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11월이 되었어. 학교를 그만둔 지 몇 해가 지났는데도 아침저녁 쌀쌀해진 공기에 옷깃을 여미게 되는 11월이 되면 곧바로 떠올라. 아, 대학 수학능력 시험일이 거의 다 왔나 보구나. 올해는 다행히 수능한파가 없을 거라는 예보가 있었다지. 가뜩이나 심란한 마음인데 날씨까지 추우면 시험 보러 가는 수험생 아이들도, 시험 감독이거나 고사장 운영을 맡는 교사들도, 시험 전 후 교문을 지키고 있는 응원단 아이들과 학부형, 가족들 모두 다 고생할 텐데 걱정하곤 했었어. 이왕이면 올해 수능도 모두 덜 고생하고 덜 힘들게 끝났으면 좋겠다.
학교마다 수능 출정식을 하더라고. 정말 상을 차리고 절을 하며 고사를 지내는 학교도 있었고, 강당에 모여 예배를 드리는 학교도 있었지. 내가 근무했던 한 인문계 고등학교에서는 수능 때마다 이런 행사를 했어. 수능시험일 전날이 예비 소집일이잖아. 고3 아이들이 점심 식사를 마치고 수험표를 받은 뒤 곧장 각자 결정된 고사장으로 향하지. 그 시간에 맞춰 건물 출입구부터 운동장을 가로질러 교문으로 향하는 통로의 양 옆을 전 교직원과 재학생이 빼곡하게 서서 길을 만들어 아이들을 배웅했어. 학생회에서 만든 응원가를 따라 부르고, 북을 치고 박수를 치며 응원했어. 고3 아이들이 걸어가는 그 길이 꽃길이 되길 바라며.
그 길을 따라 교문을 벗어나는 수험생 아이들은 자못 쑥스러운 얼굴을 했지만, 걸음만큼은 당차 보였어. 왁자지껄한 혼잡함 속에 복잡한 마음도 함께 실어 날려 보내듯 후련해 보였지. 매년 진행한 수능출정식이었기에 그 아이들도 아마 지난 2년간 응원의 대열에 서서 고3 선배들을 뜨겁게 응원했던 기억도 있었을 거야. 수능을 포함해 대한민국 대입제도에 대해 생각하면 늘 석연찮은 생각이 앞서지만, 고3 아이들의 무운을 빌어주기 위해 목청껏 모르는 이의 이름을 외치며 응원했던 그날. 누군가의 행운을 바라는 모두의 마음만큼은 한없이 진실되고 투명했다고 생각해.
넌 너의 고3 시절이 생각나니? 어느 해엔가 비담임이었던 나에게 한 뭉텅이의 서류가 전달되었어. 수시를 쓰는 아이들 중 나의 전공학과에 지원한 아이들의 것이었어. 그 아이들의 서류 작성과 면접 준비를 도와달라며 담임교사들이 보낸 거였지. 그 아이들 중 하나가 너였고. 왜 이 전공을 선택해 이 모진 길을 가려는 거지? 만약 조금 일찍 알았더라면 다른 길을 가는 게 좋겠다고 설득부터 했을 텐데. 이미 발등에 불은 떨어졌을 테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찾아온 너희들의 마음이 표정에서 훤히 보였어. 수시 원서를 준비할 때쯤의 고3 아이들 대부분은 잘못 툭 치면 바사삭 소리와 함께 바스러져 재가 될 것처럼 위태로운 상태잖아. 작은 일에 참 많이 속상해하고, 마음을 다치고, 엉엉 울기도 하고, 없던 병도 생기고.
누군가를 진심으로 응원하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니. 솔직히 아이들 중엔 성적에 맞게, 복수전공이나 부전공을 노리고 학과를 선택한 아이들도 많잖아. 아쉽지만 고등학교에 오래 근무하며 그것 역시 다른 종류의 꿈이라 존중하게 되었어. 나 역시 아이들이 절절한 꿈을 향해 힘차게 나아갈 수 있는 교육환경을 만들어주지 못한 어른 중 하나이기도 했으니, 적어도 이상만을 앞세워 상처 주지 않기 위해. 게다가 우리 모두 고3이 되어서까지 학과 선택을 향한 순수한 진정성을 가질 만큼, 대한민국의 중등 교육과 대입 제도가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모를 정도로 순진하진 않았으니까.
그 와중에 진로에 대해 누구보다 진지했던 아이들도 있었지. 너도 그 부류 중 하나였고. 진로와 전공을 향한 너의 진심은 이미 알고 있었어. 밥도 제대로 안 먹고 봤던 서류를 보고 또 보고, 수정하고 또 해도 볼멘소리 한번 안 했던 너와 같은 아이들의 뜨거운 열정에, 마알간 꿈에 반했었어. 그래서 뭐라도 더 도움이 되고 싶어 고3 담임도 아닌데 당시 대세였던 '00 먹고 대학 간다'라는 수시 지원전략 서적을 구해서까지 봤었어.(요즘은 어떤 책이 대세인지 모르겠구나.) 대학교 홈페이지에 기재된 학과별 커리큘럼도 찾아보고.
이것도 기억하니? 수능 100일 전 즈음이 되면, 학교를 찾아오는 졸업생들이 있었잖아. 내가 담당 교사로 있던 동아리가 학교에서 제법 자리를 잡은 모임이어서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수능을 100일 앞둔 동아리 후배들을 챙기겠다며 작년 졸업생들이 오곤 했어. 양손 가득 들고 온 불룩한 쇼핑백 꼭대기에 머리를 비죽 내민 알록달록한 리본과 포장지. 앙증맞은 카드에 빼곡히 담아둔 검정 글씨의 응원들까지. 과외나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을 모아 선물을 샀다며 까르르 거리는 졸업생과 그 덕에 오랜만에 발그레 웃던 후배들. 끝을 모를 경쟁에 내몰려 피가 마르는 하루하루를 보냈던 아이들이, 지금의 아이들을 격려하는 모습을 보며, 참담한 상황 속에서도 빛이 나는 아이들이 멋져 보였단다.
아마 내게 수능은 오랫동안 애틋하고 아련한 기억으로 남을 것 같아. 내가 품었던 모든 아이들이 노력한 만큼, 원하는 결과를 얻기를 바라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잖아. 나도 한때는 수능이 삶의 전부인 줄 알았던 시절이 있었어. 교사로서 인문계 고등학교에 오래 근무하다 보니, 학생 때만큼이나 수능의 영향력이 버겁고 힘들더라고. 솔직히 인문계에서는 교수 학습 과정, 평가 등 그 모든 교육 행위와 학교 생활이 결국 대입과 수능을 위해 짜 맞춰진 것처럼 의구심이 든 적도 있어. 학교를 나오고 나이가 제법 들고나니, 수능이란 게 원하는 결과를 얻으면 조금 편하고 빨리 가는 길을 찾는 것임을 알았어. 하지만 그 외에는 생각보다 길고 굴곡진 한 사람의 삶에서 참 별 거 아닌 관문이더라.
어제와 오늘, 너의 앞에 서 있는 올해의 고3 아이들에게 넌 어떤 말을 해주고 있을까. 아이들의 대입을 준비하며 교사로서 고개를 갸웃하며 의문이 드는 순간이 너무나 많았겠지만, 그럼에도 외롭고 쓸쓸한 길을 걷고 있음이 분명한 아이들에게만큼은 매 순간 꼭 힘이 되어주는 교사가 되려무나. 지나고 나니, 멀리 나와서 돌아보니, 비로소 알겠어. 너의 고3 시절에 우리가 나눴던 마음처럼, 동아리 선배가 후배에게 전했던 마음처럼, 누군가를 진심으로 응원하는 건 가능하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