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에서 근무할 때, 결혼을 하게 되었어. 친한 분들이야 이미 준비 단계부터 알고 계셨지만, 결혼식 한 달 앞둔 때쯤부터 동료들에게 청첩장을 돌리기 시작하고 나니 자연스럽게 학교 이곳저곳에 나의 결혼 소식이 퍼지게 되더라.
반 아이들도 그즈음에 알게 되었을 거야. 장대비처럼 쏟아지는 아이들의 질문을 겨우 막은 뒤, 지금부터 나의 결혼에 대한 질문은 일체 거절한다고 했어. 이야기가 퍼진 시기가 정기고사 준비 기간이기도 해서 들뜬 분위기를 만들고 싶지 않았거든. 이상하게 아이들은 나보다 더 들떠 보였어. 눈만 마주치면 해사하게 웃는 것이 본인들이 예비신부인 것처럼 굴더구나. 날 보고 응원의 눈빛을 보내는 아이들도 있었는데, 우리 시어머니보다 더 인자하고 결연한 눈빛을 했더라니까.
내가 입을 꾹 다물어버리니 아이들은 수업에서 뵈는 동료 선생님들께 각종 정보를 수집했다더라고. 이곳저곳에서 들리는 말을 종합해 보니 자율동아리에서 밴드부 보컬로 활동하는 아이가 주축이 되어 결혼식 축가를 준비하고 있다는구나. 기혼자 동료분들은 결혼식에서 아이들이 축가를 부르는 건 교사에게만큼이나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이 된다고, 한다고 하면 못 이기는 척 내버려 두라고 하셨어.
결혼식 당일까지도 난 아이들이 무슨 노래를 어떻게 하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어. 혹시나 싶어서 결혼식 날짜와 시간, 결혼식장의 위치를 알려주었어. 다 알고 있다는 듯한 늠름한 표정을 짓고 씍 웃어 보이는 아이. 표정을 보니 진짜 하려나보다 싶어 남편과 나의 지인이 축가를 하기로 되어 있었으니, 그의 노래와 양가 부모님께 인사드리는 사이를 아이들의 축가 순서로 비워두었어.
그리고 다가온 결혼식날. 새벽부터 일어나 정신없이 이리저리 끌려다닌 뒤 정신 차리고 보니 신부 대기실에 앉아 있더라.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들 틈에 대기실 문 밖에서 쭈뼛거리며 돌아다니는 아이들 모습이 보였어. 얼핏 봤는데도 평소 학교에서보다 더 단정하게 교복 매무새를 정리하고 온 것 같아서 '역시, 예쁜 내 새끼들. 고등학교 2학년이니까 알아서 잘하는구나.'라고 생각했지. 일찍 온 아이들 몇 명과는 사진도 찍었는데 눈시울이 빨갛게 된 아이가 있더라고. 우리 엄마도 아직 안 우셨는데 네가 왜 우냐고 웃으며 이야기했는데. 그게복선이었을 줄 그때의 나는 전혀 몰랐지.
스무 명가량의 아이들이 두 줄로 서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어. 마이크가 몇 개 없으니 중간중간 하나씩 들고 앞줄 가운데에는 밴드부 보컬 아이가 있었지. 전주가 시작되고 첫 소절은 보컬 아이가 먼저 독창을 하며 시작하기로 했나 봐. 그런데 나와 눈을 맞추고 웃고 있던 그 친구의 눈에 갑자기 눈물이 잔뜩 차오르기 시작했어. 급기야 어깨를 들썩이며 엉엉 울기까지 하는 거야. 이미 노래가 나와야 할 부분인데, 반주는 혼자 앞서가다 질주를 하기 시작했어. 나랑 남편은 마주 보고 웃은 뒤 아이를 향해 입모양으로 '왜 울어~괜찮아.'를 말했어. 그런데 그 아이를 시작으로 갑자기 대부분의 아이들이 약속한 듯 다 함께 울기 시작하는 거야.
결혼식장은 순식간에 하객들이 외치는 "괜찮아. 괜찮아."가 울려 퍼졌어. 사회를 보는 친구의 기지 덕에 아이들의 축가는 1절까지만 하고 마무리 지었어. 한 소절도 제대로 부르지 못한 듯한 나의 아이들. 퇴장하면서까지도 엉엉 울며 손등으로 눈을 비비며 걸어 나갔지.나중에 친구들과 이모들이 내게 와서
"아니, 애들 왜 우는건데?"
"너 학교 그만둬?"
"애들 혼냈어?"
무언가 뒤에 있을법한 사연을 만들어 물어봤단다. 모르는 사람들이 봤으면 나 어디로 팔려가는 신부인줄 알았을 것 같아. 그때는 유튜브나 SNS가 크게 활발하지 않아서 다행이야. 지금 같았으면 많이들 찍어서 여기저기에 올려놨을지도 모르겠다. 엉엉 울던 아이들은 실컷 울어서 배가 비었는지, 하객으로 온 교사들과 학생들이 서로 불편하지 않게 따로 잡아둔 패밀리 레스토랑을 거덜낼 정도로 신나고 맛있게 먹었다 하더구나.
신혼여행을 다녀와서 애들에게 물어봤어. 도대체 그날 결혼식장에서 왜 그렇게 운 거냐고. 그러자 한다는 말이
"샘이 먼 곳으로 가시는 것 같아서, 이제 못 보는 거 같아서, 샘 남편분이 미워서 순간 울컥했어요."
나 멀리 못 가는데. 돈 벌어야 한다고.
엉엉 울던 그 아이들 중에 하나가 너였잖아. 남 앞에 서길 부끄럽고 꺼려하던 네가 용기 내서 내 결혼식에 노래를 불러주러 왔다니. 비록 한 소절도 못 들었지만 그것만으로도 내겐 큰 선물이었어. 하지만 당부 하나만 할게. 너도 교사니까, 만약 결혼을 하게 되고 나처럼 제자들이 축가를 부르러 온다고 한다면 말리지 말아. 결혼식을 생각하면 여전히 단정하게 교복을 입고 두 줄로 서서 나를 바라보던 아이들이 떠오르거든. 하지만 축가를 준비한다는 아이들에게 꼭 나의 결혼식, 너의 축가 이야기를 해주렴. 잘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울음을 참는 것이라는 말도 잊지 말고.
그래야 나처럼 사연 많아 보이는 신부가 되지 않을 거야.
이 글은 교사로 10여 년을 근무하고 새로운 꿈을 좇기 위해 셀프 퇴직한 전직 교사가 한 특별한 후배 교사에게 쓴 편지입니다. 사랑하는 제자에서 같은 전공을 선택한 뒤 결국 교육자의 길을 걷고 있는 동료이자, 이제는 10년 지기 친구가 된 어린 벗. 그의 슬픔에는 함께 울고 기쁨에는 함께 웃었습니다. 늘 도움을 주기 위해 애썼지만 결국 서로를 보듬으며 함께 성장하는 이야기가 된 듯합니다. 이 글이 비단 학교현장뿐 아니라 오늘도 각자의 자리에서 비릿한 성장통을 겪고 있는 모든 어른이들과 함께 위로를 나눌 수 있는 글이 되기를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