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위바위보쌈 Aug 08. 2024

우리는 제주 밤바다에서 다시 만났다

제주도 서귀동 천짓골보쌈, 에필로그3

표선 앞바다는 여전히 깜깜했다. 조명이 많이 없었고 주변에 건물이 적었다. 사람들도 그만큼 많지 않았다.


길을 따라 걸어갔다. 그 사람과 함께 걸었던 그 길을 따라 홀로 걸었다. 그때 들었던 잔잔한 파도 소리는 여전했다. 어둠에 조금씩 눈이 익숙해졌고 길 끝에 전경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둘이 걷던 길을 혼자 걸으니 허전함이 몰려왔다. 그때는 그 사람이 옆에 있었는데. 그 사람이 내 앞에 빠르게 걸어갔는데. 저기에 한복판에, 해먹이…


하는 순간 내 앞에 보인 해먹 위에 누군가가 누워있었다. 어둠에 익숙해진 눈으로 그 위에 있는 누군가를 스캔했다. 익숙한 모습이 보였다. 


몇 계절을 함께했던 사람. 나의 가슴을 뛰게 했던 사람. 내가 가장 사랑했던 사람. 그리워서, 며칠을 생각했던 사람. 그리고 그 사람과 내가 함께했던 공간.

다가가야 할까. 그 사람은 내가 오는 인기척을 전혀 느끼지 못한 채 하늘만 보고 있었다. 무선 이어폰이 유행할 때도 그 사람은 줄 이어폰만 고집했는데 여전히 줄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있었다.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그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때와 달리 밤하늘에는 별이 없었다. 별 볼 일 없는 우리의 사이처럼 밤하늘 역시 별 볼 일 없다고 외치는 것 같았다.


몇 분을 그 자리에 서서 망설였다. 오만가지 잡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은 왜 여기 있을까. 아니지. 이곳은 원래 그의 공간이었다. 나는 그 사람을 만나기 전까지 이곳을 와본 적도 없었다. 그 사람은 아마 이곳에 또 다른 추억이 있겠지.


보고 싶었는데. 너무 보고 싶었는데. 막상 보게 되니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머리에 정리가 되지 않았다. 그동안 나는 어떻게 살았고 너를 생각했고 취업도 했고 너를 그리워했고 네가 너무 보고 싶었다고.


그런데 입 밖으로 그 말이 나올 것 같지 않았다. 스무 걸음만 걸으면 그 사람을 만날 수 있을 텐데 그럴 용기도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발걸음을 돌렸다.


그 순간 나를 부르는 그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몸은 굳어버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