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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위바위보쌈 Sep 07. 2023

시청 앞 지하철역에서 만난 신성한 보쌈

서울 중구 북창동 신성식당

서울 중구 북창동 신성식당 외관

골목과 골목, 골목과 또 다른 골목이 이어진 북창동. 이곳에는 전통을 이어온 맛집이 꽤나 많다. 코로나 시기를 겪으면서 몇몇 맛집이 사라지긴 했지만, 여전히 명목을 이어가는 곳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보쌈으로 진검승부를 하는 곳이 있다. 바로 신성식당이다.


'시청 앞 지하철역에서'라는 동물원의 노래를 들으며 시청역에 내린다. 7번 출구나 8번 출구로 나와 소공동 우체국이 있는 쪽으로 가면 맛집들이 몰려있다. 농민백암순대와 대복 등 이름난 맛집도 있고, 최근 명성을 얻는 프랜차이즈 음식점들도 꽤나 생겼다.


맛있는 냄새를 풍기는 음식점들을 뒤로하고 골목을 따라 들어가면 숨은 식당들이 나타난다. 대복을 끼고 우측으로 돌면 묵호횟집이 나오는데, 그 옆에 신성싱당이 있다.


신성식당은 지하에 자리가 있다. 문은 1층에 있는데, 화장실만 1층에 있고 바로 계단으로 내려가는 길이 나온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10석 남짓한 작은 식당 내부가 나온다.


벽에는 거울이 있어서 공간이 넓어 보인다. 그래서 좁은데도 좁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주로 낮술 하는 아저씨들이 저녁까지 앉아있곤 한다. 그래서 식당이 비어있는 경우는 적다.


들어가면 친절하게 아저씨나 아주머니가 자리를 안내해 주신다. 주방에는 아주머니 두 분이 계시고 분주하게 음식을 준비하신다.


자리를 찾아 앉으면 김무침, 어묵볶음, 고추부각, 마늘과 고추, 새우젓, 쌈장이 자리에 놓인다. 주위를 둘러보면 사람들은 보통 간재미회보쌈을 먹고 있다. 술안주로 매생이탕을 시켜서 먹는 사람도 꽤나 있다.


메뉴에는 민어찜이나 홍어삼합, 문어숙회, 능성어찜 등 산지직송 해산물도 있는데 평이 그리 좋진 않다. 점심에는 고등어구이와 삼치구이, 제육쌈밥 등을 판다. 역시 보쌈을 메인으로 하는 곳이니 보쌈을 시키는 게 답이다.


이곳은 수요미식회에 굴보쌈 맛집으로 소개가 되기도 했다. 역시 굴보쌈 전문집답게 여름에는 굴보쌈이 제공되지 않는다. 굴전은 열을 가했기 때문에 판매한다.


대신 간재미회보쌈이 있다. 간재미무침과 함께 고기를 먹는 것이다. 김치보쌈 또는 간재미회보쌈 중 하나를 시키면 된다.


앉아서 조금만 기다리면, 역시 보쌈이다. 금방 나온다.


이제부터 고기와 김치의 시간이다.


서울 중구 북창동 신성식당 김치보쌈

이 집의 고기는 국내산이다. 부위는 앞다리살과 목살 쪽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삼겹살처럼 비계가 많다. 살코기와 거의 5대5 비율이다.


고기는 소시지를 먹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소시지처럼 지나치게 가공된 맛은 아니지만,  소시지처럼 풍미가 가득했다. 육향이 확 밀려오는데 그렇다고 비릿하거나 역겨운 맛은 절대 아니다. 돼지향이 풍미로 가득 채워서 즐거움을 선사했다.


첫맛은 설탕이나 단맛을 넣지 않았다고 착각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내 그 마음이 바뀌었다. 끝맛에 미묘한 달콤함이 남아있다. 아마도 과하게 단맛을 첨가하진 않은 듯하다.


비계가 많다고 해서 결코 느끼하지 않다. 신기하다. 보통 비계가 많은 고기를 먹다 보면 느끼해서 물리기 마련인데 하나도 느끼하지 않다.


그 비결은 역시 김치다. 김치는 자극적이지 않았다. 할머니의 손맛 같았다. 미원으로 가득 채우거나 물엿으로 버무리지 않았다. 지나치게 젓갈을 많이 넣어서 풍미를 더한 맛도 아니다. 그냥 보쌈김치다. 모양도 맛도 오래된 전통의 보쌈김치 같았다.


달지 않고 짜지 않고 맵지 않은 보쌈김치는 금호동의 은성보쌈과 비슷했다. 하지만 시원한 맛은 없어서 김치가 고기를 방해하지 않았다. 조우진이나 고창석 같은 훌륭한 주연급 조연배우를 자처한 것 같았다.


아마 그 이유는 간재미회나 부추, 무말랭이 덕인 것 같다. 주연급 조연배우 옆에 숨은 또 다른 훌륭한 조연들이 있기에 김치가 굳이 주연일 필요가 없다.


간재미회는 삭힌 맛이 살짝 나서 호불호가 갈릴 수 있지만, 술과 함께 곁들이기에 매우 훌륭하다. 부추무침은 계속 손이 갈 정도로 달달하니 양념이 잘 스며들었다. 무말랭이는 짜지 않고 적절한 간이 배어서 보쌈과 잘 어울린다. 김치의 부족한 양념맛을 무말랭이가 채워준다.


이 집은 유명한 주연배우와 훌륭한 조연배우들이 만들어낸 한 편의 천만영화 같은 느낌이다.

다 먹고 나면 추가를 안 하기 힘든 맛이다.


서울 중구 북창동 신성식당 메뉴판

술을 한잔씩 곁들이던 사람들이 삼치구이와 고등어구이를 찾곤 한다. 하지만 저녁에는 삼치구이와 고등어구이를 팔지 않는다.


대신 굴전과 부추전, 매생이탕이나 매생이떡국을 추천하고 싶다. 이 집의 전은 지극히 평범하지만, 보쌈과 함께 먹기에 부족하지 않다. 매생이탕 역시 소주와 함께 먹기에 조화롭다.


신성식당이 좋은 이유는 천만영화 같은 완결성을 주기 때문도 있지만, 맛 때문이다. 이곳의 고기와 보쌈김치는 다른 식당들과 전혀 다른 맛이다. 물론 각각의 보쌈집들이 다 다른 맛이지만, 어느 정도 비슷한 맛이 느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신성식당은 완벽히 다르다. 어떤 재료를 넣는지 다 알 수 없겠지만, 다른 보쌈집과 재료가 다른 게 분명하다.


숨어있다는 사실은 신성식당의 매력을 더 극대화한다. 골목, 골목 그 안에 골목까지 들어가야 나오는 신성식당을 가면 괜히 나도 모르게 아지트에 와 있는 느낌이다.


시청 앞 지하철역에 내린다면, 추천하고 싶은 신성식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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