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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지이 Dec 06. 2023

선생님, 저도 칭찬 좀 해주세요.



  학교에서 일을 하고부터 내 안에 설정해 둔 규칙과 기준이 점점 강해져 갔어. 마음으로는 아이들의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너 지금 뭐 하는 거니?" "안돼!"라고 외쳐야 하는 순간이 쌓이다 보니 무엇이 되고, 안되며 그것을 이야기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함께 쌓였지. 연차가 비슷한 동료들과 모여서 "이건 잘못된 거라고 이야기해 줘야 할까?" "언제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까?"같은 고민 성토대회를 열곤 했어. 연차가 쌓일수록 나날이 잎이 무성한 감시자와 판별자의 꿈나무로 자라는 중이었지. 


  두 번째 학교에서 생각을 정리했어. 학생들을 대할 때 애매한 감정이나 표현은 되도록 드러내지 않는 교사가 되는 편이 좋겠다고. 전해야 할 메시지와 목표에 집중할 뿐, 번거로운 감정은 빼는 것으로. 그래야 하지 말아야 할 것과 해야 할 것을 이야기해야 할 때 더 강하게 전달할 수 있으니까. 자질구레한 감정은 많이 내려놓기로 한 뒤, 초임 때처럼 '예쁘다. 착하다. 굉장하다. 대단하다. 멋지다.'와 같은 형용사를 자주 꺼내지 않고 많이 아꼈어. 물론 두 번째 학교에서 만난 아이들도, 첫 번째 학교에서 그러했듯 하나같이 저마다 다 예쁜 구석이 있었지. 속으로만 생각하다 어쩌다 한 번씩 "야, 너 좀 멋지다?" 했더니 아이들이 좋아하더구나. 이게 맞네. 이거면 되는 건 줄 알았어. 


  유독 내게 삐딱하게 구는 학생이 하나 있었어.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IT 계열의 기업에서 연구원으로 시작해 임원까지 오르셨다는 성공 스토리를 수업 중 했던 활동을 통해 알게 되었어, 그 아이 역시 부모의 길을 따라 걸으며 IT 계열의 스타트업 기업을 창업할 것을 꿈꾸고 있었어. 어딘가 성골 이과의 기운이 물씬 풍기는 아이랄까. 


"소설을 왜 공부하는지 모르겠어요. 세상에 실질적인 이로운 것도 하나 못 만드는데."

"어려운 데다 심지어 재미도 없는 고전 문학, 수능에 나오니까 할 수 없이 하는 거죠 뭐."  

"시는 그냥 저자랑 주제, 표현법 위주로 외우면 되는 거죠?"

"이거 할 바에 그냥 수학 공부 더 하면 안돼요?" 


  왜 그런 태도를 보이는지, 특히 내 수업에서만 반항스러운 언사를 드러내는지 필시 이유가 있었을 거야. 수면에 드러내지 않은 속내가. 그렇지만 깊게 관여하고 싶지 않았어. 냉철하고 합리적인, 경제적인 교사의 길을 가야 하니, 자잘한 감정은 치워버리자. 그러므로 화들짝 놀라 질문을 하는 초보교사처럼 굴지 않으리. 아무렇지 않게 굴며 그 아이의 말에 눈을 맞추고 들었다는 사인만 보낼 뿐 대꾸는 하지 않은 채, 수업에 필요한 말만 했어. 


  그러던 어느 날 자리를 비웠다 돌아온 책상에 반듯하게 저힌 쪽지가 하나 놓여 있었어. 


'선생님, 저도 칭찬 좀 해주세요.' 


  짧은 글인데 세상을 다 짊어진듯한 절박함이 묻어나 있는 듯했어. 저 한 줄만으로 누가 쓴 건지 알겠더라. 문장 밖 여백 가득히 한 아이의 이름이 쓰여 있는 듯 보였어. 


  IT 성골 그 아이는 학교에서도 sky는 거뜬하고 대전과 포항도 갈 수 있다고 보는 기대주였는데, 알고 보니 집에서도 성적과 미래에 대한 압박을 다소 강하게 받는 중이었더라. 학업 이외의 모든 것에 대해 부정적이었고,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상태였어. 그 아이의 절친들이 나의 동아리 학생들이라 아이들과 내가 격 없이 지내는 모습을 보고 나에 대해 기대를 했었나 봐. 냉철하고 합리적인 교사가 된다고 마음먹었다가 '칭찬'을 놓쳐버린 교사가 되다니. 무언가에 강하게 얻어맞은 기분이었어. 


  그 아이와는 풀고 말 것도 없었어. 2학년 때 동아리 활동을 함께 하게 되며 그 아이의 고민, 나의 고민을 함께 나눌 시간이 충분이 확보되었지. 나는 교사로서의 사춘기를 이겨내고 다시 '예쁘다. 착하다. 굉장하다. 대단하다. 멋지다.'를 남발하는 교사가 되기로 했어. 그 아이가 용기를 내어 절박함을 담아 건네준 쪽지로 나 또한 구원받은 거야. 조금 알겠더라, 앞으로 내가 어떤 교사가 되어야 할지. 

   

  내 마음속에는 싫은 것들을 걸러내는 채가 있어. 나이가 들수록 그 채가 점점 촘촘해지는 것 같아. 새로 만난 사람이던, 장소던, 사건이던, 그 채에 올려 걸러내고 나면 마음으로 떨어져 내리는 게 별로 없고 다 채반 위에 남아있더라. 이건 이래서 싫고, 저건 저래서 안되고. 실컷 채에 걸러놓고는 혹시 내가 잘못 거른 게 있을까 채에 남은 것들을 손으로 휘휘 저어봐. 혹시 모를 반짝이는 걸 찾기 위해.  


  아이들 역시 채에 올려놓고 쳐낸 뒤 거추장스러운 건 버리고, 아래 내려온 곱고 작은 결정만 받아들이려 했던 건 아닌가 싶어. 어리석었던 그때의 날 반성하며 부끄럽지만 너에게 고백해. 판단하고 정의 내리고, 결정하고 답을 내려주는 교사 100명 보다 늘 같은 자리에 서서 진심 어린 응원과 칭찬을 할 준비를 하고 있는 교사 1명이 더 나은 것 같아. 이게 나의 결론이야. 너도 그랬으면 좋겠다. 아이들의 빛나는 점을 열심히 발견하는 것에 힘쓰고, 남은 힘이 있다면 힘닿는 대로 아낌없이 칭찬해 주렴. 칭찬하자. 우리 아이들. 더 많이. 더 크게!  





이 글은 교사로 10여 년을 근무하고 새로운 꿈을 좇기 위해 셀프 퇴직한 전직 교사가 한 특별한 후배 교사에게 쓴 편지입니다. 사랑하는 제자에서 같은 전공을 선택한 뒤 결국 교육자의 길을 걷고 있는 동료이자, 이제는 10년 지기 친구가 된 어린 벗. 그의 슬픔에는 함께 울고 기쁨에는 함께 웃었습니다. 늘 도움을 주기 위해 애썼지만 결국 서로를 보듬으며 함께 성장하는 이야기가 된 듯합니다. 이 글이 비단 학교현장뿐 아니라 오늘도 각자의 자리에서 비릿한 성장통을 겪고 있는 모든 어른이들과 함께 위로를 나눌 수 있는 글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pleasedontc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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