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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삶시 세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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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도 Jul 15. 2021

토마스고 나발이고

"굿모닝."


이 층 침대가 다닥다닥 붙어있는 24인실 호스텔에 배낭을 풀었다. 이곳은 침대 간 간격이 고약할 정도로 좁아서 당장 고개를 돌리면 당황스러울 정도로 맞은편이 가까웠다. 토마스는 바로 그 옆 베드에 배정된 친구였다. 아무리 똑바로 누워 잠에 들어도 매일 아침마다 그와 눈이 마주치는 것이 숨 막힐 정도로 어색했는데, 그는 늘 이불속에서 눈만 빼꼼 내민 채 인사를 건넸다.


혼자 온 여행자들이 그렇듯 우리는 쉽게 친해졌다. 요리에 필요한 마늘 몇 쪽이나 이 동네의 맛있는 커피집 리스트 등을 주고받으며 말이다. 함께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이런저런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오갔다. 대개 지나온 관계와 삶에 대한 고민이었다. 그런 대화들을 나누는 중엔 그가 어디에서 왔건, 무엇을 하고 있건, 성별과 나이가 어떻건 중요하지 않았다. 지구 절반을 돌아 도착한 도시 위에서 만난 타국의 낯선 여행자가 마냥 낯설지만은 않았다.






여행은 익숙한 장소에서 나를 분리시키는 행위다. 저마다의 이유로 우리는 종종 자발적 아무개가 되곤 한다. 그러다 다시는 마주칠 일 없을법한 누군가를 만나면 제 속 이야기를 툭 터놓게 되는 것은 왜일까. 또 기꺼이 서로의 대나무 숲이 되어주는 이유는. 떠나오는 것이 익숙한 세상과 나를 분리시키는 일이라면 대화는 낯선 세상과 나를 연결짓는 일이다.


당시 사대주의에  그대로 절여져 있던 나였다. 이곳이 아닌 어딘가에 지금보다  특별한 것이 존재하리라는 믿음이었다. 그러나 새로움을 쫓아 떠나온 여행도 익숙해지는 순간 일상이 되어버리는 것처럼, 수많은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 우리는 각기 다른 사람들이면서도 같은 인간이라는 것을 느꼈다.


더 가자면 생이었다. 이 뿌리 깊은 공통점으로 인해 우리는 종래에 같은 서로를 여러 이유로 좋아하고 또 미워한다. 타고난 지리적 특성 때문에 가지고 있는 자원이, 환경이, 성격과 문화와 가치관이 비슷하거나 다르다는 점을 이용해 각자의 이득을 위해 적극적으로 서로를 도구화하기도 한다. 세상의 이치가 그렇다고는 하지만 그 속에서 너와 나의 공통점을 하나하나 꿰어가며 우리의 세상은 연결되고 확장한다. 여행은 모두가 하나의 공동체임을 부분적으로 실감하는 일이다.






닷새간의 함께하는 여행을 마치고 우리는 터미널에서 헤어졌다. 다시 혼자가  버스 안에서 새삼 홀로 여행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어색하게 느껴졌다. 누구든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 새로운 목적지로 내달리는  위에서 청승을 떨었지만 다시 나에게 집중할 시간이라는걸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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