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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삶시 세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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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도 Oct 03. 2022

애증의 공간

십 몇년간 살아온 내 방을 마침내 아끼게 되었다. 요즘엔 매일 아침 정갈히 침대를 정리하고 매일 밤 좋아하는 초를 켜곤 하루를 마무리 짓는다. 그런 기억들이 쌓인 덕분일 것이다. 공간은 주 생활자가 어떤 시간을 보내는 지에 따라 단짝보다 더한 친구가 될 수도, 먼 거리를 두고 싶은 사람이 될 수도 있었다.


일 년간의 자취 생활로 잠시 멀어져있던 사이 공간에 배어있던 얼룩덜룩한 감정들은 투명에 가까운 농도가 되어 있었다. 여전히 남아있는 감정들은 긴 시간 배어버린 만큼 천천히 풀어나가야 할테다. 대신 그간 발견한 좋아하는 것들로 이 곳에서 보내는 시간을 다시 채워나가기로 마음 먹었다. 좋아하는 향과 책과 음악과 행동들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덕분에 새로운 경험들이 이 공간에 스며 드는 것을 느낀다. 가끔 나의 변덕스러운 마음이 다시 예전처럼 크게 울렁거릴 때가 있는데, 놀랍게도 어느새 나보다 더 성숙해진 공간이 그런 나를 묵묵히 지켜봐주었다. 떠나지 않을 무언가가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었다.


이젠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어딘가로 떠나지 않는다. 나를 채워줄  있는 무언가가 세상 어딘가엔 존재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누군가를 찾아 헤매지도 않는다. 방황하는 열정이 줄어든  그만큼 나는 스스로에 대해 인정하게 되었다. 소란이 잦아든 마음에는 단단한 고요가 찾아왔다. 지겹도록 싸우다가 일순간 서로에 대해 내려놓게  부부처럼 말이다. 쉼없이 쏘다니던 내가 종종 그립지만, 나의  안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지금의 나도 괜찮다.


거울 같은 나의 방은 나와 함께 컸구나. 내가 먼 곳으로 떠났다 돌아와도 너는 여전한 모습으로 나를 맞아줄거지. 너를 마음으로 아낄 수 있게 되어 정말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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