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이상했다. 나른한 것이 몸살 기운이 살짝 느껴지고 얼굴에 열감이 느껴졌다. 정시에 퇴근하고 몸살이라 생각이 들어 좀 일찍 잠들었다. 갑자기 심하게 몸이 춥고 떨리고 오한이 왔다. 눈을 떠보니 새벽 1시. 너무 추워서 핫팩을 켜고 자도 추웠다. 몸살약 먹고 자다 깨다 반복하다가 겨우 잠이 들었다.
1일 차 화요일
아침에 일어나니 오한은 없어졌는데, 몸이 찌뿌둥했다. 두통이 왔다. 잠을 잘 못 자서 그런 거 같았다. 머리 감고 출근을 하기로 했다. 출근길과 회사에서 계속 식은땀이 났다. 아무래도 이상해서 오후에 편의점에서 자가 키트를 사서 해보니 선명하게 2줄이 나왔다. 아, 망했다...
2년 동안 얼마나 열심히 조심을 했는데,
코로나 걸린 사람들은 얼마나 싸돌아다녀서 걸린 거냐고 한심해했었는데,
몰래 술 먹고 다녀서 걸린 거라고 쌍욕을 했었는데,
내가 양성이라니, 그동안 숱하게 해왔던 자가 키트는 한 줄만 나왔었는데, 2줄이 선명해서 회사 아래에 있는 이비인후과에 가서 증상을 말하고 신속항원검사를 받았다. 목구멍과 콧구멍을 뚫어지듯이 후벼짐을 당하고 10분 뒤, "확진입니다. 자가 격리하시고요, 내일 보건소에서 연락 갈 겁니다."
정말 청천벽력과 같았다. 진짜 조심하고, 모임도 안 하고, 회사와 집만 오고 갔는데, 내가 왜 확진일까?
과거 5일을 곰곰이 되짚어보았다.
-1일 어젠 월요일이라 출근하고 몸살기가 있어서 바로 퇴근하고 집에 가서 잤다.
-2일 일요일이라 집에만 있었다.
-3일 토요일에 도넛 집에 들렀다가 타코 집에 들렀다가 마트에 갔다 왔다.
-4일 금요일은 회사만 갔었다.
-5일 목요일은 회사 사람 장례식장에 갔었다.
장례식은 회사 사람들하고 점심때 다 같이 택시 타고 갔었고, 1시간 정도 머물렀었는데, 난 식사도 하지 않고, 사이다 마시려고 잠시 마스크를 벗은 것 외에는 조문객도 많지 않았던 터라, 이상했다. 걸리려면 방문했던 회사 직원 다 걸려야 하는데, 나만 확진 인터라,,, 그럼 장례식장은 아닌 거 같은데, 매일 같이 먹었던 회사 구내식당인가? 매일 같이 먹는 직원도 안 걸렸는데? 그럼 도대체 어디란 말인가?? 버스와 전철? 정말 알 수가 없었다. 잠복기가 1~5일이라는데 걸릴 곳이 없었다. 정말 미스터리하다. 어딘 지 모르겠다.
이비인후과에서 약을 3일 치 지어주었다. 회사에 얘기하고 바로 집으로 갔다. 이때가 4시쯤이었다. 집에서 격리를 하려 방하나를 지정하고 음식과 물과 약과 이불을 가지고 격리에 들어갔다. 마스크 하고 식은땀과 사투를 벌이며 자다 깨다 반복하며 아침이 왔다.
셀프 자가격리 물품
2일 차 수요일
아침에 보건소로부터 문자가 왔다. 자가격리 7일 하라는 것이었다. 하루 집에서 자긴 했지만, 아무래도 가족한테 위험할 것 같아서 거주하는 구청에 전화를 걸었다. 담당자가 연결되어 방금 통지받았는데 생활치료센터에 들어가고 싶다고 했다. 담당자는 현재 확진자가 너무 많아서 기본이 재택치료인데, 생치(생활치료센터를 이렇게 부름)에 들어가야 하는 사유가 있냐고 물었다. 그래서 이런저런 사정을 얘기했더니 일단 신청해주겠다고 했다. 서울시가 최종 결정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후 1시 반쯤 생치 배정과 배차가 완료되면 연락 갈 테니 생필품 챙기라는 문자가 왔다. 되었나 보다.
1분 뒤 ㅇㅇ생활치료센터 배정되었다고 문자가 왔다. 오후 4시경 엠블런스가 갈 테니 타고 입소하라는 것이다. 오, 승인되었나 보다. 이제 가족한테 덜 미안하게 되었다.
이것저것 챙겨서 캐리어에 담고 엠블런스를 기다렸다. 인터넷에는 가져갔던 거 다 소각해야 되니 버릴 것으로 챙겨가라는 말이 한가득이었다. 버리기 아까운데... 또 다른 블로그에는 소독해서 가져올 수도 있다고 한다. 센터마다 다 다른가보다.
오후 4시 요란한 싸이렌과 함께 엠블런스가 왔다. 가족에게 인사하고 엠블런스를 타니 2명이 먼저 타고 있었다. 찜통 같은 엠블런스 뒤에 대충 앉으니, 차가 이리저리 정말 미친 듯이 운전을 해서 추가로 3명을 더 태우고 나서야 생활치료센터로 향했다. 정말 처음으로 타본 엠블런스는 무법자였다.
신호와 차선을 무시하고 최대한 빨리 도착해야 하는 사명이 있었나 보다. 내려주고 또 태우러 가야 하니까 그럴 것도 같았다. 워낙 환자가 많아서.. 일행은 나이 드신 남자분, 여자분, 젊은 여자 셋 그리고 나였다. 중구에 있는 한 생치에 도착해서 5명이 내리고 내가 내릴 찰나, 나는 다른 곳이니 내리지 말라고 했다. 조금 두려웠다. 왜 나만 다른 곳이지???
잡을 곳도 없던 88열차 엠블런스
5분여 더 달린 후 내린 생치는 동대문구에 있는 20층의 한 호텔이었다. 1층에 내려 방호복을 입은 분이 입소 생활에 대해 한참을 설명해 주었다. 혈압계와 산소포화도 기계를 받고, 방으로 가면 생필품 박스가 있다고 했다. 이곳은 강북삼성병원이 관리하는 곳이었다. 카톡으로 삼성병원에서 매일같이 바이오 체크를 하고, 간호사가 매일 3번 전화로 상태를 체크해주었다.
17층의 배정된 방으로 가니 2인 1실인데, 다행히 나만 있었다. 방에는 커다란 박스가 있었고, 뜯어보니 다양한 물품이 나왔다. 베개, 깔개, 이불세트와 마스크, 체온계, 치약, 칫솔, 샴푸세트, 빨랫비누, 수건, 장갑, 생수 12리터(2리터 X6병) 등이었다.
재난민 구호물품
수용소 아니 생활치료센터 (원래는 호텔)
5시 반이 되자 저녁식사 배식이 시작된다는 알림이 왔다. 조금 설레었다. 기내식마냥 뭐가 나올지 모르고, 신나 있었다. 2인실 호텔방에 짐을 풀고 보니 일본 출장 다닐 때의 사이즈였다. 아담하고 뭔가 나만의 세계가 된 듯한 느낌과 가족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게 되었다는 안도감, 뭔가 치료가 잘 될 것 같은 희망감 등이 버무려져 배가 고팠다.
6시가 되니 방문 앞에 있는 밥을 가지고 들어가라고 했다. 방에 들어간 이상 복도에도 나가면 안 되었다. 무조건 방안에만 있어야 하고, 열리는 작은 창문 하나를 통해서만 밖을 볼 수 있었다. 마치 수감자가 된 듯한 기분도 들었다. 그리고 이상현상 감지를 위한CCTV가 방마다 설치되어 있었다. 물론 복도에도. 철저히 감시를 당하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몰래 빠져나가고, 술 담배를 반입했는지 어림짐작으로 알 수 있었다.
오죽하면 CCTV를 달아놨을까. 덕분에 팬티바람으로 다니지도 못하고 누군가가 지켜보는 생활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마치 짐 캐리 주연의 트루먼쇼 주인공이 된 기분도 들고, 여느 관찰 예능에 출연한 것도 같았다. 최대한 점잖게 행동해야겠구나 싶었다. 코도 못 파고..
빨래도 셀프다
약도 꼬박꼬박 준다
집에서는 내가 있었던 곳과 집 전체를 열심히 소독했다고 했다. 보건소에서 집에 방문해서 방역도 해준다고 하는데, 이미 소독을 다 한터라 신청하지는 않았다.
식사는 도시락과 국물, 음료, 과자 등이 나왔다. 먹을 땐 좋았는데, 먹고 나서는 직접 다 치워야 해서 그게 더 힘들었다. 100리터 종량제 봉투와 음식물 봉투를 받아 거기에 처리를 해야 했다. 집에 가면 가사를 더 해야겠다는 다짐도 생기고...
식사는 아침 7시, 점심 12시, 저녁 6시였고, 식사 후 혈압, 산소포화도, 체온을 재어서 입력하고, 간호사와 통화하고 받은 약을 먹는 것이 큰 싸이클이다.
산소포화도가 95를 넘어야 하는데 94다
증상을 떠올려보면 다음과 같다.
확진 2일 차 격리 1일 차 수요일
증상은 목이 잠기고 목소리가 갈라졌고, 다른 곳은 아프지 않았다. 살짝 두통과 식은땀 정도였다.
식사는 저녁을 첫끼로 받았다. 밥 먹고 욕조에 물 받아 목욕을 했다.
첫 저녁밥과 길건너 야근 중인 CJ
확진 3일 차 격리 2일 차 목요일
증상은 목소리는 거의 돌아왔는데 콧물이 시작되었다. 두통도 살짝 있었다.
식사는 3끼 받았고, 가져간 노트북으로 틈틈이 업무도 했다. 밥 먹고 호텔방을 빙빙 돌며 운동했다.
둘째날 아점저..사진크기가 왜 제각각이지?
확진 4일 차 격리 3일 차 금요일
증상은 콧물이 계속되어 가래까지 생겼다. 덕분에 코맹맹 소리를 하게 되었다.
식사하고 유튜브 종일 시청하고 스트레칭도 하고 정말 계속 쉬었다.
셋째날 아점저. 사진 크기 조절이 안됨
확진 5일 차 격리 4일 차 토요일
증상은 콧물도 거의 그치고 기침도 안 하는데, 가래는 계속 끼었다. 목소리는 정상. 열도 없음.
식사하고 게임도 하고 브런치 글도 쓰고 마치 작가 같은 일상을 보냈다.
넷째날 아점저, 사진크기 어쩔...
확진 6일 차 격리 5일 차 일요일
증상은 거의 나았고, 컨디션도 아주 좋았다. 미각 후각은 멀쩡했다.
나가고 싶다. 집에 가고 싶다. 밖을 걷고 싶다. 사육당하는 햄토리가 된 거 같다.
다섯째날 아점저. 이제야 사진 크기가 일정하네
확진 7일 차 격리 6일 차 월요일
가슴에 경미한 답답함이 생겼다. 콧물도 없고 미각 후각 멀쩡했다.
밥은 계속 맛있으나, 생활이 좀 지루해졌다. 나가고 싶다.
여섯째날 아점저, 또 사진 크기가 달라지네
확진 8일 차 격리 7일 차 화요일
아침식사 후 10시에 격리 해제가 되었다. 드디어 해방이다.
집에 가는 길에 자가 키트를 사서 해보니 한 줄만 선명하게 나왔다.
그래도 해제 후 며칠간 양성이 나올 수도 있고 전염력이 있다 하니 조심하기로 했다.
집에 돌아와 다시 격리를 했던 방에 스스로 격리를 했다. 그래도 생치(호텔) 격리보다 집이 편하고 좋았다.
마지막날 아침과 그간 모아놓은 플라스틱들
점점 쌓이는 음식들
확진 9일 차 격리 8일 차 수요일
아침에 테스트해보고 음성이 나와 출근했다. 증상은 전혀 없고 컨디션도 좋았다.
일주일 길들여졌는지 7시에 눈이 떠지고 배가 고팠다. ㅋㅋㅋ
그래도 주말까지 조심하기로 했다. 집에서 마스크, 장갑, 소독약과 같이 살게 되었다.
격리생활도 새롭고 기억에 남을 경험이었다. 밥과 약과 감시로 단시간에 길들여지는 마법의 방이었다. 다행히 코로나로 인한 증상이 별로 없어서 크게 앓거나 아프지 않고 끝난 거 같다. 목이 찢어질 듯이 아프고 미각을 잃는다는 말에 겁이 났었지만 그런 증상도 없었다. 백신을 3차까지 맞아서 그런가...
음식도 비록 도시락이지만 정성스레 만들어졌고, 맛고 괜찮았다. 한 번도 겹친 식단이 없었고, 격리 후반부로 갈수록 음식이 쌓이기도 했다.
참고로 목 아프고 미각을 잃는 것은 델타 변이이고, 난 오미크론인 것 같다. 식욕도 그대로다. 동생네 식구는 4명 다 걸렸고, 내 식구는 나만 걸려서 다행이고, 부모님도 아직 안 걸리셔서 다행이다.
나와 일주일 밤낮을 함께 해준 CJ
국민의 삼분의 일이 걸린 시점에 나도 동참하게 되어 씁쓸하기도 하고, 그토록 감염자를 욕했던 내가 걸리니, 스스로 자책도 되고, 주변 사람들 특히 가족들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하루가 참 짧다는 것을 새삼 느꼈고,
무엇보다 어디서 걸렸는지는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p.s 며칠간 곰곰이 생각해보고 종합적으로 판단하건대, 회사 사람 80%가 감염된 사무실을 매일 나가다 보니, 아무리 환기를 시켜도 어쩔 수 없이 옮게 된 것 같다. ㅠㅠ 나쁜 동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