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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도 Sep 18. 2021

취향에 대하여 2

계피와 시나몬의 계절

가을이 돌아왔다. 태생이 얼죽아라고 자신했는데 올해부터 한 수 접었다. 뼈가 시리기 때문이다. 찬바람 부는 아침저녁마다 몸을 따뜻하게 덥혀줄 음료 한 잔이 절실하다.


손발가락의 말초신경 저 끝까지 혈액을 돌려주는 생강차도 사랑이지만, 쪼글쪼글 동그라미 두어 개 동동 띄워진 대추차도 훌륭하지만. 한겨울을 위해 아껴두고 싶다. 살짝 무겁게 느껴지기도 하고 말이다. 역시 요즘 같은 초가을엔 애플 시나몬 티백이 제격이다.


애플시나몬티

뜨거운 물에 담그면 맑은 적갈색의 수색이 우러나온다. 동시에 주변 공기가 사과 계피향을 머금은 수증기로 채워진다. 버터 한 스푼을 떨어뜨린 것처럼 적당히 묵직한 이 무게감이란! 가을의 마르고 찬 공기가 느껴지는 계절엔 파블로프의 개처럼 이 향이 떠오른다.


이 차를 마실 때 혼자 정해놓은 룰이 하나 있다. 반드시 커다란 머그잔에 우려내야 한다는 것이다. 티백 위로 따뜻한 물을 부은 후 양손으로 머그컵을 감싸 쥐어서 차의 온기와 점점 진해지는 향을 함께 느껴야 한다. 잔의 온기가 전해지는 것부터가 맛의 시작이라 믿고 있어서다.






한번 뿌리내린 취향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내겐 민트와 생강이 그렇고 계피가 그렇다.


우리의 취향은 어디에서 오는가? 좋아하는 마음에서 온다. 내게 무언가를 먹고 마신다는 건 다양한 감각들을 누릴 수 있는 기회여서 좋다. 눈으로 보고, 향을 맡고, 맛을 보고 씹는 소리를 듣고 질감을 느끼는 미각을 가장 중점에 둔 종합 예술 같달까. 또 혼자 식사를 하다 보면 적당히 끼니를 때우기 일쑤인데, 감각을 사용한 식사의 만족감은 허기를 채우는 식사로부터 받는 것과는 에너지의 질적으로도 양적으로도 분명 다르다. 아마 그 차이는 내가 지금 무얼 먹고 있는지에 대한 지각과 감각의 깊이에 달려 있을 것이다.


감각(感覺)과 지각(知覺)에서 오는 충만함을 자주 맞이하고 싶다. 저 두 단어로 미루어보아 충만함은 깨달을 각(覺) 자와 연결되어 있는 듯하다. 무엇을 깨달을지는 나의 직관과 해석에 달렸으니, 이미 알고 있다 믿는 것들을 다른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는 유연함과 아직 보지 못한 세상을 향해 마음을 열어둘 용기를 품고 살아가길 소망한다.






물음표를 던져 느낌표를 낚아 올리는 은 항상 두근두근하다. 그래서 말인데 애플 시나몬티에 통후추를 살짝 갈아 넣으면 놀랍도록 어울립니다. 통후추 향이 디저트 이미지가 강한 애플 시나몬의 메인 디쉬로서의 잠재성을 열어줌. 진지하게 맛있으니 궁금하신 분들은 시도해보시기를(영국 미각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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