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수동 훼미리손칼국수보쌈, 첫 번째 이야기
며칠간의 제주여행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왔다. 덥고 습하고 지독한 날씨가 이어지고 있었다. 아르바이트도 그만뒀고 개강은 아직 남은 시기여서 집에서 뒹굴거리던 때 휴대폰에 진동이 울렸다.
‘우리 어디서 볼래요?’ 그 사람의 카카오톡 메시지였다. 지난주 제주도에서 보쌈을 먹고 바다를 구경했던 우리는 서울에서 만남을 기약하며 각자의 길을 갔다. 그 사람보다 내가 돌아가는 비행기가 빨랐기에 제주도에서의 만남은 거기까지였다. 그날 밤 우리는 바다와 밤하늘, 별을 만끽했고 그 추억과 함께 육지로 돌아왔다.
어느 곳을 골라야 할까 머리를 굴렸다. 지난번에 보니 보쌈의 맛을 잘 느끼는 사람이던데 최고로 맛있는 집을 말해야 할까. 아니면 용인에서 오기에 멀지 않은 곳으로 정해야 할까. 너무 맛있는 데를 벌써 가자고 하면 다음에는 어떡하지. 이 보쌈은 입맛에 맞을까. 별 걱정을 다 하던 중에 그 사람이 재차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왔다.
‘성수동에 훼미리손칼국수보쌈이라는 곳이 있대요. 제가 칼국수를 좋아해서요.’ 처음 들어보는 곳이었다. 훼미리손칼국수보쌈? 이름이 참 특이했다. 칼국수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그 사람이 좋아한다니깐. 나는 보쌈이나 먹으면 되겠다는 마음으로 흔쾌히 수락했다.
‘근데 멀지 않아요?’라고 물었다. 한 시간 좀 넘게 걸린다고 했다.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장소를 바꿀까 했지만 그 사람은 괜찮다고 했다. ‘어차피 어디든 한 시간 넘게 걸려요.’ 돌아온 대답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오후 5시 서울숲역 1번 출구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고 바로 준비에 나섰다. 제주도에서 만난 것과는 또 느낌이 달랐다. 어떤 옷을 입어야지? 어떤 신발을 신어야 하지? 수차례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은 평범. 평범한 단화와 청바지, 흰색 반팔티를 입고 집 밖을 나섰다.
서울숲역은 꽤나 멀었지만 가는 발걸음은 상쾌했다. 더운 공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습한 것도 하나도 모르겠다 싶을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이마와 코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생각보다 빨리 도착하는 바람에 1번 출구에서 뙤약볕을 맞으며 그 사람을 기다렸다. 괜히 떨리는 마음에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오는 사람 사람마다 그 사람인 것 같았다가 아니었다가 또 그 사람인 것 같다가. 그런 마음으로 10분쯤 지났을까. 그 사람 역시 5시가 되기 전에 에스컬레이터를 올라왔다.
제주도에서 본 그 사람과는 다른 사람이 있었다. 더 밝고 더 맑았고 더 화사했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그 사람의 뒤로는 괜히 빛이 더 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오랜만이에요.” 별 거 아닌 말에도 나는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또 고민했다. 그러자 그 사람이 웃으며 발걸음을 먼저 움직였다. 미세한 향수 냄새가 났고 이 만남을 위해 준비했을 그 사람의 마음이 느껴졌다.
우리는 발걸음을 맞춰 성수동 길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