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몇년간 살아온 내 방을 마침내 아끼게 되었다. 요즘엔 매일 아침 정갈히 침대를 정리하고 매일 밤 좋아하는 초를 켜곤 하루를 마무리 짓는다. 그런 기억들이 쌓인 덕분일 것이다. 공간은 주 생활자가 어떤 시간을 보내는 지에 따라 단짝보다 더한 친구가 될 수도, 먼 거리를 두고 싶은 사람이 될 수도 있었다.
일 년간의 자취 생활로 잠시 멀어져있던 사이 공간에 배어있던 얼룩덜룩한 감정들은 투명에 가까운 농도가 되어 있었다. 여전히 남아있는 감정들은 긴 시간 배어버린 만큼 천천히 풀어나가야 할테다. 대신 그간 발견한 좋아하는 것들로 이 곳에서 보내는 시간을 다시 채워나가기로 마음 먹었다. 좋아하는 향과 책과 음악과 행동들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덕분에 새로운 경험들이 이 공간에 스며 드는 것을 느낀다. 가끔 나의 변덕스러운 마음이 다시 예전처럼 크게 울렁거릴 때가 있는데, 놀랍게도 어느새 나보다 더 성숙해진 공간이 그런 나를 묵묵히 지켜봐주었다. 떠나지 않을 무언가가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었다.
이젠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 어딘가로 떠나지 않는다. 나를 채워줄 수 있는 무언가가 세상 어딘가엔 존재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누군가를 찾아 헤매지도 않는다. 방황하는 열정이 줄어든 딱 그만큼 나는 스스로에 대해 인정하게 되었다. 소란이 잦아든 마음에는 단단한 고요가 찾아왔다. 지겹도록 싸우다가 일순간 서로에 대해 내려놓게 된 부부처럼 말이다. 쉼없이 쏘다니던 내가 종종 그립지만, 나의 방 안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지금의 나도 괜찮다.
거울 같은 나의 방은 나와 함께 컸구나. 내가 먼 곳으로 떠났다 돌아와도 너는 여전한 모습으로 나를 맞아줄거지. 너를 마음으로 아낄 수 있게 되어 정말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