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위바위보쌈 Sep 21. 2023

돼지고기를 굽지 않아야 하는 이유

서울 중구 다동 인천집

서울 중구 다동 인천집 메뉴판

돼지고기는 구워야 제맛이라는 말이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돼지고기를 굽지 않고도 훨씬 맛있는 걸 깨닫게 해주는 집이 있다. 바로 인천집이다.


인천집은 인천에 있지 않다. 서울 종로 다동무교동음식문화의거리 한복판에 있다. 을지로입구역 1-1번 출구로 나와서 남포면옥이 있는 골목을 쭉 따라오면 허름한 건물 2층에 인천집이 있다.


통로라고 말하기도 힘든 좁고 가파른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인천집이 등장한다. 노포 그 자체다. 다 낡아가는 허름한 내부가 자리하고 있다. 50년 전통이라는 간판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증명해 주는 내부의 모습이다.


이곳은 점심에도 저녁에도 사람이 꽉 찬다. 그래서 일행이 다 오지 않으면 들어가지 못한다. 점심에는 칼국수나 비빔국수, 만둣국을 먹으러 오고 저녁에는 보쌈을 비롯한 각종 안주들을 먹으러 오곤 한다.


다소 불친절하다는 말이 있지만, 그렇지 않다. 넉살 좋게 대하면 이모도 잘 받아주신다. 점심시간에 가끔 칼국수가 제동이 걸려 늦게 나오기는 하지만, 조금 기다리면 그래도 금방 나온다.


자리에 앉으면 마늘과 고추, 새우젓, 쌈장이 놓이고 빈 그릇이 하나 나온다. 옆에 있는 김치통에서 김치를 꺼내 담으면 된다. 보쌈김치는 따로 나온다.


메뉴는 다양하다. 여름에는 굴보쌈을 팔지 않는데, 최근부터 굴보쌈을 다시 시작했다. 보쌈이 메인이지만, 낙지볶음, 두부전, 파전도 있다. 그야말로 술과 곁들이기에 제격이다.


보쌈을 시키고 왁자지껄한 소리 속에서 조금 기다리다 보면 큼지막한 그릇에 고기와 김치가 따로 담겨 나온다. 윤기가 좔좔 흐른다.


이제부터 고기와 김치의 시간이다.


서울 중구 다동 인천집 보쌈

이곳의 보쌈은 국내산 오겹살이다. 입구에 커다랗게 "저희 업소는 국내산 오겹살을 사용합니다"라고 쓰여있다. 삼겹살처럼 보이지만, 껍질 부분이 더 두껍다. 그래서 기름진 부분이 있다.


하지만 비계가 과하게 느끼하지 않다. 보통 삼겹살 보쌈은 느끼해서 몇 점 먹고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인천집의 보쌈은 오겹살인데도 느끼하지 않다.


이유는 양념 때문이다. 딱 먹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재료들을 쓴다. 일단 후추맛이 굉장히 강하다. 그리고 간장의 짭조름함도 살짝 느껴진다. 월계수의 향도 미세하게 난다. 어디선가 맛본 느낌이다. 바로 중국 요리 동파육의 맛이다.


동파육 같지만, 동파육처럼 기름지거나 양념이 과하지 않다. 그래서 신기하다. 후추맛이 좀 세긴 하지만, 부담스럽지 않다. 고기만 따로 먹어도 물리지 않는 맛이다.


오겹살로 보쌈을 만드는 건 단언컨대 쉬운 일이 아니다. 누군가는 쉽게 만들 수 있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느끼할 수 있고 질리기 마련이다. 잘못 만들면 돼지고기 잡내가 가득할 수 있다.


그런데도 인천집의 오겹보쌈은 물림이 덜하다. 느끼함도 후추향이 잡아준다. 누군가는 오겹살을 구워 먹어야 한다고 주장하겠지만, 이 집의 보쌈을 먹는 순간 그 생각은 달라진다. 오겹살은 역시 삶아 먹어야 한다.


김치는 전형적인 전통 보쌈김치다. 모양도 그렇다. 배추김치 안에 속을 무로 채운 김치다. 더 전통에 가깝다고 느낀 것은 양념이 과하지 않다. 얼핏 보면 동치미처럼 맑은 색깔을 띤다.


겉절이 맛도 아니다. 그래서 아쉬울 수도 있다. 누군가는 양념이 느껴지는, 돼지고기의 잡내를 잡을 김치를 원할 수 있다. 하지만 인천집의 김치는 돼지고기가 충분히 주연일 수 있게 빛내주는 조연에 가깝다. 아니, 단역 정도로 봐도 무방하다.


그만큼 인천집은 오겹살을 왜 구워 먹으면 안 되는지 알려주는 보쌈 맛집이다.


서울 중구 다동 인천집 김치

저녁에 오면 남은 보쌈김치를 한 점씩 집어 먹으며 소주를 한잔 하면 심심함을 달랠 수 있다. 그릇에 담긴 김치는 칼국수랑 먹기 좋은 김치다. 김치가 심심한 덕에 술의 맛을 더 느끼게 해 준다.


홍어도 팔고 굴도 판다. 칼국수나 낙지볶음도 저녁 안주로 좋다. 그게 이 집에 아저씨들부터 젊은 사람들까지 방문하게 하는 이유다.


왁자지껄 시끄러운 소리 탓에 오래 버티지 못하고 기가 빨릴 수 있다. 그렇다면 주변에 다른 2차 장소를 찾아보는 것도 쉽다. 다동무교동음식문화의거리에는 맛집이 즐비하다.


인천집은 역사가 있는 곳이다. 나의 역사가 있고, 사람들의 역사가 있다. 그래서 음식이 더 맛있게 느껴진다.


이 보쌈에도 역사가 담겨있을 것이다. 나는 경험하지 못한 여러 가지 일화들과 추억들이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그 맛이 지금의 아름다운 오겹보쌈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인천집은 많은 사람을 오래도록 불러들일 맛집이다.


구워 먹는 오겹살이 아닌, 색다른 오겹살을 만날 수 있는 곳. 인천집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