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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햇님마을아파트
Nov 20. 2023
2화 나는 시한부 노견의 보호자다
개가 사람이냐!(1)
2023 1109
우리 집 개가 죽어간다. 나랑 13년을 함께 한 녀석이다. 하지만 난 오늘도 이 녀석이 죽어가고 있다는 걸 문득 잊어버린다.
아침 6:30
분주히 등교준비를 하는 고딩 딸내미 소리를 들으며 나는 밥을 차린다.
딸내미는 아침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더니, 나를 부른다.
"엄마엄마? 양말? 양말!"
"어? 어! 여기!"
나는 딸내미 방 침대에 양말을 던져준다.
식탁에서는 다음 주 대입수능시험을 앞둔 재수생 아들내미가 아침밥을 먹고 있다.
아들 밥그릇 옆에 비타민
통과 물컵
을 슬쩍 놓아둔다.
동트기 전 아직은 어둑한
거실 한켠
,
가만히 누워서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녀석,
복실복실 하얀 털을 가진 녀석은
동그란 눈을
껌벅거리며 이쪽을 쳐다본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힘없이 누워있는 녀석에게 나는 다가가 말을 건다.
"쏘피! 쉬할까?"
이 한마디에 젖은 포대자루같이 쳐져있던 녀석이 벌떡 일어난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이 화장실
쪽으
로 간다.
뒷다리에 힘이 없어도 휘청거리며
다리를 질질 끌고서라고
녀석은 화장실에 가서 흔들리는 뒷다리를 벌리고 쉬를 눈다.
쉬를 하고 나오면서
회색 두 눈이 나를 올려다본다.
나는 늘 그랬듯이 휴지로 닦아주고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부엌 싱크대 아래 깔아 둔 발매트는 녀석의 자리이다.
녀석은 조용히
휘청이듯
걸어와
그 자리에
앉는
다.
그리고
나를 쳐다본다.
그 자리는 기다림의 자리이다.
나는 그 시선을 알고 있다. 하지만 늘 그렇듯 오늘도
그 자리에서
녀석은 똬리를 틀어버린다.
3주 전
2023 1020
전화가 왔다. 수의사 선생님이다.
"소피아 보호자님 MRI 검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뇌종양입니다.
소피아는 마취 후 깨어나서 아직 수액을 맞고 있습니다. 2시간 정도 후에
다시
병원으로 와주세요."
머리가 띵하다.
뇌종양? 그게 뭐더라?
노견이라 생각하며 당연시했던 그동안의 일들이 머릿속을 지나간다.
세포들이 늙어가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생각했었던 일들...
아니, 애써 외면했던 일들...
다시 동물병원으로 갔다.
한참을 기다리니,
"소피아 보호자님!"
나를 호명한다.
수의사 선생님은 책상 위에 있는 컴퓨터 화면으로
잔뜩 적혀있는 영어와 검사수치들, 엑스레이 사진,
그리고 녀석의 뇌사진을
보여준
다.
뇌의 반은 허옇고 뿌연 무언가가 안개처럼 껴있다.
반대편 뇌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사진을 보여주시며 긴 설명을
해준
다.
몇 가지 치료방법이 있음을 알려주
고,
예후와 치료과정이
사람과 다름을
설명해 준다.
그리고 나를 쳐다본다.
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난 가만히 수의사 선생님의 긴 이야기를 듣고 있다.
이렇게 길게 얘기하는 건 아무래도 녀석의 상태가 아주 많이 좋지 않다는 거다.
"전두엽 특정부위에 뇌종양이 관찰됩니다. 부종성 변화가 뚜렷합니다. 뇌압이 올라가 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한 달을 살게 될지, 세 달을 살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방사선치료를 할 수는 있지만, 서울에 있는 서울동물영상종양센터에 가셔야 가능합니다. 그리고
평균적으로 치료
예후는 좋지 않
습니다. 여기서는 아이가 힘들 때마다 그에 맞는 대증치료를 해줄 수밖에 없습니다 "
녀석은 나와 함께 13년째 살고 있지만,
사람이 아니고 개다.
나는 녀석에게 어디까지 해줘야 하는 것일까?
책임진다는 것은 무엇일까?
난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
갈비뼈부근이 저릿하다.
20년 전
친
할머니를 보냈을 때와 같은 통증이다.
여기가
아프다는 건 이 녀석이 나한테 가족이라는 건데, 사람과 똑같다는 것 같은데...
근데
녀석은
개다.
울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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