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운동하지 않은 죄

발리에서 생긴 일#5. 바투어 화산 일출 트랙킹(상)

by Redpanda

새벽 두 시에 일어나야 한다는 긴장감에 열 뜬 몸으로 밤 잠을 설쳤습니다. 아 괜히 간다고 했나 생각하며 뒤척거렸으나 마음 한편이 설레었습니다.


시간이 되어 리셉션 앞으로 하나 같이 초췌한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숙소에서 픽업될 사람들은 여덟 명 남짓.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픽업 버스를 타고 얼마 가지 않아 한 식당 앞에 내렸습니다. 아침을 먹으라고요.


제가 앉은 테이블의 어색함이 아직도 생각나 웃음이 납니다. 자다 깨서 오밤중에 생판 모르는 사람들과 아침식사를 하려니 여간 이상한 게 아니었습니다. 제 왼편부터 네덜란드에서 온 브람, 영국에서 온 샘, 그리고 캐나다에서 온 자비에 그리고 제가 앉았습니다.


이 시간에 아침 식사해보긴 처음이라며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이름과 국적을 소개했습니다. 발리에서 느낀 건데 혼자 배낭여행 중인 동북아시아 분이 거의 없었습니다. 저 말고는 전혀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제가 태어나서 처음 만나는 한국인이라는 말을 했으니까요. 반면에 서구권에서 배낭여행을 온 젊은이들은 굉장히 많았습니다. 특히 네덜란드에선 발리 여행이 굉장히 유행 중이란 설명을 들을 정도로 네덜란드 사람들을 셀 수 없이 많이 보았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왔다니까 자비에가 어색함을 깨기 위해 한국이라면 거의 접한 적이 없어 김치밖에 잘 모른다고 말을 꺼냈고 저도 사실 캐나다는 메이플 시럽밖에 잘 모른다고 대답했다가 모두 한바탕 웃음이 터졌습니다.


살짝 깐깐해 보이는 표정과 나는 뼛속까지 개인주의야! 를 외치는 것 같던 자비에랑 나중에 방귀까지 트게 될 줄은 전혀 모르고 있었죠.


새벽 두시의 아침식사

자비에가 입 맛이 없다고 팬케이크를 한 조각을 먹는 둥 마는 둥하고 남기길래, 그럼 제가 먹겠다고 했다가 샘과 브람의 말은 않지만 빛나는 눈을 보고 사이좋게 나눠먹었습니다. 자비에랑 다니다 보면 그는 이렇게 자주 음식을 남겼고 저는 그 음식을 먹으며 그렇게... 점점 더 건강해졌습니다. 우는 거 아닙니다. 제 몫만 먹을걸 한국 와서 체중 재보고 충격을 좀 받았습니다.


그렇게 다시 한번 픽업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컴컴한 어둠 속에서 옆자리에 앉은 브람과 더 이야기를 이어나갔습니다. 평생 시골 농장에서 살았다는 브람은 순수한 시골청년의 수더분함이 편안한 친구였습니다. 생각보다 발리가 너무 커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제 말에 브람이 한참을 웃다가 자신의 계획을 말해주었습니다. 자신은 곧 누사 렘봉안으로 떠나며 그곳과 길리 섬들이 제가 생각하는 크기의 섬이라는 것도요.


한참 재잘거리던 것도 시들해지고 비포장 도로에 접어들어 덜컹이는 차 안에서 잠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좀 이기적일 수도 있지만 수면의 세계로 풍덩 뛰어들었습니다. 정말 어마 무시하게 코를 골 것 같다는 예감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차 안에서 잘 때는 입도 쩍 벌리고 자서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것도 압니다. 디멘터의 키스를 받아 영혼이 빨려나간 껍데기처럼 자는 모습에 놀라서 저를 깨운 친구들이 한 둘이 아니었거든요.



어느덧 산 밑에서 차가 멈추고 두 번째 아침식사를 받았습니다. 삶은 계란 하나와 식빵. 자비에는 이것도 먹지 않고 이는 고스란히 저의 배로… 이번에는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사방이 온통 컴컴한 가운데 쏟아질 듯 주렁주렁 열린 별들 아래에서 손전등과 여분의 재킷도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쾌활하게 폴짝폴짝 산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발리섬에서 두 번째로 큰 화산의 위엄을 몰라보고요. 가장 큰 아궁산은 현재 화산활동이 있을 수 있어 잠시 폐쇄되었다 들었습니다.


평생 가까이 운동을 안 하고 살아서 체력이 살짝 걱정이 되었지만, 발리를 오기 전 네 달간 열심히 운동했기에 괜찮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근데 정말 힘들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쉬웠다고 하는 걸 보고 생각해 본 결과, 저만 유독 힘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네 달 운동으론 안되나 봐요. 아 그리고 무서운 게 컸습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길은 점점 좁아졌고 사람들은 일렬로 묵묵히 화산을 올랐습니다. 한데 땅이 전부 푹신한 회색의 화산재와 자갈로 덮여 있어 여간 미끄러운 게 아니었습니다. 재로 만든 산을 오른다는 게 어떤 건지 깨닫자, 내려올 땐 또 어떻게 내려올지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위를 힐끔 올려다보니 꼭대기를 향하는 일렬의 빛이 시커만 정상을 향해 별처럼 총총히 박혀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보통이 아니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근데 또 일주일에 여섯 번을 오른다는 현지 가이드 분들은 쪼리를 신고 오르는 것을 보니 숙연해져서 조용히 걸었습니다.


왠지 도태되기 시작하면 끝도 없을 거 같단 생각에 숨이 차고 발이 미끄러워 온몸이 긴장되었지만 걷고 또 걸었습니다. 산 중턱에서부터는 가이드들이 무리에서 도태된 사람들을 모아서 서있는 게 보였습니다.


제 앞에서 사뿐사뿐 노루처럼 힘든 기색 하나 없이 오르는 자비에와 그 앞에서 심지어 말할 힘이 남아있어 깔깔 웃으며 떠들고 있는 샘과 브람을 보며 이 악물고 따라간 것 같습니다. 한데 정상 거의 가까이에 갔을 무렵부터 진정한 위기는 찾아왔습니다.


정상부의 가파른 산세에 발을 디뎠다 하면 주르륵 미끄러져 내리는 잿더미를 기어오르자니 자꾸만 잘못 디디면 죽는다는 생각이 들어 공포감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몰랐는데 어느새 많은 사람들이 낙오되고 중간에 포기해 주위에 사람도 많지 않았습니다. 어느 포인트에선 어디도 밟을 수 있는 곳이 보이지 않는데 앞의 행렬은 빠르게 사라져 버려 혼자 패닉에 휩싸였습니다. 해는 서서히 떠오를 준비를 하고 있어 회색의 화산을 온통 주홍빛으로 물들이고 있었습니다. 이곳저곳 다른 방향에서 산을 오르는 사람들의 소리가 들리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어서 결국 납작 엎드린 자세로 “Anybody there? 거기 누구 없소”를 애처롭게 외쳤습니다.


그러자 저 쪽 비탈에서 산양같이 날렵한 가이드가 날듯이 뛰어와 제 손을 잡아 주었습니다. 아 나의 구원자. 신이 시여 그에게 축복을.

생애 처음 등산할 때 아빠에게 대롱대롱 매달리다시피 갔던 꼬마처럼 그의 손을 붙들고 따라올라 갔습니다. 정상에 다다라 가이드의 손 끝에서 대롱대롱 딸려 올라오는 저를 보고 몇몇 친구들이 웃으며 사진을 찍을 때야 공포심이 좀 가시며 부끄러움이 찾아왔습니다. 하하 뭐 그럴 수도 있지요. 정상부까지 올라온 사람은 정말 많지 않았습니다. 체력 쓰레기 치고는 인간승리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오늘은 운동을 좀 해야겠습니다. 그때 생각을 하니 다시 얼굴이 화끈해져서 그런 건 아닙니다. 우는 거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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