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다시 처음 만난 곳으로 향했다
제주도 서귀동 천짓골보쌈, 에필로그4
"왜 나 안 불러?"
그 사람의 첫마디였다. 왜 자기를 부르지 않냐고. 여기까지 와서 왜 발걸음을 뒤로 돌리냐고. 원망하는 듯한 목소리가 느껴졌다. 왜? 왜 부르지 않냐고?
"부를 수가 없잖아"
짧은 내 한마디에 그 사람은 해먹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조금씩 내게로 다가왔다. 어둠에 익숙해졌음에도 내 눈은 그 사람을 하얀빛으로만 인식했다. 오랜만에 봐서 그랬을까. 아니면 내 눈에 물이 고인 탓일까.
나도 모르게 오랜만에 조우한 우리의 모습, 아니 나의 모습에 처량함을 느낀 걸지.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조금씩 다가오는 그 사람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뒤로 물러나버렸다. 물러나는 내게 그 사람은 점차 다가왔다. 하얀빛을 내면서.
다가오는 그 사람의 속도가 물러나는 나의 걸음보다 빨랐다. 아니 정확히는 나도 물러나지 않고 점차 뒷걸음을 늦췄다. 그렇게 우리는 마주했다.
"나 안 보고 싶었어?"
생각하지도 못한 말이 튀어나왔다. 순간 굳어버린 내 표정을 보더니 그 사람은 무심하게 한마디 더 던졌다.
"난 너 보고 싶었는데"
녹아내려버렸다. 그 사람의 한마디에. 나도 보고 싶었다고.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입 밖으로 그 말이 나오지 않았다.
우리는 마주한 상태에서 몇 초를 바라보다가 해먹 쪽으로 걸어가기로 했다. 그리고 해먹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그간 나의 삶, 그 사람의 삶, 우리는 그 이야기들을 나눴고, 우리가 어쩌다 여기에 오게 됐는지 그 말을 나누게 됐다.
그 사람은 문득 내가 생각이 났다고 했다. 나와 이별 후 한동안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는데, 사람이 주변에 많은 그 사람 특성상 여러 번 다른 사람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공허함만이 가득했고 결국 지금도 혼자라고 했다.
나는 그 어느 사람도 나와 접점이 없었고 그렇다고 너를 그리워만 한 건 아니라고 괜한 자존심을 부렸다. 하지만 내 표정은 거짓말이라고 말하고 있었고 나를 잘 아는 그 사람은 단번에 내 말이 거짓말이란 걸 알았다.
우리는 어색했던 몇 계절 전 그때와 다르게 하늘을 보지 않고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오랜 기간 끊겼던 서로의 추억을 공유했다.
그 밤은 그렇게 길었다. 그리고 그 밤의 끝에서 우리는 내일 우리가 처음 만났던 보쌈집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남기고 하루를 마무리했다. 각자의 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