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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지이 Dec 27. 2023

나도 갈 수 없었던 그 회식자리


안녕하세요 20XX학년도 여교사회 회식이 있습니다. 

아래 일시와 장소를 확인하시어 꼭 참석하시기 바랍니다. 

-일시 : 20xx 년 3월 xx일 오후 xx시 

-장소 : xx회관

-안건 : 작년도 회비 결산 및 신입회원 소개 


  신규 시절이라 더 정신없던 3월 초, 같은 부서도 아니고 교과도 다른 한 중견 여교사 분께 쿨메신져가 왔어. 수신자 명단을 대충 훑어보니 학교에 근무 중인 여자 교사 들 만이더라고. 아마 이 학교는 근무 중인 여교사면 여교사회라는 것에 자동으로 가입이 되는 거였나 봐. 주변에 있던 같은 신규 여교사와 '이런 게 있었나 봐요. 신규고 처음이니 시간 비워두고 참석하는 게 도리겠지요?' 라며 나직한 목소리로 갑작스러운 모임 참석에 대한 당황과 부담을 나눠 가졌어


  회식날이 되어하던 일을 정리하고 주섬주섬 짐을 챙겨 나갈 준비를 했어. 교무실 이곳저곳에서 꿈틀거리는 움직임이 있더라. 남자 선생님 중에는 '아 오늘 여교사 회식이지요? 남교사는 어제 했어요.' 라며 아는 척하시는 분도 계셨어. 회식 또한 업무의 연장선상에 있으니 비록 교무실을 칼퇴하지만 순수한 칼퇴가 아님을 다들 아시겠거니 싶어 당당하게 나갔지. 주르륵 나가는 동료들 서넛과 섞여서 교문을 나왔어. 좀 아까 같이 나오는 줄로만 알았던 한 선생님이 안보이셔서 내 옆을 걷던 선생님께 슬쩍 물었어.     


"어? 김xx샘은 같이 안 나왔어요? 아까 자리에 있던데."

"아 홍샘. 그분은 회식 안 가."

"무슨 일 있으신가 봐요?"

  

  아니. 내가 찾은 김샘은 오늘 이 회식을 하는지 모르셨을지도. 왜냐면 여교사회 회식은 '여자 정교사'만 참석하는 거였거든. 그제야 회식 시간 즈음하여 하나 둘 들썩이다 어정쩡하게 나오는 분위기였던 교무실에서 나보다 더 어리둥절해 보였던 옆 블록의 다른 여교사 분의 표정의 의미를 알았어. 함께 걷던 이들 대부분 신규 교사여서 갑작스럽게 알게 된 사실에 다들 나만큼이나 놀란 눈치였어. 그렇지만 그보다는 회식자리에 도열해 있을 까마득한 선배 교사들과의 부담스러울 첫 대면에 대한 긴장감이 차올랐기에, 회식자리 참석자의 조건에 대한 미묘한 불쾌함은 잠시 잊었어.    


  식당에 도착하니 4인용 좌식형 테이블이 2,3개씩 길에 붙여진 작은 룸으로 안내받았어. 먼저 온 순서대로 앉았는데 신규들은 역시나 마지막에 왔던지라 한쪽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게 되었지. 우리가 오자 작년도 회장과 총무를 맡은 선생님들이 인사를 하시고 올해의 여교사회 임원 교사를 소개하셨어. 두 분께서 인사를 한 뒤 프린트해온 유인물을 나눠주시며 안건과 회비 설명을 말씀하셨지.


"어머, 유인물이 모자라네~한두 장 여유 있게 출력해 왔는데. 미안, 좀 불편하겠지만 못 받은 분들은 두세 분이 같이 보셔요."

 

  종이에는 별 중요한 내용이 있지는 않았어. 그냥 형식 상 회칙을 지켜 이행하기 위해 준비한 것 같았거든. 신규 교사 소개를 하고 회비는 월급에서 자동으로 얼마씩 나간다는 걸 알려주는 것과 함께 전달사항이 마무리되었어. 그러자 타이밍 좋게 방의 미닫이 문이 열리며 주문한 식사가 나오기 시작했어.


"어, 돌솥밥이 왜 모자라지? 우리 xx명 맞지 않아?"

  

  불고기는 테이블에 있는 레인지에 세팅이 돼서 몰랐는데 1인당 받아야 하는 돌솥밥이 모자란 거야. 그제야 마지막에 온 젊은 여교사 무리들이 자리에 앉으려 했을 때, 남은 자리가 4인 테이블 하나뿐이었던 게 생각났어. 제시간에 왔지만 늦게 온 것 같아서 부랴부랴 6명이 다닥다닥 붙어 앉아서 좁은 줄도 몰랐거든. 웅성거리는 사이에 우연히 내 맞은편에 앉은 선생님의 안색이 하얗다 못해 회색이 되어 가는 걸 봤어.


'아......'


  그분은 기간제 선생님이었어. 나와 같은 교과라 이야기를 나누다 임용고시에 대해 이야기했던 게 생각나. 올해도 2학기에는 공부를 할 수 있는 여력이 되면 좋겠다고 했거든. 자신의 첫 데뷔와 같은 자리인데 뭔가 꼬인 게 속상하신 듯 앞쪽부터 인원수를 체크하는 총무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어. 아무 말하지 않았지만 우리 테이블 회색빛 얼굴의 선생님, 옆 테이블의 또 다른 선생님, 당황한 나와 눈이 마주친 나와 비슷한 표정의 동료 선생님, 두리번거리다 무언가 깨달은 내 옆자리 선생님. 대부분 상황을 이해한 듯했어. 누군가 


"선생님, 저희 어차피 하나 다 못 먹어서 나눠 먹으면 될 것 같아요." 


  그 뒤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했더라. 불고기고 돌솥밥이고 제대로 얹혔던 건 기억나. 작은 교무실에 있던 신규 선생님이 여교사 회식이라는 메시지를 보고 같은 실에 있던 선생님을 다 함께 모시고 온 거였어. 그분은 그분대로 불편한 상황을 만들어 눈치 없는 신규가 되었다며 걱정 한가득이었지. 잘 모르고 그 자리에 함께 온 두세 분의 기간제 선생님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신분이란 어떤 위계화된 구조 안에 있는 고정된 위치들이 아니라 무리 짓고, 사회 공간을 점유하고, 경계를 만들며, 배제하거나 포함시키고, 자리를 주거나 뺏는 어떤 운동의 효과이다.'


  김현경의 <사람, 장소, 환대>라는 책에서 읽은 문장이야. 난 그 순간 어떤 위치를 점유하기 위해 경계를 만들고 누군가를 배제하는 '무리' 안에 있었던 거겠지. 부끄럽고 속상했지만 몇 년 간 기간제를 하며 그 무리에 포함되기를 선망 아닌 선망을 해온 사람이었기에, 그들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방식이란 이런 건가 라며 쉽게 수긍하고 포섭당했어. 너에게나마 어리석었던 시절의 참담한 마음을 고백하며 면죄부를 얻어보려 하는 건 위선이겠지. 그럼에도 누군가에게, 어딘가에 남기고 싶어. 나는 너무 나빴어.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사람 수를 재차 확인하던 총무 선생님보다 더 큰 목소리로 우리가 했던 옹졸함과 치사한 선긋기에 대해 말할 거야. 꼭.       






이 글은 교사로 10여 년을 근무하고 새로운 꿈을 좇기 위해 셀프 퇴직한 전직 교사가 한 특별한 후배 교사에게 쓴 편지입니다. 사랑하는 제자에서 같은 전공을 선택한 뒤 결국 교육자의 길을 걷고 있는 동료이자, 이제는 10년 지기 친구가 된 어린 벗. 그의 슬픔에는 함께 울고 기쁨에는 함께 웃었습니다. 늘 도움을 주기 위해 애썼지만 결국 서로를 보듬으며 함께 성장하는 이야기가 된 듯합니다. 이 글이 비단 학교현장뿐 아니라 오늘도 각자의 자리에서 비릿한 성장통을 겪고 있는 모든 어른이들과 함께 위로를 나눌 수 있는 글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pleasedontc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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