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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지이 Dec 22. 2021

너를 위한 집을 짓는 마음으로 이름을 짓다

너의 이름은 무늬

너를 위해 집을 짓는 마음으로 이름을 짓다. 

 




귀엽지만 실은 온 몸으로 긴장 경계중이었던 어설픈 시절의 무늬

길에서 발견되었던 당시 무늬는 인식표와 등록칩이 없었다. 어느 누구의 '물건'이나 '재산'이 아닌 상태라 인간이 만든 질서와 체계에 편입하기 모호한 존재. 언제 사라져도 문제 될 게 없는 흐릿한 존재. 그게 무늬였다.


입양하기 전, 보호소에 입소한 무늬가 펜스가 쳐진 작은 야외 공간에서 걸어 다니는 영상을 봤다. 보호소 직원분들이 씻긴 후 엉킨 털을 거둬내 주신 덕에 털 속에 숨겨두었던 예쁜 이목구비를 드러낸 무늬가 목줄과 리드 줄을 한 채 걷고 있었다. 사람과 발맞춰 걷는 것을 처음 해보는 듯 연신 힐끔 거리며 "거기 사람, 왜 날 따라오죠? 이 치렁치렁 한 건 다 뭐고요?"라 말하는 듯 한껏 어리둥절한 몸짓이었다. 당시 무늬는 미용을 한 흔적도 없었고 길거리 생활을 하는 아이들이 잘 거리는 진드기를 매개로 한 아나 플라스마라는 질병에도 감염된 상태였다. 


여러 정황 상 사람 손을 타본  없는 아이로 추정되었다. 이 아이는 아마 개가 태어나고 사라지는 것에 대해 무지한 집에서 태어나(혹은 태어난 줄도 모르다가) 방치된 후 스스로 어른이 된 듯했다. 그제야 겁에 질린 몸짓과 사람의 손길을 피하는 소극적인 태도에 비해 유독 진하고 깊어 보이는 아이의 눈매가 이해되었다.  

독립투사보다 더한 의지로 식음을 전폐하던 무늬

아늑한 보금자리, 깨끗한 물과 양질의 식사, 사랑을 담은 손길, 신뢰와 연대,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늘 함께하는 삶에 대한 노력과 계획은 몇 번이고 다짐했었다. 반려견을 입양하기까지 남편과 장장 5년을 넘게 고민했기에(무척 신중하기도 했지만, 이때 즈음 우리가 입양을 할 수 있다 납득할만한 환경이 갖춰진 것도 있다.) 그러한데, 막상 입양을 확정한 후 생각지도 못한 고민에 빠졌다. 아이의 이름을 짓는 것 때문이었다. 


좋은 뜻을 담고 있으면서, 부르기도 좋고, 글씨로 써도 예쁘고, 우리가 공유할 삶과도 연관성이 있고, 아이의 이미지와도 맞고. 욕심이 났다. 남편과 나는 둘 다 각자의 이름으로 불린 지금까지의 삶에 만족이 큰 편이었다. 공들인 이름으로 인해 뜻밖의 환영을 받거나 예기치 않은 주목을 받는 게 어떤 기분인지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한 존재를 세상에 내보이기 위해 기울인 가족의 관심과 사랑이 응축된 것, 그 첫출발이 이름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더 집착했던 걸까. 아이가 오기로 한 날 며칠 전부터 자기 전 침대에 누우면 둘이 머리를 맞대고, 혹은 싸매고 종알거리며 다툼 아닌 다툼을 했다. 이것저것 중구난방으로 떠들다 결국 남편과 함께 좋아하는 것, 좋아하는 장소, 좋아하는 단어를 떠올렸고. 핸드폰 메모장에 적은 뒤 추려나갔다. 그렇게 해서 남은 최종 후보들이 이들이었다.

핸드폰 메모장에 열심히 메모하기!

'미소 은새 키키 피비 코튼 나무 소울 냉면 혜화 세화 보름 달 무늬'


둘 다 웃음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니 미소,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을 보며 예쁘다 생각했던 이름 은새, 지브리 애니메이션 마녀 배달부 키키의 주인공 키키, 레전드 시트콤 프렌즈의 주인공 피비, 하얀 모색이 솜털 같아 보여 떠오른 코튼, 햇빛 받아 튼튼하게 쑥쑥 자랐으면 해서 나무, 현재 부모님과 살고 있는 반려견 내 동생 솔이와 사촌이 되니 솔이와 비슷하게 소울(영어로 영혼이란 뜻도 있고), 우리의 소울푸드 평양냉면에 대한 애정을 담아 냉면(음식으로 이름을 지으면 오래 산다는 이야기도 있고), 우리의 대학 새내기 시절 추억의 8할을 만든 곳 혜화, 사랑해마지 않는 제주 동쪽 바다 세화, 온 주민들의 사랑을 받던 예전 동네 편의점의 귀여운 고양이 이름 보름, 엉뚱한 짓을 할 때 아마 지구가 아닌 다른 곳에서 태어나서 그런지도 모른다는 더 엉뚱한 상상을 하며 떠올리곤 하는 곳 달.      


무늬는 우리가 좋아하는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 주인공의 이름인 Moonee를 한글로 적은 것이다. 보통 '무니'라고 표기하는데 한글로도 뜻이 있었으면 해서 영어로 쓸 땐 Moonee로, 한글로는 무늬로 쓰기로 했다. 영화 속 Moonee는 경제적 기반이 부족하고 책임감이 결여된 어린 부모에게 태어나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지 못한 6살 소녀다. 눈치 빠른 처신과 조숙한 언행으로 얼핏 보면 어른스러워 보니지만, 먼 곳에 꼭대기 부분만 겨우 보이는 어트랙션을 바라보며 꼭 한 번 디즈니 랜드에 가보는 소박한 꿈을 품은 영락없는 꼬마 아이다. 사람의 필요에 의해 태어나 사람에게 버림받고 다시 사람에게 거둬지는 아이러니한 유기견의 삶 속에서 무늬 역시 원하던 원치 않던 살아남기 위해 빨리 어른이 되어야 했을 거다. 엉키다 못해 덩어리 져 굳은 털 속에 여린 분홍 속살을 숨진 채로.  

 

"무늬야, 이제 우리 함께 우리 집, 무늬네 집으로 가자."


켄넬은 탈출했지만 짖지도 일어나지도 눈도 안 맞추고 인형처럼 누워만 있던 무늬
잘못한건 없지만 사과할게 무늬야

무늬가 집에 온 첫날, 무늬도 우리도 서로에게 잔뜩 조심스러운 상태였다. 웅크리고 누워 눈동자만 데굴데굴 굴리고 있는 무늬를 쓰다듬으며 괜찮다, 물 좀 마시렴, 편히 누워도 되는데 등을 남편과 번갈아 중얼거렸다. 임보처에서 이곳으로 거처를 옮기고, 켄넬에 들어갔다가 달리는 차를 타고 오는 등 여러 가지 변화가 벅찼을 테니 무늬가 조용히 혼자 쉴 시간을 주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나눈 뒤 방에서 나오려는 찰나, 무늬의 등 위쪽을 봤다. 자세히 보니 온통 흰 색인 줄만 알았던 아이의 등 부분에 서너 개의 크고 작은 베이지 색 '무늬'가 있었다.


"우리 무늬에게...... 무늬가 있어."

무늬의 무늬

이름도 '짓다.' 집도 '짓다.'이다. 무늬가 지금까지 살아온 차갑고 슬픈 세상보다 더 단단하고 큰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던 마음이 무늬의 이름에 담겨있다. 이제 누군가 '무늬~'라고 부르면 포근한 손길이 따르고, 영원히 멈추지 않을 따뜻한 마음이 자신에게 닿을 거라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무늬야. 



"이름이 뭐예요?" 

"무늬예요. 꽃무늬 할 때 무늬."

"어머, 이름이 너무 예뻐요. 무늬야 안녕"


그래도 꼭 한 번씩은 웃어주던 마이 겁보 



� 무늬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mooneethed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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