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구 신계동 장군보쌈
용산역에 내려 10분을 넘게 걸어가면 이곳에 음식점이 있을까 싶은 골목길이 나온다. 조금씩 걸어 들어가면 곳곳에 카페가 눈에 보인다. 그 안쪽에 장군보쌈은 자리했다.
장군보쌈의 간판은 독보적이다. 눈에 띄는 옛날 글씨체와 따뜻해 보이는 식당 내부만 보면 들어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 풍겨져 나오는 아우라만으로 맛집이란 느낌이 온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신발을 벗고 올라가야 할 것 같지만, 신발을 신고 마룻바닥에 들어가면 된다. 점심땐 바쁘다 보니깐 다소 불친절할 수 있는데, 그렇다고 미워할 정돈 아니다.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 오히려 편안함이 느껴질 때도 있다. 그래도 저녁에 가면 술안주로 보쌈을 먹으며 비교적 조용히 담소를 나눌 수 있다. 점심과 저녁은 아예 다른 가게로 느껴질 정도로 분위기가 달랐다.
점심시간엔 어디서 그렇게 오는지 사람들이 붐빈다. 조금만 늦으면 웨이팅을 해야 한다. 오픈 시간에 맞춰서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간다.
이곳 역시 여느 보쌈집처럼 백반이 인기다. 요즘 같은 시기에 9000원짜리 정식이라니. 믿을 수가 없는 가격이다. 그렇다고 부실한가. 그렇지도 않다. 도토리묵과 콩나물, 김치 등 반찬도 풍성하다. 된장찌개도 나온다. 무엇이 부족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저녁엔 모둠보쌈을 많이 시킨다. 생굴이 함께 나오고 콩나물무침도 곁들여서 나온다. 쌈을 싸 먹기 좋게 채소들도 함께 나온다. 푸짐해 보이는데 가격은 비싸지 않다. 역시 전지를 쓰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것 같다.
주방에선 이모 두 분이 계신다. 고기를 썰고, 김치를 올려서 플레이팅 하면 서빙하는 분이 그대로 내놓는다. 점심엔 바쁘다 보니 시간이 좀 걸린다.
저녁에는 조금만 기다리다 보면 음식이 나온다. 가끔 이모가 쟁반국수 시킨 걸 까먹고 안 줄 때도 있으니, 너무 안 나온다 싶으면 꼭 말하자. 점심보단 저녁에 일하는 이모가 적어서 오히려 바빠 보이기도 하다.
그릇에 잘 깔아놓은 고기와 김치가 나오면 젓가락을 들면 된다.
이제부턴 고기와 김치의 시간이다.
장군보쌈의 고기는 살짝 퍽퍽하다. 다른 보쌈집과 달리 살코기 부분이 진해서 그런 듯 싶다. 불안하다 싶으면 살코기와 비계를 섞어달라거나, 비계를 많이 달라고 하면 된다.
아쉽게 느껴질 수 있는 점은 고기 자체의 냄새가 완벽히 사라지진 않았다는 것이다. 약간의 돼지 잡내가 남아 있어서, 내가 돼지고기를 먹는다는 걸 깨닫긴 어렵지 않다.
잡내가 난다고 해서 고기가 별로란 말은 아니다. 오히려 그 잡내가 남아있기 때문에 더 자연스럽다. 인위적으로 잡내를 없애기 위해 수많은 약재와 재료를 넣은 고기보단 훨씬 낫다. 좋지 않은 고기의 냄새나 불쾌한 잡내가 아니라 돼지고기의 향긋한 냄새가 고기에 남아있다.
살짝의 퍽퍽함 사이로 부드러움이 침투할 때가 있다. 비교적 두껍지 않게 썰린 탓에 그런 듯하다. 목구멍을 넘기기 어렵지 않은 맛이다. 지나치게 달달한 고기가 싫은 사람들에겐 제격이다. 보통 김장철에 만들어 먹는 고기와 비슷하다면 비슷하다.
고기에 남은 향 때문에 김치가 더 살아난다. 김치 자체의 양념이 과도하게 달거나 진하진 않지만, 고기의 향을 덮어줄 정도는 된다. 전통적인 김치에 가깝기 때문에 기교가 느껴지지도 않는다. 무난한 듯하면서도 장군보쌈만의 매력을 가진 김치다. 고기에 무리하지 않으면서, 김치에 약간의 힘을 실었다. 그래서 조화롭다.
한 입, 두 입 먹다 보면 다른 반찬들도 눈에 들어온다. 고기와 김치만으로 끝내기엔 아쉬운 곳이다. 쌈을 싸 먹어도 좋고 굴을 곁들여도 좋다. 본래 굴과 보쌈을 함께 먹는 걸 선호하지 않는 사람도 이곳에선 먹을만하다.
쟁반국수 역시 보쌈과 잘 어울린다. 이유는 간단하다. 쟁반국수의 양념이 진하기 때문이다. 김치만으로 고기를 감싸기 힘들다고 느껴진다면, 쟁반국수를 시켜서 먹어봐도 나쁘지 않다. 그게 장군보쌈의 매력이다.
고기와 김치를 다 먹고 나면 아쉬움이 든다. 그럼 고기를 추가하면 된다. 김치는 서비스로 준다. 이곳의 인심이다. 막국수를 시켜서 후식으로 먹어도 된다. 이곳은 보쌈이 낯선 사람에게도 그리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이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잠시 화장실을 들른다. 공용이지만, 칸은 분리 돼있다. 더럽진 않지만, 그렇다고 깨끗하지도 않다. 화장실을 들렀다가 밖으로 나오면 시원한 공기가 느껴진다.
주변 골목엔 카페가 여럿 있어서 후식으로 카페를 들러도 된다. 여차하면 산책으로 용산역까지 걸어도 되고, 삼각지역까지 가도 그리 오래 걸리진 않는다.
장군보쌈의 매력은 무엇일까. 돼지 향이 남은 고기일까, 아니면 힘을 주면서도 무난하게 보이기 위해 노력했던 김치일까. 확실한 건 이 둘의 조화가 적절했기 때문에 다시 찾을 법한 보쌈집이라는 사실이다.
겉으론 평범해 보이면서도 사실은 묵직함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평범해 보이는 두 조합이 만났을 때 펼쳐지는 꽤 뛰어난 시너지 같다.
과하지 않은 맛을 느끼고 싶을 때 찾는 곳, 장군보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