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위바위보쌈 Aug 22. 2024

찬란했던 우리, 그리고 제주

제주도 서귀동 천짓골보쌈, 끝

그 사람과 찾은 천짓골은 며칠 전 내가 왔던 곳과 느낌이 달랐다. 우리가 처음 만나서 눈빛을 주고받고 대화를 나눴던 때가 여전히 살아있는 것 같았다. 내부 인테리어는 바뀌었고 가격도 바뀌었고 분위기도 분명히 바뀌었지만 그날 우리가 나눴던 대화들은 이곳저곳에 남아있는 느낌이었다.


그 사람과 내 사이에는 약간의 어색함, 그러면서도 이미 서로를 잘 아는 익숙함, 그런 공기들이 어우러져 있었다. 서로를 너무 잘 알면서도 서로를 너무 잘 알기 때문에 하면 안 되는 행동들, 말들을 생각하고 생각하면서 조심하고 있었다.


약간의 웨이팅을 지나 자리에 앉았다. 그때는 좌식이었는데 이제는 앉아서 먹는 게 좀 어색하면서도 그만큼 시간이 많이 흘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도 신기한 듯 "의자가 바뀌었는데?"라며 대화를 걸었다.


자리에 앉아 그 사람을 멍하니 바라보니 울음이 나올 것만 같았는데 그 사람은 내 눈을 마주하더니 피식 웃었다. 왜 웃었냐고 묻자 그 사람은 이렇게 답했다.


"그냥. 신기해서."


뭐가 신기하냐고 물었더니, 이 모든 상황이 신기하다고 그랬다. 그렇게 치고받고 싸우고 서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보내줬는데 결국 돌고 돌아서 다시 처음 만난 곳에 앉아있는 게. 그리고 이렇게 마주 보고 웃으면서 옛날에 안 좋았던 기억들보다 좋은 기억들이 더 떠오른다는 게. 너 역시 그렇냐고 그 사람은 물었다.


나 역시 그렇다고. 나 역시 신기하고 웃음이, 아니 웃음이 더 강해져서 울음이 나올 정도라고. 그렇게 말하려던 찰나에 고기가 등장했다.

제주도 서귀동 천짓골보쌈.

천짓골의 고기는 여전했다. 질 좋은 고기를 쓰는 것인지 아니면 익히는 방법이 훌륭한 건지. 변함없이 맛있고 질기지 않음을 유지했다. 부드러움은 끝이 없었으며 육즙을 가득 품은 고기는 내 입에서 춤을 췄다.


"여전히 신기한 맛이네."


고기가 신기했다고 몇 년 전 말했던 그 사람은 우리의 상황에 대해 신기했던 만큼 이 고기도 신기하다고 말했다. "전부 다 신기하다." "이 맛도 신기하고 이 상황도 신기하고" 신기하다는 말만 계속.


그렇게 신기한 맛들을 계속 음미하면서 우리는 점차 어색함이 사라졌다. 처음 다시 만났을 때 어색함과 익숙함이 공존했었는데 이제는 어색함이 설렘으로 바뀌었다. 설렘과 익숙함 속에서 우리는 다시 조금씩 예전의 추억들을 되새김질했다.


여기 좋았는데. 이 보쌈집 맛있었는데. 고려보쌈은 어떻고 종로보쌈은 어떻고. 공덕도 오랜만에 가고 싶다. 진선보쌈도 궁금한데. 그렇게 추억을 얘기하다가 내가 그 사람에게 질문을 던졌다.


"다시 갈래?"


그 말을 전할 때 그 사람의 동공은 또렷하게 나를 향했다. 거절할 이유가 없다는 듯 그 사람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처음 만난 곳에서 다시 만났다. 다시는 떨어지지 말자는 다짐과 함께.

이전 13화 우리는 다시 처음 만난 곳으로 향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