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것들은 참 잊기 쉽다. 꼭꼭 씹어먹지 못해 크게 탈이 났다. 근래에 찬 음식을 많이 먹은 것도 원인일 것이고 급해진 마음도 이유일 것이다. 아침부터 회사에서 구역감과 어지러움에 하루 종일 화장실을 들락날락거렸다. 결국 팀장님께 이른 퇴근을 부탁드렸다. 천근 만근한 몸을 이끌고 겨우겨우 병원에 갔다. 위에 소화하지 못한 것들이 쌓여 담적이 쌓였다며 며칠간 흰 죽을 먹으며 경과를 지켜보자 하셨다. 병원에서 뜸과 침을 맞아도 나아지지 않아 택시를 잡아 실려가듯 집으로 왔다. 옷이 너무 무거워서 옷만 겨우 갈아입고 있는데 이 와중에 오늘 해야 할 일을 다 못한 스스로를 압박하고 질책하는 마음속의 나를 발견했다. 나 정말 나한테 너무한다. 불 꺼진 방에서 나는 어린아이처럼 웅얼대며 울었다. 그동안 아마 나도 모르게 참아왔을 말들을 무의식중에 토해냈다. 더는 이렇게 안 살 거야... 이런 식으로 살진 않을 거야... 나는 어린 아이로 돌아간 것처럼 엉엉 울며 주척주척 이부자리에 누웠다. 그날은 깨지 않고 열 시간을 내리 잤다. 다음날 출근 전 습관처럼 아침 강의와 책을 읽으려고 하는데 어젯밤 아이같이 울던 내가 떠올랐다. 더는 해내야만 한다는 알 수 없는 의무감에 스스로를 압박하지 않고 싶었다. 나는 핸드폰을 집어넣었다.
집에서 회사까지 가는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첫 출근할 때 꽁꽁 얼어붙어있던 공기가 어느새 많이 풀려 있었다. 그래도 아직 겨울은 겨울이다. 내놓은 맨 손이 굽어감을 느끼며 주머니에 손을 넣고 천천히 걸었다. 걸음도 마음도 홀가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