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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님마을아파트 Dec 11. 2023

19화 개는 일생의 축소판을 보여준다

행복이 뭐 별거냐! 지금이 행복이야!


쏘피는 나에게 '일생'의 축소판을 보여준다.

사람보다 시간이 빨리 흐르는 개를 보면

사람의 일생과 오버랩된다.

(*일생:세상에 태어나서 성장하고 죽을 때까지의 동안)


요즘 녀석을 보면 많은 생각이 든다. 



우리 집에 왔을 때 쏘피는 2~3개월 정도였던 것 같다.

짧은 다리로 잘 걷지도 못하고 뒤뚱뒤뚱거리던 녀석, 쌀알같이 조그만 하얀 이빨이 올라오고,

첫 산책을 했을 때, 길바닥에 발랑 누워서 안고 가라던 녀석,

이갈이를 하고, 아침에 일어나면 밤 사이 다리가 길어져서 빠르게 성장하던 모습에 깜짝 놀랐던 날들,

감기에 걸려 콧물을 흘리고, 장염에 걸려서 설사를 하고 아파하던 녀석을 안고 병원을 다니던 날들,

녀석과 똑같이 어렸던 아들 딸과 함께 웃고, 장난치고, 삐지고, 귀를 팔랑거리며 힘차게 뛰어다니 쏘피의 모습,


바쁜 가족들을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가족이 하나씩 집에 돌아올 때마다 프로펠러처럼 꼬리를 빙글빙글 돌리던 모습,

집에 왔으니 어서 양말을 벗으라며 가족들의 양말을 입으로 물어서 벗겨주던 녀석,

목욕을 시키면 온 집안을 뛰어다니며 온몸을 뒹굴고 혓바닥이 길게 나와 지칠 때까지 뛰어다니던 녀석,

새 장난감을 사주면 세상을 다 갖은것처럼 행복하게 웃으며 장난쳤던 기억들...


어느새 나이가 들어

뛰는 속도가 점점 느려지고,

산책도 나보다 걸음이 느려지고,

동그란 검은 눈동자에 회색빛이 돌고,

사람 같은 눈동자를 하고,

이제 건사료 따위는 먹지 않겠다며 밥투정을 하는 녀석,

새 장난감을 사줘도 이거 재미없다며 시큰둥하고,

자는 시간이 늘어나서 종일 누워있는 녀석,

내가 집에 돌아오면 느릿느릿 걸어와 어느새 내 다리 밑에서 엉덩이를 붙이며,

'어서 와. 보고 싶었어'하는 눈빛으로 반겨주는 녀석...


그런 녀석의 일생을 보며

난 나의 일생을 그리고 사람의 일생을 생각하게 된다.


녀석이 보여준 일생의 축소판을 보면서

난 지금 일생의 어느 만큼을 걸어왔을까?

여태껏 난 잘 살아왔던가,

지금 잘살고 있는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나에게도 올 노년기의 모습을 그려보고 생각한다. 미리 준비해야겠구나. 누구에게나 오는 그 시간을 좀 더 담대하게 받아들여야겠구나.





거실 한켠 쿠션에 누워있는 녀석을  쳐다본다.

언제부터였을까 가만히 날 쳐다보고 있는 녀석의 동그란 눈동자와 나의 눈이 마주친다.

녀석의 저 동그란 눈동자,

언제나 그 눈으로 나에게 많은 말을 하는 녀석...


오늘도 녀석은 그 눈빛으로 나를 위로해 준다.


아프지만 괜찮다고, 

같이 있는 지금 행복하고 편안하다고.

세상 사는 거 별거 아니라고,

그냥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일상을 살면 그게 행복이라고 말해준다.



쏘피? 너 윙크도 할 줄 알아? 오홋!




거실 책장에 있는 한 권의 책 제목이 눈에 꽂힌다.

<지금은 서툴러도 괜찮아> 

나한테 하는 말 같다.

음~ 도대체 몇 살까지 서툴러도 괜찮은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 나이가 되어도 처음 겪게 되는 일들이 생기고, 그때 생기는 낯선 감정들을 어찌 갈무리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매주 달라지는 녀석의 모습을 보는 게 쉽지 않아서,

매번 아프고 속상하지만,

그래도 지금은 같이 있으니 행복한 거라며 괜찮다고 위로한다.


녀석의 곱슬곱슬한 털을 만지며, 책을 읽는다.

이해인 수녀님의 글귀가 나를 어루만진다.


'한 번 간 시간은 두 번 다시 오지 않아요. 정신을 차리고 최선을 다하세요. 성실하고 겸손하게!'


나를 다시 움직이게 하고 다시 일으켜 세우는 말, 삶이 힘들 때 충전시켜 주는 약이 되는 말,

'오늘은 내 남은 생의 첫날입니다.'

이 말이 있어 나는 행복하다. 이 말을 계속 되새김하다 보니 이런 기도가 절로 나온다.

"오늘도 싱싱한 희망의 첫 마음으로 내 남은 생의 첫날을 살게 하소서. 새로운 감탄과 경이로움을 향해 나의 삶이 깨어 흐르게 하소서."


<'지금은 서툴러도 괜찮아' 이해인 수녀님 글 중>



이해인 수녀님께 받은 사인과 선물로 받은 책. 책 속에서 난 위로를 받는다.



오늘은 쏘피의 남은 생의 첫날이다.

그리고 오늘은 내 남은 생의 첫날이다.


마지막이 아닌 '첫날'이라는 단어가 주는 긍정의 힘에 감사함이 생긴다.


쏘피를 응원해 주시는 독자님들도

'오늘은 내 남은 생의 첫날!'로 기쁨이 가득하길

쏘피가 응원하겠습니다!

멍멍!




   

"Have a good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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