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오래된 사옥 5층은 조명이 어두웠다. 나도, 동기들도, 선배 직원들도 모두 정장을 입었다. 검거나, 회색이거나, 감색이었다. 표정도 옷도 건물 벽도 모두 검었다.
나는 자리가 없었다. 정확하게는 마땅히 주어졌어야 할, 내가 있어야 할 팀의 위치에 내 자리가 없었다. 한 번에 많은 신입사원을 뽑다 보니 공간이 조금 부족하다고 했다. 옆 팀 아저씨들 옆 구석에 쌓아놓은 짐들을 치우고 그곳에 앉으라 했다. 얼마가 될지는 모르지만 길지는 않을 것이라 했다. 정말로 길지는 않았다. 그날은 첫날이어서, 모든 게 낯설고 겁나기만 해서, 그래도 신입사원이니까 패기 넘치는 척은 해야 해서, 이래도 괜찮고 저래도 괜찮은 사람인척 했다. 사실은 당황스러웠다. 내 자리가 없다는 사실은 정말로 이곳에 '내 자리가 없다는' 의미인 것 같았다. 아무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지만 상징적인 것 같았다.
아무도 나를 보지 않았지만 모두가 나를 보는 것 같았다. 아무도 나를 생각하지 않았을 게 분명하지만 모두가 나만 생각할 것 같았다. 시키지 않아도 찾아서 일을 하는 열정적인 20대 젊은이인지, 그래서 이 조직에 내 '자리'를 나 스스로 만들어서 땅을 파고 지반을 다지고 건물을 올려서 두 발 뻗고 누울 수 있는지, 행동 하나하나 말투와 표정 하나하나까지 평가하며 점수를 매기고 있을 것만 같았다. 수천 개의 눈이 나를 향해 있고 그 시선의 열기가 닿는 내 목덜미에서는 불이 나서 화끈거리고 있었다.
아무것도 할 일이 없지만, 무엇도 할 수 있는 게 없지만, 누구도 시킨 일이 없지만, 그 모든 '없음'이 나의 죄인 것만 같아 움츠러들었다. 나 없이 완벽했던 공간에 이물질처럼 끼어 본능적인 척력에 일그러진 얼굴을 들킬까 두려웠다. 숨을 쉬는 것도 신경 쓰이고 쉬지 않는 것도 신경 쓰였다.
내 직장생활의 시작은 그랬다.
수영 강습을 하면 주말마다 놀러 갔다 아쉽게 나오던 수영장을 매일 갈 수 있다고? 이 어마어마한 사실을 알게 된 초등학교 4학년의 나는, 그날부터 바로 엄마에게 수영을 배우고 싶다고 조르기 시작했다. 학원이라면 절레절레하던 남동생까지 잘 설득해서 수영학원 등록 시위에 합세하게 했다. 마침 넘쳐나는 에너지를 분출하기 위해 해질녘까지 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내고 찾으러 갈 때까지 집에 오지 않던 나와 남동생을 감당하기 어려운 셨던 시기라, 돌아오는 여름 방학부터 바로 시작하라는 허락이 떨어졌다. 야호!
고대하던 방학식과 함께 수영 강습을 시작하기로 한 날로부터 며칠 전,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 학교에서 체육 시간에 피구 시합을 하다 팔을 다친 것이다. 살짝 금이 가서 깁스를 해야 한다고 했다. 나와 동생, 그리고 한 동네에 살던 사촌 동생들까지 함께 하기로 한 수영 강습을 혼자만 시작하지 못했다. 동생들은 슬라이드까지 갖춘 실외 수영장에서 뜨거운 여름을 보냈다. 몇 번인가 동생들을 데리러 가시는 엄마를 따라 수영장에 갔다. 수면으로 내보였다 사라지는 동생들의 검게 그을린 등은 날렵한 돌고래 같아 보였다.
허무한 여름이 지나갔고 나의 팔에 있던 금은 깨끗하게 사라졌다. 저녁 공기가 제법 쌀쌀해질 무렵, 나의 수영 강습은 실내 수영장에서 시작했다. 여름에 시작한 동생들과 친구들은 어느덧 모두 자기 키보다 깊은 수심의 수영장 레인을 쉬지 않고 왕복하고 있었다. 진도를 따라잡아야 하는 나는 한쪽 구석에서 키판에 의지하여 발장구를 익혔다. 경직된 몸은 자꾸 물속으로 가라앉기만 했다. 각목처럼 뻣뻣한 내가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던지 강사 선생님은 나를 아예 유아 풀장으로 보냈다. 물에 뜰 수 있을 때까지 거기서 연습을 하라는 말씀과 함께.
조용한 유아풀에서도 첨벙거리는 친구들의 멋진 물장구 소리가 들렸다. 엎드린 자세로 물에 얼굴을 담그면 두려움이 몰려왔다. 이대로 물에 가라앉아 영원히 숨도 못 쉴 것 같았다. 몇 번을 엎드렸다 허우적거리며 바로 섰다. 아무도 보지 않는 것 같아 다행인데 무관심은 또 서러웠다. 수경을 쓰고 울면 티가 안 나려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에라 모르겠다의 심정으로 엎드렸던 자세를 반대로 돌려 물 위에 누워봤다. 붕- 하고 나는 것 같은 최초의 느낌, 그 간지러운 느낌은 처음으로 바이킹을 탔을 때 느꼈던 무중력의 간지러운 느낌과 닮았다. 거울로 된 천장을 통해 물 위에 누워있는 내 모습이 보였다.
처음 물에 떴던 그 순간, 더 이상 앞서간 친구들의 거친 물장구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