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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광머리 앤 Nov 27. 2015

이사를 앞두고

아침에 아파트 현관을 나서는데 헐벗은 자목련이 눈에 띄었다.


새로 맡은 위탁업체에서 화단 관리를 하느라고 자목련 가지를 모두 잘라놓았다. 내년에 다시 가지를 내고 꽃을 피우겠지. 그 순간 그 꽃을 보지 못하리란 생각이 들었다. 


충동적으로 집을 팔고 부랴부랴 전세를 구하고 내년 일월 중순에 새 집으로 이사를 가기로 했다. 12년을 살았던 집을 떠나기로 한 것이다.


그 후로 아파트 화단의 대추나무에게도 구석의 꽃사과에게도 인사를 한다.

"잘 있어. 그동안 고마웠어. 네가 피운 꽃이랑 열매가 나에게는 위안이 되었어."

그동안 대추나무를 보며 아이들을 생각했고 자목련을 보며 목련이 교화이던 여중시절을 추억했다. 


남들은 몇 번씩 집을 팔고 이사를 하는 동안 햇수로는 14년째 한 집에 살고 있다.

 한참 분양을 하는, 몇몇 미분양도 남아있는 아파트를 포기하고 12년 된 아파트로 이사를 했었다. 내 취향에 맞게 마룻바닥 벽지 타일을 선택하고 들어왔다. 날마다 햇볕이 들고 밝고 환한 우리 집. 포기한 아파트는 값이 엄청 올랐고 우리 아파트는 그리 오르지 않았다. 


우리 집의 가치를 사람들이 몰라주는 것 같아 섭섭했다. 풍수도 좋고 베란다에서 먼 산과 가까운 산이 날씨에 따라 다 다르게 보인다. 뒷산 산책로도 가깝고 10여분 나가면 강가에도 갈 수 있다. 여름엔 산바람이 맞바람을 쳐서 에어컨이 필요 없고 겨울 낮엔 난방을 안 해도 될 정도로 따뜻하다. 


등을 갈 때마다 인터넷을 뒤져가며 심사숙고해서 예쁜 걸 골랐고 방문 손잡이 콘센트 다 내가 고르고 고른 거다. 4살 때 이사 온 딸이 지금은 고일이 되었다. 집을 보러 온 날 한복을 벗지 않겠다고 해서 한복을 입혀 업고 왔던 것도 생각이 난다.


남편하고 치열하게 싸웠고 아이들이 초등, 중등, 고등, 대학교를 갔다. 내 결혼생활의 절반 이상이 이 집에서 이루어졌다. 아이들의 삶의 대부분을 여기서 보냈다. 조금씩 정을 떼기도 하지만, 구석구석 기억하려고 노력한다. 이 집에 이사올 가족이 행복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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