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위바위보쌈 May 30. 2024

우리가 떠든 제주 밤바다

제주 서귀동 천짓골 식당, 네 번째 이야기

마치 새로운 고기를 씹는 기분이었다. 물에 담겨 있었단 이유만으로 육즙이 다시 살아나다니. 이 아이디어는 정말 좋았다. 몇몇 보쌈집들은 공기와 닿으면 고기가 쉽게 딱딱해졌는데, 천짓골은 달랐다.


그 사람도 즐겁게 고기를 먹고 있었다. 내가 데려온 건 아니지만, 그 사람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 나도 절로 미소가 나왔다. 그러자 그 사람이 물었다.


"뭐가 그렇게 즐거워요?"


그냥 맛있어서요.라고 짧게 답하고 여러 가지 생각들이 내 뇌를 맴돌았다. 전 애인에 대해 물어봐야 할까. 보쌈에 대해 이야기해봐야 할까. 이것저것 고민하면서 한 점 한 점 먹다 보니 고기가 동이 났다.


고기를 다 먹으면 우리의 대화도 끝이고, 우리의 대화가 끝이면 우리의 만남도 끝일까.라고 생각하던 찰나에 그 사람이 다시 말을 걸어왔다.


"할 거 없으면 같이 바다나 보러 갈래요?"


갑자기 훅 들어온 질문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람은 제주 밤바다에 꽤나 일가견이 있었다. 자기가 사람 없는 바다를 잘 안다고, 자기만 따라오라고 자신했다. 아마도 인터넷을 열심히 찾아본 듯했다.


배부르게 먹은 우리는 식당을 떠나 바깥으로 나왔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밤이 다가오고 있었고 더운 공기가 조금 가셨다. 그 사람은 옆에서 열심히 버스를 알아보고 있었다. 내가 차를 가져왔다고 말하자 본인이 타도 괜찮겠냐고 미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타지 않으면 혼자 가실 거냐고 농담하자 미안함이 가셨는지 웃으며 고맙다고 했다.


차를 세워뒀던 주차장에 그 사람과 함께 도착했다. 주차할 때만 해도 누군가와 같이 올 거라고 생각도 못했는데. 사람 일이 한 시간 만에 달라질 줄 몰랐다. 약간은 즐겁고 떨리는 마음으로 차에 함께 올라탔다.


그 사람이 알려준 바닷가는 표선이었다. 한 번 들어본 적은 있었다. 멸치국수가 맛있는 식당이 있다고, 친구가 알려준 기억이 있다. 유명하면서도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사색에 잠기기에 좋은 곳이라고 그 사람은 말했다.


"꽤 걸리네요."


네비에 찍힌 시간은 45분. 그 사람은 시간을 보고 다시 미안한 듯, 말을 걸었다. 나는 운전하는 걸 좋아한다며 괜찮다고 말했다.


"제가 심심하지 않게 떠들게요."


말처럼 그 사람은 조잘조잘 떠들기 시작했다. 제주도를 한 번도 못 왔던 이유, 통신사 회사는 어떤 분위기인지, 좋아하는 음악, 취미, 맛집 정보 등 이것저것 떠들었다. 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두운 제주 도로를 달렸다.

제주도 표선 바닷가의 밤 풍경

40분을 넘게 달려 도착한 표선은 깜깜했다. 하지만 무섭지 않았다. 고요했고 아늑했다. 건물이 많지 않아서 더 어두웠다. 오로지 잔잔한 파도 소리만이 배경음악으로 들려왔다. 어둠에 익숙해진 눈은 어느새 아름다운 바다의 전경을 선사했다.


터벅터벅 내 앞을 빠르게 걸어가던 그 사람은 두 사람이 누울 수 있는 해먹을 찾았다. 이런 게 모래사장 한복판에 있다니. 신기했다.


그 사람은 먼저 해먹에 누웠다. 그리고 나보고 누워서 하늘을 보라고 했다. 어색해하던 나도 그 사람을 따라 누웠다.


우리가 함께 바라본 밤바다 하늘에는 별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이전 03화 우리는 제주도 보쌈으로 이어졌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