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년 3월이었다.
문학소녀로 대학 수첩 뒤에 장차 내가 쓸 소설의 주인공 이름과 캐릭터를
적어가지고 다녔던 나는 당연히 김윤식 선생님의 수업을 신청했다.
강의 이름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 1학년 1학기였으니 무슨 개론 수업이었으리라.
맨 앞자리에 앉았는데 선생님이 키가 아주 크게 느껴졌다.
하지만 첫 시간, 선생님은 우리를 막 혼내셨다.
너희가 이 대학에 온 건 부모를 잘 만나서다. 너희만큼 공부할 만한 환경에 누구라도 있었다면
서울대를 왔을 거다. 뭐 이런 내용이었다. 당시 내가 받아들인 것은.
수업 끝나고 나는 내 잘못이 무엇인가 생각했다.
굳이 잘못이라면 공부를 열심히 한 죄?
대학 첫 신입생으로 기고만장해 있었던 나는
그 죄를 인정할 수 없어 그 수업을 드랍했다.
하지만 당시 선생님의 키와 표정, 강의실 분위기 등이 40년 전임에도 생생한 것을 보면
어떤 식으로든 선생님은 나에게, 나의 인식에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2, 3 학년쯤 대학 수첩 뒤에 적혔던 소설 주인공 명단이 사라지고
나는 문학소녀에서 문학청년으로 자라나지 못했다.
새해 첫날이면 신춘문예 당선작을 보며 꾸던 꿈을 접었다.
'서울 사는 평강공주'라는 시를 읽고 나는 이렇게 절대 못 쓸 것 같아였다.
몇 해 전 내가 속한 지역의 대학에서 선생님을 모시고 특강을 연다는 소식을 들었다.
강당에 도착하여 이번에는 끝에서 두 번째 자리에 앉았다.
강의 내용은 정신대에 관하여 한국과 일본에서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에 관한 것이었다.
우리 학생들은 강의가 시작한 후에도 들어와 앉았고,
선생님은 예전처럼 서슬 퍼렇지 않았다.
몸집도 작아지셨고 목소리도 달라지신 것 같았다.
내가 대학교 1학년 때 들었던 그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아니었다.
나는 그러한 선생님의 변화가 너그러움, 관대함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늙으셨구나.
어제 선생님의 부고를 들었다.
그렇게 한 시대가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