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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님마을아파트 Dec 17. 2023

20화 너의 시간은 '기다림'

쏘피에게 가장 많이 한 말


2023 1207 


오늘은 동물병원에 가는 날이다.


"쏘피야! 쏘피! 기다려!"

 

진료 예약시간이 곧이다. 서둘러야 한다. 

가만히 누워있던 녀석은

"가자!" 하는 나의 말에 벌떡 일어난다. 

그리고 힘이 없는 뒷다리로 슬슬 걸어와

나를 쳐다본다.

나는 녀석에게 급히 옷을 입히며,

가만히 있는 녀석에게

굳이 "기다려!"라는 말을 한다.


녀석을 차에 태우고, 또 말한다.


"쏘피야 기다려! 금방 갈 거야."


그냥 얌전히 앉아있는 녀석은 동그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늘 그렇듯 기다린다.

.

.

.

새삼 깨닫는다.

나의 입버릇 같은 말과 너의 시간이 같이 흐른다는 것을...


'! 그렇구나.

쏘피야, 난 너에게 기다려!라는 말을 가장 많이 하고 있구나.'


간식을 줄 때도, 밥을 줄 때도, 산책을 하면서도, 목욕을 할 때도, 하물며 놀아줄 때도...

습관처럼 나오는 말.

"기다려!"


이 세 글자에 미안함이 가득 담긴다.

너의 하루에 난 기다림을 너무 많이 줬구나.




동물병원에 도착했다.

2주 만의 내원이다. 녀석은 2주마다 병원에 가서 상태를 체크하고 약을 조절한다.

지난번 내원 시에는 경련의 횟수가 현저히 늘어나서 스테로이드와 항경련제의 용량을 늘렸었다.


"소피아어땠어요?"

수의사 선생님이 물어보신다.


"지난번에 주신 약을 처음 먹인 후, 어지러운지? 비틀거리고 쓰러지기도 했어요. 약에 취한 것처럼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선생님께 전화로 여쭤본 대로 일주일 동안은 약의 4/5 용량만 먹였어요.

선생님께서 전화통화로 말씀해 주신 대로 약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그 후로는 멍해있는 시간들이 잠깐씩 보이고,

한 번은 왼쪽으로 고개가 심하게 돌아가면서 온몸이 강직되더라고요.

그래서 그 후부터 오늘까지 일주일 동안은 주신 약의 용량을 빼지 않고 전부 다 먹였어요. 그래서 그런지 경련 증상은 없었는데, 멍해있는 시간들이 있어요."


"네에. 2주일 중 첫 1주일은 약의 4/5만 복용했고, 경련 증상이 한번 크게 나와서 그 후 1주일은 처방한 용량대로 전부 복용한 거지요?!" 


"네에, 맞아요. 선생님"


나는 수의사 선생님께 녀석의 상태를 빠짐없이 보고한다.

수의사 선생님은 잠시 생각하시더니,

"스테로이드약을 아주 조금 줄일게요. 아주 미량이니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거예요. 그리고 2주 후에 오시고, 그 사이에 힘들어하면 꼭 전화해 주세요."


"네에, 알겠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수의사 선생님은 스테로이드의 부작용과 경련증상을 억제해야하는 문제 사이에서 녀석에게 최선의 선택을 하기 위해 고민하는 것 같다.

나는 쏘피를 안고 선생님께 감사 인사를 하고, 진료실에서 나온다.





대기실에 여러 마리의 개들이 눈에 들어온다.

뒷다리가 뭉툭한 녀석은 휠체어를 타고 있다. 치와와인 것 같은데, 나이가 어려 보인다. 어린 녀석이 왜 뒷다리가 저리 됐는지 안쓰럽다. 그래도 휠체어로 뒷다리를 대신 한 녀석은 마냥 좋은지 꼬리를 살랑거리며 돌아다닌다.


 다른 녀석은 나이가 들어 보인다. 하얀 티즈인 건가? 꽤 예뻤을 것 같아 보이는 녀석은 호흡하기가 어려운지 보호자 품에 안겨있고, 보호자 옆에는 녀석의 산소호흡기가 놓여있다.



각자의 사연들이 있겠지?

그들의 소중한 추억을 내가 함부로 가늠하면 안 된다.

개한테 저렇게까지 해야 하는 거야? 같은 오만한 생각을 하면 안 된다.

나는 13년을 반려견과 함께 했지만, 이제서야 내가 얼마나 얄팍한 나만의 잣대로 세상을 생각하고 판단했음을 내 품에 안겨있는 쏘피를 보며 다시 체감한다.



녀석은 허공을 향해 저렇게 멍하게 앉아있곤 한다. 그런 너의 뒷모습이 안타깝고 아프다... 근데 쏘피야! 너 뒷모습이 너무 귀여워♡




집에 돌아오는 길, 어김없이 산책을 한다.

쏘피는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정신없이 낙엽들을 헤집는다.

그리고 낙엽 밑에 있던 검은색 무언가를 입으로 문다.


"으악! 최쏘피! 안 돼! 먹으면 안 돼! 기다려!"


나는 허겁지겁 녀석이 문 검은 물체를 낚아채서 버린다.

에휴~ 다행히 먹진 않았다.


'앗! 난 또 "안 돼! "기다려!"를 너에게 말했구나.' 


역시 습관은 무섭다.

이제부터는 '안돼! 기다려!' 대신에,

'괜찮아! 사랑해! 고마워!'로 말해봐야겠다.





낙엽 속에서 보물찾기?
왼쪽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것 같다. 몸도 왼쪽으로 살짝 기우뚱? 작은 너의 변화에 내가 너무 민감한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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