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전
가드닝에 대해서는 일자 무식을 넘어서 마이너스의 손이었습니다.
집들이로 어느 분이 청화쑥부쟁이를 당신 집 마당에서 꺾어 오셨는데
이쁘다고하니까 말씀하셨어요.
"마당에 그냥 꽂으면 된다."
이 말이
"땅에 닿기만 해도"
"흙에 스치기만 해도"
등등 관용어임을 몰랐던 저는
글자 그대로 묶여있는 청화쑥부쟁이를
땅에 고대로 꽂아두었습니다. ㅠㅠ
당연히 말라비틀어졌지요.
이정도로 무식했던 제가
가드닝을 시작했습니다.
무식(현실적인 지식이 없음)하면서 지향점은 아주 이상적인
mbti 직관형입니다.
내 마당에서 나온 건 내 마당으로 돌려보내자는
환경주의 모토도 제 귀를 솔깃하게 했고,
뭐든지 실험하거나 시도하는 걸 좋아하고
책으로 먼저 배우는 책상물림인 삶의 태도도 주효했지요.
그래서 퇴비를 만들기로 결심했습니다.
이것저것 찾아보니 검은색 통돌이 퇴비통, 세워놓는 퇴비통
방부목으로 만드는 퇴비통(완제품은 거의 오십만원가까이, 반제품도 못지않게 비싸고)
다 맘에 들지 않았습니다.
검은색 플라스틱 퇴비통이나 시뻘건 플라스틱 통으로 퇴비통을 하는 건
잘생긴 거 하나 보고 결혼했다가 인생을 망치고도, 정신을 못 차린 제가
선택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었습니다.ㅠㅠ
방부목으로 만든 퇴비통은 비싸고, 너무 커서 우리집 작은 마당에는
놓을 자리도 없었고요.
고민하며 골목을 산책하는데
어느 할머니가 버리고 이사를 가셨는지, 돌아가셨는지 모를
항아리가 떼로 뒹굴고 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일단 하나를 들고 왔습니다.
유튜브 장똘뱅이 아저씨의 화분 밑바닥 뚫기를 보고
항아리 밑구녕을 뚫었습니다.
콩쥐가 울고갈 항아리 밑구녕이 뚫렸습니다.
거기에 퇴비를 꺼내기 좋게 조금 더 뚫었는데
너무 많이 깨져버렸습니다.
땅을 조금 파고 이걸 묻었습니다.
거기다 철망을 깔았는데
쥐를 못 오게 하려는 게 아니라(이때는 우리집 고양이 이솝이가 살아있을 때였습니다)
철망 밑으로 퇴비가 떨어지는 시스템을 위한 것이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건 말도 안되는 시스템인것이 밝혀져 철망은 치웠습니다.
또 산책을 하는데 할머니 항아리가 아직 또 남아있어
하나 더 주워왔습니다.
이건 밑에 금이 가 있었고
구녕뚫기도 귀찮아 퇴비 항아리 옆에 고이 세워뒀습니다.
심심하지 말라고.
그래서 이런 형상이 되었습니다.
첫 해에는 날파리가 꼬여 올해는 뚜껑위에 양철통을 한번 더 씌워 놓습니다.
외모는 만족스럽습니다.
여름에는 밑구녕이 뚫린 항아리에
음식물 쓰레기를 넣습니다.
김치 꼬다리 같은 짠 거를 제외하고
모든 음식물 쓰레기와 키친 타월, 자잘구레한 종이도 넣습니다.
넣어도 넣어도 제자리인 것처럼 부숙이 잘 되는 것 같습니다.
겨울에는 금만 간 항아리에 음식물 쓰레기를 넣습니다.
바나나 껍질 계란 등등을 넣고, 거의 음식물 쓰레기는 버리지 않습니다.
쓰레기를 넣으려고 뚜껑을 열면 향기롭습니다.
정말 말그대로 향기가 나요.
가끔가다 커피숍에서 내놓는 꺼피찌꺼기도 가져다 넣고
농업기술센타에서 무료로 나눠주는 em용액도 넣고,
얼마전 까페에서 알게 된 백강균도 발효시켜서 넣고
쌀뜨물도 넣고,
계란김밥을 파는 식당에 남편을 보내어 계란 껍데기도 가져다 넣습니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닥치는대로 넣습니다.
올 봄에 두 항아리를 열고 윗부분에 덜 부숙된 부분을 다른 항아리로 살짝 덜어내고
체로 받혀서 퇴비를 가려냈습니다.
잘 썪어 있었고, 이대로라면 봄에 퇴비할 때 이걸로 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농협에서 4300원 주고 사다 쓴 계분퇴비는 뿌리면
잡초씨가 같이 와서 잡초가 해마다 종류별로 더 많아지는 것 같은데
부숙이 덜 되어서 잘못 쓰면 안된다기에 계분퇴비는
늦가을 정미소에서 얻어온 왕겨랑 계분퇴비를 섞어서 마당을 덮는 걸로 끝냅니다.
올해는 오며 가며 봐둔 축사에 가서 소똥을 얻어다
역시 정미소에서 얻어올 왕겨로 마당을 두툼하게 덮을 예정이에요.
이제 계분퇴비는 안녕하려고요.
사실 승마장도 어디 없나 오며가며 살펴보고 있어요.
장미에 말똥이 좋다기에 말이에요.
봄이 되면 퇴비가 필요한 곳에 항아리에서 나온 퇴비를 뿌리고
여름 가을엔 로즈골드나 파란 가루를 시비했습니다.
전 게으른 가드너라 물도 최소로 비료도 최소로 줍니다.
우리집 고양이 이솝이가
고양이 별로 떠나고 구멍 뚫린 항아리 깨진 틈에 자꾸 조그만 구멍이
나는 것 같은데 애써 무시하면서 자꾸 보일 때마다 흙으로 덮습니다.
쥐구멍이 아니길 바라면서요. ㅠㅠ
그 항아리에 지렁이를 가져다 넣으면 더 좋을 것 같아
바닷가에서 본 낚시점이 생각나 이십분 운전해서 갔어요
"지렁이를 주세요."
했더니 뭐에 쓰려느냐고 묻기에
(영 봐도 낚시꾼은 아닌 게 분명해 보였겠지요.)
용도를 설명했더니 갯지렁이라 안된다고 하네요.
돌아와서 땅을 팔 때마다 지렁이가 나오기에
저 항아리에도 지렁이가 많을거라고 믿어봅니다.
올해 장미 가지가 많이 나오고, 작년보다 정원 부산물이 많아져서
마당을 좀 입체적으로 만들어볼까 하여 두둑을 만들고 싶은 마당 한켠에
라자냐식
두엄식으로
쌓아놓고
호스로 식물에 물 주기 전에 더운 물 뺄때
물뿌리고, 이엠 용액도 뿌리고, 고오랑도 사다놓고
아직은 안 뿌리고 있습니다.
내년 봄에 여기에 식물을 심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