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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지이 Mar 16. 2022

기다림도 연습이 필요해(2탄)

우리들의 꼬리살랑기념일(Feat. 별다기=별게 다 기념일)

  

� 전편




6월. 아직까지 아침 공기에는 늦봄의 지분이 높지만, 하루아침에 후텁지근함에 잠식당해도 이상하지 않을, 앞 뒤에 선 계절끼리의 사이좋은 오버랩을 지켜보는 시기였다. 무늬와 아침 산책을 마치고 들어왔지만 샤워를 할 만큼의 후끈한 열기가 몸에 베이진 않았다. 일요일만큼은 남편과 한껏 게으른 브런치를 먹곤 했다. 이미 비운 식기를 식탁 위에서 차곡차곡 쌓아 놓았지만 벌떡 일어나서 치우지 않은 채, 적당히 허물어진 자세로 각자 핸드폰을 보며 성긴 대화를 이어가는 시간. 그 전과 변한 게 있다면 자주 눈으로 무늬를 살핀다는 것과 무늬 기지개 켜네. 무늬 뒷발로 관자놀이를 긁네. 무늬 하품하네. 무늬 공 가지고 노네. 와 같이 대화의 맥락과 관련도 없고 별스럽지 않은 무늬의 행동을 생중계하며 키득거린다는 거.


환기를 위해 열어놓은 거실 창 틈으로는 주말을 맞이한 도시 특유의 느긋한 소음이 들어오고 있었고, 창 밖을 바라보고 엎드려 있던 무늬의 귀는 그 소음의 크기에 따라 세모였다 동그래졌다 모양을 달리했다.

 

거실을 향해 앉아 있던 내가 먼저 무늬의 움직임을 알아챘다.


"돌아, 무늬가 우리 쪽으로 오고 있어."


거실 창가 쪽에 있던 무늬가 슬금슬금 거실을 가로질러 우리가 있는 주방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왜냐하면 지금껏 우리 셋이 한 공간에 있는 방법은 대개 이러했기 때문이다. 보통 나와 남편은 테이블에 마주 보고 앉거나 소파에 나란히 앉아 꽁냥거린다. 그럼 무늬는 우리가 한눈에 들어올 정도의 거리에 엎드리거나 누워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 쪽으로 오라고 불러도 오지 않았고, 좋아하는 간식으로 꼬셔도 오지 않았다. 어쩌다 우리가 조금 큰 소리를 내거나 쿠션을 떨어뜨리는 등 무늬 기준에서 크다고 느낀 동작을 하면 더 멀찌기 도망가 버리기도 했다. 언젠간 오겠지. 무늬가 오고 싶을 때 오겠지 라는 마음으로 그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혹시 그날이 오늘인 건가?

   

'너네 무슨 일이야? 알려줘. 나도 알고 싶어.'


꼬리 살랑 기념일


궁금한 얼굴이었다. 우리가 앉아있는 공간이, 혹은 우리가 먹고 있던 게, 혹은 우리가 하는 이야기가, 혹은 그냥 우리가. 핸드폰을 아주 조심스럽게 들어서 다가오는 무늬를 찍었다. 이 순간이 너무 소중해 두고두고 꺼내보게 될 거란 걸 직감했다. 즐거워 보이는 얼굴이지만 아마 무늬는 모든 걸 건 선택이었을 거다. 길에서 살아온 이 아이의 최대 무기는 오래 참고 기다리는 신중함이었으니. 아마 숨도 고르며 조심스럽게 쉬었을 것 같다. 무늬가 애써 낸 용기를 내 사소한 행동(기침이나 재채기 같은 거)으로 망치고 싶지 않았기에. 거실 쪽을 등 지고 앉아있던 남편도 같은 생각이었던 것 같다. 마치 이 순간을 위해 키워온 듯한 민첩함을 인생 최대치로 발휘해 상체는 고정하고 목만 뒤로 돌렸다. 둘 다 조심스럽게 무늬를 바라봤다. 남편 발밑까지 온 무늬. 남편이 손을 내밀었다. 무늬는 킁킁 거리며 남편 손 냄새를 맡더니 가만히 발아래 앉아 우리를 올려다봤다.  


어느 날 갑자기 말랑 콩떡 같은 얼굴을 하고는 불쑥 우리 사이의 거리를 좁혀버리는 이 아이. 그렇구나. 또 한 발 늦은 깨달음이 마음에 따라붙는다. 무늬와 나와 남편. 우리 셋의 관계에서 우리가 할 일이라고는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면 되는 일(시쳇말로 '존버'라고도 한다.)이었다. 무늬의 도전은 알아보기 힘들지만 매일 매일 진행중이었다. 실패와 연습을 반복해 1mm 정도씩 우릴 향한 마음을 열고 1cm씩 우리에게 다가오는 연습 중이었다라고 봐야 한달까. 던져지다시피 한 이 세상에서 비록 한번도 싸운 적은 없지만 모든 것들과 화해를 해야만 하는 평화주의자 무늬를 위해, 매일 조금씩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무늬는 꼬리를 살랑인 이 날처럼 언젠가는 다른 반려견 처럼 달려와 안기고, 품 안에서 새근새근 잠들고, 눈을 맞추며 함께 나란히 걸어주겠지. 아무렇지 않은 날, 아무렇지 않게 성큼 다가와 우리의 온 마음을 흔들 거다. 더 오래 걸려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시간은 변하지 않을 마음으로 무장한 우리들의 편이니.


2020년 6월 12일, 이 날은 우리들의 꼬리 살랑 기념일이 되었다.

  

꼬리 살랑 기념일, 그날의 인스타와 함께 기뻐해 주던 무늬의 다정한 인친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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