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삶시 세끼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이도 Sep 10. 2023

심야의 강아지 선생님

늦은 밤 영화를 보고 내려오는 길이었다. 털이 덥수룩이 자란 강아지가 목줄도 없이 영화관 앞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와 똑 닮은 모습의 주인이 근처 벤치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모바일 게임을 하고 있었다. 악 강아지, 인사해도 돼요? 그러든지 말든지 주인은 관심이 없어 보였다.


강아지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길에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스크래치가 잔뜩 나서 쉽게 반짝이지 않을 눈을 가지고 있었다. 집에서 키우는 동물에게서는 보기 어려운 눈빛인데, 마음에 여러 의문이 올라오는데 그가 희한한 리듬의 발걸음으로 겅중거리며 다가왔다. 세발이다. 조금 놀랐지만 직전에 영화에서 본 내용이 더했기 때문에 이내 그럴 수도 있지 싶었다. 나를 반가워하는 게 분명하면서도 또 경계하고 관찰하던 강아지는 어느 지점에서 내게 다가오기를 멈췄다. 그리고 그의 고개와 몸짓이 아주 조심스럽게 내 손이 있는 쪽을 향해 기울어졌다. 딱 거기에서 멈춘 것이다. 애정을 보채지도 않고, 조급해하지도 않고, 상대방의 의사를 차분히 기다리는 그를 보며 나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섣불리 기대했다가 실망하지 않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태도를 찾아낸 강아지라니. 이런 마음을 익히기까지 너는 어떤 시간을 겪어온 걸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애정을 바라는 자신의 마음을 인지하고 젠틀하게 제 욕망을 표현하고 있었다. 정말 용기 있는 생명체다. 그대가 사람보다 낫네요. 존경의 마음을 담아 머리를 조심스레 쓰다듬으니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양쪽으로 살랑거리며 저었다. 방치된 듯 뻗쳐 자란 털이 기름져 뻑뻑했다.


“아이 예쁘다, 세상에 이렇게 귀여운 강아지가 어디 있어요? 세에상에 이런 사랑스러운 강아지가 어디 있어요?”


동시에 나는 속으로 말했다.


‘집에 가서 아빠한테 꼭 샤워시켜 달라고 해. 예쁘게 털 깎아달라고 해. 이렇게 오밤중에 말고 한낮에 산책하고 싶다고 해. 네가 얼마나 기품 있고 사랑스러운 개인지 더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게.’


얼마 예뻐해주지도 않은 것 같은데 그는 이쯤이면 만족스럽다는 듯 자기 주인의 곁으로 돌아갔다. 자리에서 일어나 강아지와 그 주인에게 작게 목례했다. 건강하세요. 주인은 처음 봤던 그 모습에서 미동 하나 없었다. 낮보다 한 발자국 먼저 가을이 온 바람을 맞으며 버스 정류장을 향해 걸었다. 다행히 막차가 남아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손에 뻑뻑하게 묻은 강아지 기름이 방금 만난 그 아이를 계속 떠올리게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빈 공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