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대하여_

'Flower in Snow', OCTOBER

by 레드오렌지

눈을 기다리고 있다. 하얀 눈을 기다리고 있다. 하얗고 포근한 눈을 기다리고 있다. 하얗고 포근하며 차가운 눈을 기다리고 있다. 공기조차 희박한 그 높디높은 하늘의 조그마한 먼지 한 톨에 엉거주춤 달라붙은 물방울. 끝내 손을 놓지 못하고 먼지와 함께 얼어붙어 완성된 그 아름답고 투명한 육각형의 프랙탈 무늬를 기다리고 있다. 적당히 넓은 도로 위 소복하게 내려앉은 눈밭 위를 한걸음 한걸음 즈려밟고싶다. 옷깃에 겨우 매달려 서로 뭉쳐있는 한 두 개의 결정을 만나고 싶다. 그리고 회색 빛깔의 하늘을 향해 두 손 뻗고 싶다. 닿으면 금세 녹아버리는 그 눈을 맞고 싶다.




생각해보라. 아무도 없는 바다에 내리는 눈을, 근처에 가장 가까운 인간이 수직 상공의 국제 우주정거장에 살고 있는 우주인일 정도로 세계로부터 고립된 그곳의 눈을. 그 어떤 인간도 관찰하고 있지 않은 그곳에 고요히 내리는 눈, 상상하면 왠지 쓸쓸하다. 이리저리 흔들리지 않고 일관된 속도로 흐르는 바람에 같이 흩날리는 하얀 눈가루와 결국 바다에 닿자마자 녹아내려 파도에 덮쳐지고 마는 그 풍경은 한편으로는 장엄하고 조금은 무섭기까지 하다.


상상해보라. 어둑어둑 해가 저무는 산골에 홀로 서있는 나무 산장. 조그맣게 타오르는 불꽃을 담은 화로와 삐걱거리는 나무의자에 기대앉아 커피 한잔에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 타닥거리는 나무 장작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에 섞여 들어오는 커피 냄새가 코 끝을 자극한다. 소복이 쌓여가는 하얀 눈. 자박자박하며 누군가가 눈길을 걸어오는 소리와 어디선가 들리는 개 짖는 소리. 갑자기 불어오는 돌풍에 크게 흔들리는 숲 속 나무에서 철썩이며 들려오는 오싹한 소리까지. 포근하고 무거우며 따뜻하고 동시에 털끝이 곤두선다.


눈이 가진 매력이 이런 것이다. 어두운 포근함. 차가운 따뜻함. 엮일 수 없는 분위기들이 눈이라는 매개로 한 자리에 엮인다. 그 세기말적 분위기 속에서 한 줄기 희망 섞인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그런 그림이 그려진다. 한껏 설렘을 안고 여행을 떠난 가족들이 펑펑 내리는 눈 탓에 하고 싶었던 놀이를 하지 못하게 된 아쉬운 상황에서도 "그래 눈 때문에 어쩔 수 없지, 그래도 눈이 오는 걸 보니 좋다" 할 수 있는, 아쉬움 속 즐거움까지 조성하는 것이 눈이다. 그 순백의 눈은 앙상한 나뭇가지로 겹쳐진 뾰족한 숲마저도 찬란하게 굴절하는 태양빛으로 은은히 빛나게 한다.


자작나무 숲, 인제 / 크라우드 픽 제공


중학생 때, 현장학습이 있는 날이었다. 그날은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렸는데, 집을 나서기 전 본 뉴스에서는 '하늘에 구멍이 뚫렸습니다, 오늘은 대중교통을 이용하세요' 같은 안전 안내 멘트가 꾸준히 흘러나왔다. 적당히 어머니가 챙겨주신 코트에 부츠, 가방을 메고 집을 나왔다. 현장학습 장소는 집에서 가까운 어린이대공원 소방안전체험관. 비교적 가까운 거리였기에 친구를 만나 버스를 타고 체험학습을 떠났다. 버스를 타고 가는 길에도 눈은 계속 내리고 있었고 내리고 나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끊임없이 내리는 눈에 남색 코트는 이미 하얗게 칠해졌고 부츠는 젖어버리고 말았다.


여차저차 체험학습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버스에 탔다. 교통카드를 리더기에 찍으려는 찰나, 리더기에서 비빅 거리는 소리가 나오며 “잔액이 없습니다.” 하는 것 아니겠는가. 당황했지만 안 그런 척 지갑을 꺼내 현금을 찾아보았지만, 아뿔싸! 지갑에도 현금이 없는 상태였다. 옆에 있는 친구에게 한 번만 태워달라 부탁했으나 참 우연인지 필연인지 그 친구마저 잔액이 없었다. 꼼짝없이 이 폭설 속에서 집까지 걸어가야 할 판국이었다. 당시에는 스마트폰이 보급이 안된 때였던지라 어느 쪽으로 걸어가야 집이 나오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집에 가야 했기에 다른 대안을 찾아보기로 했다.


현장체험학습 장소가 어린이 대공원 인근이었던 것은 천운이었다. 그 근처에 둘째 이모 댁이 있었기 때문이다. 친구와 나는 그곳으로 가서 도움을 요청하기로 했다. 체험학습 장소는 어린이 대공원 정문이었고, 둘째 이모 댁은 어린이 대공원 후문이었다. 다만 그 길을 에둘러 가기에는 너무나 멀었기에 우리는 대공원을 가로지르기로 결정했다. 일단 마음은 굳혔는데, 출발하려 하자 눈앞에 보이는 건 허리 높이까지 오는 눈이었다. 당시 어린이 대공원이 폭설로 인해 사실상 통제 상태였던지라 제설에 투입된 인원도 없었다. 그야말로 어린이 대공원 전체가 눈으로 뒤덮인 상황, 우리는 서로를 쳐다보고, "이야, 이게 모험인가?" 하는 표정으로 길을 떠났다.


문제는 정문에서 후문으로 가는 길을 모른다는 것이었다. 어린이 대공원에 자주 와보지 않았기에 그곳의 지리를 알리가 만무했다. 갈수록 눈은 쌓여만 갔고, 날은 추워져 갔다. 손은 이미 시뻘겋게 달아올라 주머니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래도 일단 앞으로 가다 보면 뭐라도 나오지 않겠나 싶어 눈을 헤치며 나아갔다. 중간중간 그래도 아무도 없는 이 넓은 공원에 눈이 한가득 쌓여있는 게 재밌다며 몸을 날려 자국을 만들기도 했고 눈사람도 만들면서 놀았다. 그렇게 어느 정도 걸었을까, 다행스럽게도 어린이대공원 지도가 그려진 표지판을 만날 수 있었다. 어린이 대공원의 거의 중간지점이었는데, 온 만큼만 더 걸으면 후문에 도착한다 생각하니 정말 기뻐서 눈을 이리저리 파헤치고 한껏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는 후문에 도착했고 그곳에서부터 제설된 길을 따라 둘째 이모 댁에 방문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집까지 자가용으로 태워줄 수 있느냐 부탁했지만 아무래도 이모 댁이 위치한 곳이 고지대이고 그곳에서 큰 도로까지 내려가는 길이 꽝꽝 얼어붙어 있던지라 자가용으로 태워주기는 어렵다는 답변을 받았다. 대신 우리는 교통카드를 충전하고도 한참 남을 현금을 받았고, 마침 고난의 행군에 배가 고팠기에 적당히 간식거리를 얻어먹고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는 그 고생을 하고 돌아와서도 눈이 오는 상황 자체가 너무나 즐거웠다. 남들이 보면 고난의 행군이고 하지 않아도 될 고생을 눈 때문에 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 시절의 나에게는 모험이었다. 그 생각은 한참 나이를 먹은 지금도 여전하다. 여전히 그때를 생각하면 설레고 즐겁다. 어머니 품에서 벗어나고 처음 겪어보는 시련이었기에 더욱 그렇다. 낯선 환경에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눈을 헤쳐나간다는 경험이 어디 흔한 경험이겠는가.


지금은 가끔 눈이 오면 도로가 얼어붙어서 운전도 못하고, 다 녹아버린 질척거리는 검은색 진탕에 더러워질 신발을 생각해 짜증 내는 나를 발견하면 흠칫 놀라기도 한다. 그래도 한때는 펑펑 내리는 눈을 보면 한없이 좋아했는데, 뒷 생각은 안 하고 기뻐했는데 생각하면 아쉽기도 하다. 물론 여전히 눈을 좋아한다. 마치 눈이라는 존재가 피터팬이 되어 내 마음속 한 구석에 살아있는 듯하다.


그래서 여전히 눈을 보고 싶다. 하얀 눈을 보고 싶다. 하얗고 포근한 눈을 보고 싶다. 하얗고 포근하며 차가운 눈을 보고 싶다.




얼마 전 나를 눈의 고장으로 이끌었던 소설의 첫 문장을 소개하며 글을 마친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설국' 中, 가와바타 야스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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