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동에는 한반도에서 손에 꼽히는 평양냉면집이 있다. 회사원 유동인구가 많은 이 주변에는 주말이 되면 문을 닫는 곳이 많다. 손님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곳 평양냉면집은 사람이 바글바글하다.
강남구청역 3번 출구를 나와서 쭉 걷다 보면 숨어있는 이곳이 나온다. 진미평양냉면이라는 간판만 봐도 맛집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몇 년째 미슐랭 맛집으로 선정됐다는 증거가 붙어있다.
겨울에는 줄을 서지 않고 바로 음식을 맛볼 수 있지만, 무더위가 한창일 때는 줄을 서야 한다. 그래도 본관에 별관까지 널찍하게 있어서 오래 기다리지 않고 자리가 생긴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면 왁자지껄한 소리가 가득하다.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저마다 냉면을 한 그릇씩 먹고 있다. 만두를 반찬으로 먹기도 하고, 이북식 편육(소수육)이나 제육(돼지고기 수육)을 먹기도 한다. 곳에 따라 어복쟁반을 안주 삼아 술을 먹는 사람들도 있다.
자리에 앉으면 반찬으로 냉면집에서 나오는 무채가 나온다. 김치와 쌈장, 만두를 찍어먹는 듯한 양념장, 마늘도 옆에 있다.
이 집은 냉면집이지만, 제육을 반드시 먹어야 한다. 평양냉면을 좋아해서 전국 팔도를 돌며 평양냉면을 먹는 지인도 이 집은 냉면맛집이 아니라 제육맛집이라고 인정했다.
자리에 앉아 물냉면, 제육을 시키면 금방 음식이 나온다.
이제부터 고기의 시간이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 진미평양냉면 제육(돼지고기 수육)
평양냉면집은 제육을 파는 곳이 많다. 돼지고기를 육수로 쓰거나 고명으로 올리기 때문인 것 같다. 평양냉면을 잘 모르지만, 가는 곳마다 제육이 있는 경우가 절반 정도 됐다.
냉면과 조화로운 것도 한 몫한 듯싶다. 면에다가 고기를 싸 먹으면 술술 넘어가기 때문이다. 돼지고기를 삶아서, 면과 같이 먹다 보면 허전함이 채워지기도 한다.
진미평양냉면의 제육은 제육 자체만으로도 훌륭하다. 면이랑 같이 먹어도 맛있지만, 고기만 따로 먹어도 충분히 맛있다. 살코기와 비계의 비율은 7:3 정도. 살코기가 질기지도 않고 부드럽다.
한 입 먹고, 두 입 먹다 보면 물릴 때가 온다. 그때 냉면과 같이 한입을 베어 먹으면 물림도 가신다.
이 집 고기의 장점은 국내산 돼지를 쓴다는 점이다. 자칫 외국산 고기를 쓰면 과한 양념으로 물들기 마련인데, 이 집은 국내산 고기를 사용한다. 따로 냉동했다가 녹이는 게 아니라, 그대로 가져온 고기를 썼을 가능성이 크다. 육수를 냈던 고기일지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질기지도 않다.
삼겹살인데도 과한 느낌이 없다. 물론 혼자서 제육 반접시를 다 먹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느끼하긴 했다. 그래도 다른 음식과 잘 어울렸고, 삼겹살 특유의 기름기가 심하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아쉬운 점은 김치다. 김치가 그냥 일반 김치다. 아무래도 평양냉면집이다 보니 김치를 따로 만들지 않는다. 제육이라서 보쌈과는 사뭇 다른 점이 여기에 있다.
그래도 일반 김치와 함께 먹기 나쁘진 않다. 느끼함을 잡아주지 못하는 건 매우 아쉽지만. 고기 맛 그대로를 느낄 수 있다는 게 오히려 좋은 점이다.
진미평양냉면의 고기는 다른 보쌈집들 고기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 진미평양냉면의 냉면들
이 집의 별미가 제육이라면, 메인은 냉면이다. 평양냉면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강남구청역이라는 다소 생경한 곳을 찾기 마련이다. 봉밀가도 있고, 진미평양냉면도 있고, 조금 더 걸어가면 평양면옥도 있다.
방송에도 많이 나온 이곳 평양냉면은 호불호가 갈린다. 면의 맛이 국물에 많이 스며든 느낌이다. 오이향이 좀 나고, 콩나물국 같은 맛도 살짝 난다. 평양냉면은 지식이 얕아서 함부로 말하기 힘들지만, 내 기준 최고는 아니다.
아무렴 어떤가. 비빔냉면이라는 선택지도 있고, 겨울에는 온면도 있다. 제육을 먹으러 온 것이라면 냉면은 곁들임 정도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만두도 먹을만하다. 물론 최고는 아니지만, 이북식 만두를 먹고 싶다면 사이드로 빼놓을 수 없다.
진미평양냉면을 맛보고 걸어 나오면 근처에 핫한 술집들이 한 두 개씩 있다. 오징어회나 문어숙회집 등 2차로 즐기기에 좋은 곳들을 찾아가기 좋은 위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