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서귀동 천짓골보쌈, 끝
그 사람과 찾은 천짓골은 며칠 전 내가 왔던 곳과 느낌이 달랐다. 우리가 처음 만나서 눈빛을 주고받고 대화를 나눴던 때가 여전히 살아있는 것 같았다. 내부 인테리어는 바뀌었고 가격도 바뀌었고 분위기도 분명히 바뀌었지만 그날 우리가 나눴던 대화들은 이곳저곳에 남아있는 느낌이었다.
그 사람과 내 사이에는 약간의 어색함, 그러면서도 이미 서로를 잘 아는 익숙함, 그런 공기들이 어우러져 있었다. 서로를 너무 잘 알면서도 서로를 너무 잘 알기 때문에 하면 안 되는 행동들, 말들을 생각하고 생각하면서 조심하고 있었다.
약간의 웨이팅을 지나 자리에 앉았다. 그때는 좌식이었는데 이제는 앉아서 먹는 게 좀 어색하면서도 그만큼 시간이 많이 흘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도 신기한 듯 "의자가 바뀌었는데?"라며 대화를 걸었다.
자리에 앉아 그 사람을 멍하니 바라보니 울음이 나올 것만 같았는데 그 사람은 내 눈을 마주하더니 피식 웃었다. 왜 웃었냐고 묻자 그 사람은 이렇게 답했다.
"그냥. 신기해서."
뭐가 신기하냐고 물었더니, 이 모든 상황이 신기하다고 그랬다. 그렇게 치고받고 싸우고 서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보내줬는데 결국 돌고 돌아서 다시 처음 만난 곳에 앉아있는 게. 그리고 이렇게 마주 보고 웃으면서 옛날에 안 좋았던 기억들보다 좋은 기억들이 더 떠오른다는 게. 너 역시 그렇냐고 그 사람은 물었다.
나 역시 그렇다고. 나 역시 신기하고 웃음이, 아니 웃음이 더 강해져서 울음이 나올 정도라고. 그렇게 말하려던 찰나에 고기가 등장했다.
천짓골의 고기는 여전했다. 질 좋은 고기를 쓰는 것인지 아니면 익히는 방법이 훌륭한 건지. 변함없이 맛있고 질기지 않음을 유지했다. 부드러움은 끝이 없었으며 육즙을 가득 품은 고기는 내 입에서 춤을 췄다.
"여전히 신기한 맛이네."
고기가 신기했다고 몇 년 전 말했던 그 사람은 우리의 상황에 대해 신기했던 만큼 이 고기도 신기하다고 말했다. "전부 다 신기하다." "이 맛도 신기하고 이 상황도 신기하고" 신기하다는 말만 계속.
그렇게 신기한 맛들을 계속 음미하면서 우리는 점차 어색함이 사라졌다. 처음 다시 만났을 때 어색함과 익숙함이 공존했었는데 이제는 어색함이 설렘으로 바뀌었다. 설렘과 익숙함 속에서 우리는 다시 조금씩 예전의 추억들을 되새김질했다.
여기 좋았는데. 이 보쌈집 맛있었는데. 고려보쌈은 어떻고 종로보쌈은 어떻고. 공덕도 오랜만에 가고 싶다. 진선보쌈도 궁금한데. 그렇게 추억을 얘기하다가 내가 그 사람에게 질문을 던졌다.
"다시 갈래?"
그 말을 전할 때 그 사람의 동공은 또렷하게 나를 향했다. 거절할 이유가 없다는 듯 그 사람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처음 만난 곳에서 다시 만났다. 다시는 떨어지지 말자는 다짐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