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랫동안 이방인처럼 살았다고 생각한다. 친할머니와 둘이 살다 본가로 넘어왔을 때부터 나는 묘하게 섞이지 않는 기름처럼 살았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도 사람들 사이에서 안정감을 느낄 때면 내심 기쁘면서도 익숙지 않음에서 오는 불편감을 떨치기가 쉽지 않다.
보편적인 안정을 불편해하다니. 누군가의 눈에 비친 나는 이상한 사람이었고 괴짜였다. 그들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이렇게 생겨먹은 것을 어째. 기름처럼 미끌미끌 떠다니는 사람, 마음을 잘 안여는 사람, 벽이 느껴지는 사람, 긴 시간이 흐르며 나는 내게 그런 면이 있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일평생 그런 건 아니다. 살다 보니 이런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들도 만났다. 주로 어딘가에 속하지 않은, 집단과 집단의 경계에 서있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을 이방인이라 부르겠다. 주로 여행자들이었다. 타지에서 온 유학생들 혹은 외국인들도 그러했다. 그들과 함께 있거나 내가 그럴 때 마음이 편했다. 그들과 함께 어울리면서 내 모습 그대로 존중받는 경험이 쌓여갔다. 어느 순간부터 어쩌면 내가 그냥 나여도 괜찮을 것 같다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아주 오랫동안 내가 틀린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원하는 모습이 아니어서 받아들여지지 못했던 기억이 아직도 종종 내 안에 그림자를 만들어낸다. 스스로 결함을 만들어서라도 그들에게 받아들여지기 위해 애썼지만 애초에 반드시 고쳐야 할 결함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의 모든 노력은 헛수고로 돌아갔다.
선 안팎이 아닌 그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배운다. 나는 나로서 살아가면 된다. 경계 위에 서있다 해서 그들의 존재가 틀린 게 아닌 다른 것처럼, 다들 그저 제 삶을 살아갈 뿐인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선은 사라지고 사람만 남았다. 그들이 알려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