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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광머리 앤 Jul 30. 2021

평범한 일상의 진리

오늘 인문학강의에서 배우 명계남의 강의를 들었다.

'우리 읍내'라는 희곡을 가지고 '평범한 일상의 진리'에 대해 이야기했다. 

에밀리라는 주인공이 죽어서 자신이 살았던 일생중 가장 행복한 

시긴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말하기를


'몰랐어요. 모든 게 그렇게 지나가는데, 그걸 몰랐던 거예요. 데려다주세요. 

산마루 제 무덤으로요. 아, 잠깐만요, 한번만 더 보고요.

안녕, 이승이여 안녕, 우리 읍내도 잘 있어. 엄마, 아빠 안녕히 계세요.

째깍거리는 시계도, 해바라기도 잘 있어. 맛있는 음식도. 커피도.

새 옷도, 따뜻한 목욕탕도, 잠자고 깨는 것도, 아 너무나 아름다워 그 진가를 

몰랐던 이승이여, 안녕.

살면서 자기 삶을 제대로 깨닫는 인간이 있을까요? 매 순간마다요?"


지난 월요일 엄마에게 전화를 했더니 한두번 시치미를 떼다가

속리산 수정암으로 가고 계신다고 했다.


40도 까지 올라간다는 날씨에!


부랴부랴 속리산으로 갔다. 

속리산 터미널에서 수정암까지 꽤 걸린다. 

돈 아깝다고 택시를 타고 가지도 않았을터인데  이 더위에.


수정암에 갔더니 아무도 없다. 부엌에 한 분이 계서서 

물었더니 머리 허연 할머니는 안 왔다고 한다.

잠시 앉아서 기다리닥(이 시간까지 수정암에 안 왔다는 것도 큰일)

대웅전에 가보라고 하여 대웅전에 가봤는데도 없다.


한 스님이 나오셔서 사실은 그런 할머니가 왔다갔다고 한다. 

전하기를 


"며느리랑 싸웠는지 캐리어에 짐을 한가득 싣고 와서 

56년전에 여기서 며칠밤 묵고 간 적이 있다며 하룻밤 자고 갈 수 없냐?"

고 물었다고 한다. 그래서 여기는 그런데가 아니라며 보냈다고."


엄마한테 여러번 전화를 해도 받지 않는다. 어디서 뭔가 큰 사단이 벌어졌나

순식간에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마침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속리산 법주사에서 캠핑을 할거란다.

어디서 캠핑을 하냐고 물으니 옆에 사람을 바꿔준다.

그 사람이 오라는대로 갔던 템플스테이.


이미 새 영어 단어를 입력하기에 너무 굳어버린 엄마의 머리엔

비슷한 캠핑이라는 단어가 템플스테이를 대치한 거다. 

외할머니가 크리스마스를 구루마스라고 했던 것과 같은 이치.


엄마가 묵는 방에 들어갔더니 정갈하고 시원하다. 

밥도 삼시세끼 주고, 사무실에 있는 분이 눈을 내리깔고 쌀쌀맞았지만

경치도 좋고 다 좋다. 


며칠 더 계시라고 했더니 이틀만 계시계단다. 

여기 끝나고 우리집으로 가자고 했더니 것도 싫단다.

코로나 전에는 봄가을로 여기저기 돌아다니시던 분이 

이태나 갇혀 지냈으니 답답하기도 할터. 


5시 15분에 공양하러 갈 때까지 엄마랑 누워서 이야기를 했다. 

"내가 메이드인 수정암이야?"

물었더니 

속리산 쪽 두번째 방이란다.

"거기서 만들었어?"

그건 아니고 갔다와서 생겼단다.

언니가 두살 때 아빠랑 속리산 수정암에 왔었단다. 수정암에 오이가 열렸는데

그 오이가 그렇게 맛있었고, 계곡에서 놀았단다. 

아직 아빠는 아프지 않았을 때였을 거고, 

설사 아팠다 하더라도 나을 수 있는 희망이 

더 클 때였을 거다. 


영특한 언니를 두고 장래를 꿈꿨을 거다. 아이큐가 150이 나왔던 언니는

기어다닐 때부터 국어책과 수학책을 구분해서 가지고 왔다는 전설이 있다. 

아마 수정암에서의 이틀이 엄마 인생의 가장 행복하고 희망찬 시절이었을 거다.


87살된 노인이 되어 그날 그곳에 가 보고 싶었나보다.

그리고 생전 안 하던 아빠가 돌아가시던 때를 들려주었다. 

"내가 사람 죽은 걸 본건 느이 아빠가 처음이자 마지막인데."

하는 순간 왜 엄마가 고모의 임종을 피했는지 알 것 같았다. 


엄마가 평생 묻어둔 트라우마를 이제 입밖으로 꺼내고 있었다. 

그리고 아빠와 같이 했던 그 젊고 빛나는 시절의 그 장소에 온 것이다. 


엄마는 그때 알았을까?

그날 그 순간을 기억하고 50년 후에 다시 오게 될 것을? 

그날이 그렇게 소중한 날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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