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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님마을아파트 Nov 20. 2023

3화 이미 난 예전에 이런 결론을 선택했던 게 아닐까?

개가 사람이냐!(2)


2023 1020 이야기 계속


수의사 선생님이 나를 쳐다본다.

선택하라는 것이다. 

어떻게 할 건지?

나는 녀석의 보호자다. 지금 뭔가 이야기를 해야 한다.

지금 선택사항있는 걸까? 

수의사선생님의 긴 설명의 요점은

이미 늦었다고 하는 거 같은데...

이미 난 예전에 이렇게 될 것을 

선택했던 게 아닐까?


노견들이 한다는 종합건강검진 한번 받아볼 생각 따위는 하지 않았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아픈 개들의 사연을 보면서,

"개한테 무슨 몇십만 원, 몇백만 원짜리 검사를 하고, 수술을 하고, 치료를 해? 개가 사람이야?

버리지 않고 잘 데리고 있다가 잘 보내면 되는 거지? 개가 사람이냐?! "


남편이 했던 말이다. 

그때 나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라고 생각했다. 

개를 예뻐하지만, 생각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개는 개니까.


재수생과 미대 입시생이 있는 집에서 개한테 쓸 여윳돈은 없었다. 그동안 늘 그랬다.

혹여나 예상치 못할 문제가 생기면,

아니 비용이 발생하면,

더 이상은 버겁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조금씩 느꼈던 녀석의 이상 행동들

노견이니까 다 그런 거라 생각하고

넘겨버렸다.

녀석이 나한테 버거워질까 봐 무서웠다. 


그렇게 나는

이미 예전에

이런 선택을 해버린 거다.


수의사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며

나오는 눈물을 참으,

콧물이 질질 나온다.

구깃구깃 들어있던 주머니 속 휴지조각을 찾아 코를 연신 닦는.


"선생님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어요.

그냥 밥 좀 잘 먹을 수 있게 해 주세요.

아무것도 먹은 지 너무 오래됐어요.

그냥 밥 좀 먹고 기운 나게 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대증치료를 하겠습니다.

지금 구토억제제 주사를 놓고, 처방약은 뇌에 관련된 약과 스테로이드 약, 식욕촉진제를 드릴게요. 일주일 후에 다시 오시고, 그 사이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전화해 주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선생님! 잘 부탁드려요."


힘없이 축 쳐져서 의사 선생님 품에 안겨 나오는 녀석과 일주일치 처방약을 받아 들었다.

회색의 두 눈이 나를 가만히 쳐다본다.

그리고 온몸을 나한테 맡긴다.

녀석의 가벼워진 몸이 느껴진다. 





2023 1020 계속



"한우 간 것 좀 주세요."


동네 마트에서 처음으로 녀석을 위해 한우를 샀다. 

개한테 한우가 웬 말이냐!

근데 기분이 좋다.


한우 간 것과 집에 있던 당근, 애호박, 고구마 등 남은 야채들을 작게 잘라 흰밥과 함께 뭉근하게 끓였다. 

또 안 먹을까 봐 간장 조금, 설탕도 한 꼬집 넣었다.

"음~ 맛있는데?!"

맛이 꽤 괜찮다.


"쏘피야! 한우 먹자! 짱 맛있어!

달달하게 간도 했어! 강형욱도 노견은 먹고 싶어 하는 거 다 줘도 된다고 했어! 

먹어 보자 쏘피쏘피! "    


힘없이 누워있던 녀석의 귀가 움직인다.

나는 녀석을 억지로 일으켜 세워

코에 국물을 살짝 묻혀준다.

녀석은 혀로 코를 핥아보더니,

나를 쳐다본다.

느릿하게 일어난다. 

드디어 녀석이 밥그릇에 입을 갖다 댄다. 

 숟가락 정도 되는 적은 양이다.

녀석이 천천히 먹는다.

병원에서 맞고 온 주사가 효과가 있는 걸까.


"하!"

이제야 웃음이 나온다

착한 녀석, 너는 지금도 나한테 위로를 주는구나!

녀석이 먹기 시작하니,

내가 숨이 쉬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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