아입고, 태블릿에 담긴 동의서에 서명하고 나니 9시 10분쯤 되었다. 바로 C-ARM(X레이 장비)이 달린 침대로 가서 엎드렸다. 물론 노출될 것을 대비하여 이쁜 팬티를 입고 갔다. 젊은 의사가 엎드려 있는 나의 바지와 팬티를 능숙하게 벗기고는 위에 여러 겹으로 방염 천을 덮어주었다.
슬슬 긴장감에 몸의 온도는 오르고 마치 찜질방에 들어온 듯 온몸과 머리에서 땀이 벌써 흐르기 시작했다. 지난번에 침대 시트를 땀으로 적셨던 기억이 있어서, 이번엔 커다란 손수건을 미리 준비해서 얼굴에 깔고 엎드려 있었다.
'두근두근두근' 커진 내 심장소리에 X레이 돌아가는 소리는 들리지도 않았다.
"마취부터 할게요, 따끔해요~" 예능에 나오는 영혼 없는 멘트와는 달리 부드럽고 상냥한 목소리로 설명을 하는 순간 바늘이 허리를 뚫고 들어왔다.
"악" 단말마 비명이 민망하게 울려 퍼졌다. 아 민망하다.
그러나 민망함도 잠시, 마취약이 몸속에 퍼지는 그 따가움은 표현할 수가 없다. 레이저 맞을 때보다 훨씬 아프다. 연이어 맞은 약물보다 마취제가 더 아팠다. 마취 후 본 주사를 신경가까이에 찔러 들어가면서 아프면 말하라고 했다. 아까의 민망함에 그러겠노라 대답은 했지만, 절대 소리를 지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다짐이 무색하게 "흐어어어" 하는 고통의 신음이 흘러나왔다.
주사가 안 아프진 않다. 신경 주변에 퍼지는 약물이라 묘한 느낌을 주는데, 참을만하긴 하다. 2회 차처럼 너무 신경에 가깝게 놓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반대쪽도 마취주사를 바로 맞았는데 역시나 본 주사보다 마취주사가 훨씬 훨씬 훨씬 더 아팠다.
10분 정도 사투를 벌이고 드디어 끝났다.
침대에 누워 이끌려 안정실로 들어가서 20여분을 누워 있었다.
간호사가 와서 이제 일어나라고 했는데, 순간 핑------ 어지러웠다. 간호가사 좀 앉아있으라 해서 한참을 앉아있다가 탈의하고, 다음 스케줄을 잡았다. 아까 진료 시 의사는 이 주사는1년에 3번만맞아야 한다고 했다. 많이 맞으면 신경이 약해지고 더 고통이나 불편을 겪을 수 있기 때문이리라. 뭐든 중독은 안 좋으니까.
일단 한 달 지내보고 더 맞을지 판단하기로 했다. 워낙 예약하기 어렵기 때문에 온 김에 한 달 뒤 예약부터 했다.
사실 어플이나 전화로 처음 예약하기는 하늘의 별따기인데, 한번 진료 후 간호사가 해주는 일정 예약은 빠르게 잡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후 어플로 일정을 변경하는 건 쉽기 때문이다.
주사 후 본관 편의점에 들러 나에게 주는 선물을 하나 샀다. 여기 편의점은 외부와 달리 정말 희한하고 맛있는 것들이 많다. 정말 많다. 꼭 들러보길 추천한다. 일단 연세대 병원이니까 연세우유빵을 봤는데, 새로 나온 인기 많은 황치즈우유빵이 없길래 물어보니 창고에서 갖다 주었다. 히히히.
다시 셔틀을 타고 신촌에 내려 집까지 걸어가 보았다. 집까지는 약 910M 정도인데, 와~ 진짜 하나도 안 아프게 걸어왔다. 전혀 통증도 불편함도 못 느꼈다. 와 이번엔 약발이 잘 받는구나!! 이 기세를 받아서 허리 기립근 운동도 부지런히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지난주부터 스쿼트와 푸시업을 시작했는데 거기에 추가하기로 했다.
암튼 3차 주사는 정말 성공적이었다. 맞을 때 아프지 않았고, 걸을 때도 전혀 아프지 않게 오래 걸을 수 있게 되었다. 한 달 후 4차 주사를 맞을지는 아직 미지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