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에 대하여_

'il porco rosso', Joe Hisaishi

by 레드오렌지

여름, 한없이 쏟아지던 장마는 드문드문 내리는 소나기를 남기고 그 존재를 감추었다. 여전히 뜨거운 낮, 조금은 서늘해진 밤. 나는 그 서늘한 밤을 기다리고 있다. 지금은 오후 6시. 바다를 바라본다. 어느덧 낙조가 흐른다. 이곳은 진해만, 바다에는 수평선보다 섬이 더 많이 보인다. 낙조는 그 섬 사이로 흐른다. 주황빛 노을은 잿빛 바다로 서서히 흐르다 섬에 부딪혀 파도를 만들어낸다. 주황빛 파도, 어쩌면 붉은색. 그런 바다를 보며 사람들은 진해만을 걷는다. 저 멀리 사람들이 보인다. 달리기를 하고 있는 사람, 연인인 듯 손잡고 걸어가는 사람, 부모와 함께 뛰어노는 아이들. 저 주황빛 파도는 그 모두의 그림자를 품고 간다. 그림자는 저 멀리 항구로 향한다. 속천항이다. 저곳에 등대가 있었나? 하얀색 등불이 빛을 냈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다시 시선을 바다에 돌린다. 주황색 낙조는 어느새 잿빛이 되었다. 오늘 하루 뜨겁게 타오르던 해가 졌다. 기다리던 서늘한 밤이 이제 곧 찾아올 것이다.




낭만이다. 낭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지금 보는 이 풍경, 분위기, 그리고 이 시간, 곧 찾아오는 서늘한 밤 까지. 언제부터인가 낭만을 찾고 있다. '아, 낭만을 찾아야겠다.'하고 시작한 건 아니다. 그저 어느 순간 낭만을 찾게 되었다. 멋진 풍경을 보고 있을 때, 좋은 음악을 듣고 있을 때, 편한 사람들과 함께 즐거운 이야기를 나눌 때, 채광 좋은 카페에서 커피 한잔할 때, 가끔은 시끄러운 술집에서 취한 채 몸을 들썩이고 있을 때... 나는 '낭만'을 꺼낸다.


'멋지다'라는 표현이 식상해서 낭만을 쓰게 된 걸까? 낭만 그 자체에 매료된 걸까. "현실에 매이지 않고 감상적이고 이상적으로 사물을 대하는 태도나 심리, 또는 그런 분위기" 낭만의 사전적 정의다. 현실에 매이지 않고, 감상적으로. 어쩌면 매어져 있는 현실의 굴레에 잠시나마 탈피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언제부터였을까, 현실에 매이게 된 것이.




하루하루 이성적인 현실을 살고 있다. 모든 결정 전에는 이성적 판단이 필요하다. 이성이 결여된 판단이 불러올 그 후폭풍이 두렵다. 아무 생각 없이 긁어버린 신용카드가 불러올 다음 달 명세서가 두렵다. 화가 나서 질러버린 격정이 불러올 다음날의 어색함이 두려운 거다. 그래서 매사 이성적으로 옳게 판단한 것인지, 현실적으로 이게 맞는 것인지를 고민한다. 대부분이 공감할 것이다. 현대인에게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눈뜨고 코베이는 세상에서 현실적으로 산다는 게 나쁠 건 없지 않은가.


그런데 가끔은 지겨울 때가 있다. 어쩌면 병에 걸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직업병이라고 할까? 아니지, 이 경우에는 '현실병'이라는 단어가 옳겠다. 현실병에 빠져버리면 삶이 건조해진다. 지금 이 순간의 이성을 놓지 않기 위해 매사 긴장한다. 매사 유불리를 따지게 되는 따분한 삶이 끝내 마음속을 가뭄진 땅처럼 갈라지게 만든다. 건조하고 바스러진 그런 땅에 뿌리내릴 수 있는 건 선인장뿐이다. 척박함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뾰족한 가시를 가지게 된 선인장. 뾰족해진 마음. 언젠가 남을 다치게 할 수도 있는 그런...




그런 병에 앓고 있을 때 가끔 비이성적인 경험을 한다. 그렇게 거창할 것도 없다. 매일 똑같은 사무실에 앉아있다가 퇴근길 바라본 하늘에 뜬 붉은 노을, 또는 황혼. 매일 같은 출근길을 지나다 무심코 바라본 인도에서 본 서로 장난치며 등교하는 초등학생들. 이성적 손익계산뿐이다가 무심코 질러버린 사랑고백 같은 것들... 그렇게 특별할 건 없지만 그럼에도 흔하지는 않은 그런 상황들 말이다.


그것은 가뭄 속 단비처럼 마음속에 내린다. 쩍쩍 갈라져 버린 땅이 생기를 되찾는다. 선인장의 뾰족한 가시를 어느덧 자라 있는 활엽수의 커다란 나뭇잎이 감싸 안는다. 이 순간을 기다려왔는지 모른다. 꾹 참고 견뎌왔던 긴 가뭄의 끝을, 이성과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는 지금을. 그리고 조그만 탄성을 자아낸다.


낭만,

낭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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