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hens, GREECE 2014.05.05 10:24
함께 살고있는 강아지를 관찰해보니, 편히 누워 푹 자기까지 보통 몇 단계의 자세를 거치곤 했다. 잠이 오기 시작하면 우선 턱과 배는 바닥에 대고, 무릎은 한번 접은 뒤 다리를 쪼그리듯 모아 마찬가지로 바닥에 댄다. 마치 사람이 엎드렸을 때와 비슷하다. 그러다 조금 더 졸려지면 구부렸던 다리를 한쪽 방향으로 뻗어서 앞발은 앞발끼리 뒷발은 뒷발끼리 가지런히 포갠다. 편히 좀 자도 되겠다 싶어지면 그 자세에서 바닥에 댔던 배 대신 몸통의 한쪽을 바닥에 댄다. 들숨날숨에 배가 얕게 오르락 내리락 한다. 한쪽으로 기울어져 누운 모양새는 옆으로 누워있는 사람과 닮았다. 바로 이 사진 속의 개가 누워있는 모습이다.
자고 있었다. 내 나름대로 분류한 강아지 수면 자세의 3단계 중 딥습립의 자세로. 사람들이 분주히 지나다니는 아침시간에 번화로 한복판에서 늘어지게 잠이라니. 검정 모색의 강아지라 눈과 코의 경계가 잘 안보이지만, 흰자가 안보이는걸 보니 눈도 꼭 감고 있었을 거다. 정말 마음 푹 놓고 편히 자고 있는 거다. 저렇게 평화롭게 곤히 수면 중인 강아지, 아테네 바닥 여기저기에 널려 있었다. 영업중인 식당 앞에 턱을 괴고 졸고 있는 강아지, 건물 입구의 현관 매트에 웅크리고 있던 강아지, 노천 카페의 테이블과 의자 아래 가만가만히 앉아있던 강아지, 파르테논 신전과 제우스 신전, 아고라 군데군데 드리워진 그늘에서 한숨 돌리거 있던 강아지. 그들의 공통점은 정말 편해보였다는 것과 하나같이 강아지라고 부르기엔 다소 크다는 것이었다.
나는 15kg 정도 나가는 털복숭이 개동생과 10여년을 넘게 살았기에 큰 개들에게 익숙하지만, 아마 우리나라 번화가에 이런 개들이 돌아다녔다면 난리가 났을거다. 내가 목격한 아테네 사람들의 태도는 이 녀석들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일관성을 보였다. 저리 가라고 쫓아내는 사람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쓰다듬거나 예뻐하는 사람도 없었다. 문에 끼거나 밟힐지도 모르는 위치에 꼬리를 척 두고 세상 편하게 자는 개가 있었다. 여러 차례의 경험을 통해 아무도 자신을 실수로라도 건드리지 않을 것이라는 굳은 믿음이 있는 모양이었다. 저렇게 아슬아슬하게 누워있는 강아지를 누군가 밟아 깨갱 하는 소리를 들은 적 없긴 했다. 거리 곳곳에는 물을 가득 담아놓은 큰 그릇이 있었다. 지나가던 개 한마리가 고개를 숙이고 찹찹 물을 마셨다. 빵을 쪼개 가게 앞에 앉아있는 몇마리의 개에게 던져주는 빵가게 주인도 봤다. 빵을 얻어먹고 얼마 뒤 아무런 미련 없이 엉덩이를 흔들며 총총 사라지는 개들의 뒷모습. 그러고보니 가게나 건물 안에 들어가 있는 개는 없었다. 대부분 입구에 눕거나 앉아있었다.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살며 터득한 예절인가보다 싶었다.
파르테논 신전은 과거엔 신들의 장소였지만 현세에서는 개들의 천국같았다. 관광객은 못 들어가는 구역의 나무그늘에 누워 졸린 눈으로 돌계단을 오르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개라니. 세상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인데 개들이 실례라도 하거나 잘못 밟아서 건물을 훼손하기라도 하면 어쩔려고? 그러나 신전의 관리인들은 전혀 관심없어 보였다. 바삐 걸어다니던 와중에도 절대 강아지를 건드리거나 밟지 않았던 번화가의 사람들이 그러했듯.
본가의 큰 녀석과 결혼 후 함께 살게 된 작은 녀석 둘 다 절대 집 안에 실례를 하지 않는다. 산책을 하며 아주 신중히 냄새를 맡고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구석진 풀숲에 웅크리고 배변을 위한 자세를 취한다. 조심스럽고 섬세한 동작으로. 사람들이 우려하는 아무데나 똥싸고 오줌싸는 개는 극히 드문 것으로 알고 있다. 자신에게 물과 먹을 걸 나눠주는 사람의 집 앞을 개들이 더럽힐까? 절대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한다. 남의 집 앞에 침을 뱉거나 담배 꽁초, 껌 따위를 버리는 사람들은? 이미 알고 계시지 않나. 너무 많다는 걸.
아테네에 머무는 동안 자꾸만 우리나라의 길냥이와 유기견이 떠올라 마음이 시큰했다. 사람이 오면 눈치보며 후다닥 도망가기 바쁜 길냥이들, 사람들의 신고로 포획되어 안락사 되거나 식용으로 팔려가는 개들. 거리의 동물들이 미움타지 않으면 좋겠는데. 다들 이다지도 마음의 여유가 없는걸까. 혹시나 미워하는 이유가 있다면, 그저 어느 날 갑자기 그들이 살던 곳에서 내몰리지만이라도 않았으면. 약간의 거리를 두고 조용히 지켜봐주기만 해도 좋을텐데. 어차피 그들의 대부분은 병들거나 아파하다 평균 수명의 반도 안되는 2-3년도 채우지 못하고 죽는다. 사람들이 그들과 아주 조금의 공간을 나눠 써야 하는 게 자연스러워 진다면, 순간순간이 목숨을 건 모험인 그들의 삶에 조금의 위로가 될지도 모르겠다. 이 땅위의 모든 구석구석 전부를 꼭 사람만 편히 사용해야 하는 권리가 우리에게 있을까. 그 권리는 누가 누구에게 부여했는지, 그럴 권리가 없다면 왜 모두 그 권리가 있는 듯 행동할까. 사람과 마주쳐도 데면데면 쳐다보다 자기 갈 길 가거나 머물고 있는 곳에 가만히 있는 개의 나라. 언젠간 내가 사는 곳도 모두가 각자의 평화를 누리는 곳이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