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모로코의 쿠리야(Korean) - 04. 희로애락 홈스테이
제비뽑기를 한 걸까? 어떻게 배정이 된 건지는 알 수 없으나, 모로코 현지훈련 2주차에 각자의 홈스테이가 배정되었다. 난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로코에서 제일 잘사는 동네에 정말 커다란 집에서 홈스테이를 하게 되었다. 집이 어찌나 큰지 으리으리한 풍채에 기가 눌릴 정도였고, 집집마다 비싼 외제차들이 집 마당에 2~3대씩 있어 아침마다 차 구경을 할 정도로 정말 부자동네였다. 빈곤국일수록 빈부격차가 심하다고 하는데, 이곳은 그 격차가 정말 하늘과 땅 차이 이상이었다.
그러나 보이는 것과는 달리 부자동네에서 홈스테이 하는 나의 실상은 조금 외로웠다.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홈스테이 아주머니 브티하(Btiha)는 일하느라 늘 바빴고, 남편과 딸은 프랑스에서 공부 및 사업을 하고 있어 집에 없었다. 중학생인 아들 알라(Ala)만이 커다란 집에서 혼자 컴퓨터만 하며 지내고 있었다.
게다가 집 안의 샤워기가 고장 나서 세면대에서 머리를 감아야했다. 찬물로 하는 목욕은 기본이고, 매일매일 씻기도 어려운 환경이었다. 아침은 간단한 빵 한조각과 아떼이(모로코 전통 차) 한 잔! 정말 커다란 집이 무색할 정도로 사람 사는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 집이었다. 그나마 아주머니가 일하는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고 종업원 언니들과 이야기할 수 있었지만, 가족들과 어울리는 시간도 함께 지낼 시간도 부족하여 사람 좋아하는 나에겐 많이 아쉽고 서운했다.
사람냄새를 아쉬워하며 외로운 홈스테이를 하면서도 호기심 많은 나는 우여곡절의 사건·사고를 겪으며, 새로운 사람들과의 인연을 만들어가면서 외로움을 덜 수 있었다. 많은 사건들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 기억나는 사건은 홈스테이 이틀 째 되는 날 일어났다.
이날의 하루는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평범했다. 하지만 이날의 사건은 홈스테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발생했다. 학원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때였다. 버스를 타고 홈스테이 아주머니가 알려주신 곳에서 내린다는 것이 그만 비슷하게 생긴 집들 사이에서 길을 잃고 내려야 할 정류장을 지나치고 만 것이다. 뒤늦게 알아챈 나는 서둘러 버스에서 내렸지만 이미 미지의 낯선 곳에 발을 디딘 후였다.
한국에서도 의도하지 않은 사건·사고를 워낙 많이 몰고 다니는 나였지만 모로코에서조차 또다시 겪게 된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건에 한숨밖엔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곧 호흡을 가다듬고 서둘러 집을 찾기 위해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기로 했다. 나름대로 젊은 사람이 영어를 할 줄 알 것이라고 생각하여, 지나가는 젊은 남자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자그마한 키에 착하게 생긴 그는 양손 가득 짐을 들고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맙소사! 그는 데리자(Derija)와 불어만 할 줄 알았다.
‘Oh My God!!! 난 정말 모로코에 온지 2주 만에 모로코 미아가 되는 것인가!’
라는 탄식과 함께 패닉 상태가 나를 엄습해 왔다. 그저 이런 일을 대비하여 홈스테이 집 주소와 근처 건물 이름을 적지 않은 게 후회스러울 뿐이었다.
하지만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포기할 내가 아니었다. 또다시 손짓 발짓에 내가 아는 모든 데리자(Derija)와 불어를 섞어가며 길을 물었다. 그때 마침 기적처럼 내가 홈스테이 하는 집이 모스크와 학교 사이에 위치한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난 이것을 기억해 낸 것만으로도 너무나 다행스럽게 생각하며, 내가 갈 곳을 설명했다. 짧은 불어 실력을 총동원하여 ‘뿌꾸뿌꾸 하우스(크고 큰 집)’와 ‘모스크 우 에꼴(모스크와 학교 사이)’이라는 단어를 반복하자 그는 알아들었다는 듯이 흔쾌히 나를 인도했다.
그러나 안심을 하고 그를 20분 정도 따라간 곳은 물론 모스크와 학교가 있었지만 여전히 낯선 동네임이 확실했다. 그곳은 다른 지역에 있는 모스크와 학교였던 것이다. 그렇다. 대체로 모로코에서는 모스크와 학교가 붙어 있었다. 맙소사! 어떻게 이런 일이. 하지만 모로코에 온지 일주일 된 내가 그 사실을 알 리가 만무했다.
당당히 길을 안내했지만 내가 그곳이 아니라고 하자 길 안내를 해준 그 남자가 오히려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그 사람이 무슨 죄가 있겠는가. 나는 발을 동동 구르며 마지막 구원요청으로 코디네이터 마하(Maha)와 관리요원에게 전화를 했다. 사정을 이야기하고 홈스테이 집주소와 건물이름을 알아 낸 후에 무사히 쁘띠 택시(모로코에서는 지역마다 택시에 색이 정해져있다. 수도인 라바트(Rabat)의 택시는 파란색이다.)를 타고 홈스테이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15분이면 도착할 거리를 고생고생하며 2시간이나 걸려 홈스테이 집으로 돌아온 이날. 양손에 무거운 짐을 들고 2시간가량 자신의 가던 길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면서, 자신도 모르는 길을 묻고 또 물어서 길을 찾아준 헬프 맨 아브둘라(Abudulla)가 너무나도 고마웠다. 국제미아가 될 뻔한 이 일은 홈스테이 생활에 외로워하던 나에게 사람의 따뜻한 인정을 느끼게 해준 너무나 고맙고 감사한 기억으로 남았다. *슈크란.
슈크란(Sukuran) : 데리자로 ‘감사합니다’라는 뜻
이 날 길 위에서의 우연한 만남처럼 언제 어디를 가든, 말이 통하든 안 통하든, 사람의 진심과 따뜻함을 지닌 사람은 있기 마련이고, 그들로 인해 세상은 멀지만 좀 더 가까이, 그리고 따뜻해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또한 이날의 우연한 만남과 따뜻한 도움의 손길은 아직은 낯선 모로코의 이미지와 모로코 사람들에 대한 나의 생각들을 더욱 좋게 만들어 주었다.
2주 동안 모로코의 부자동네에서 홈스테이를 하면서 커다란 집에서 혼자 사는 외로움도 있었고, 학원 등하교 길에 이런 저런 고생도 했었지만 홈스테이의 브티하(Btiha)아주머니와 가족들이 나의 첫 모로코 인연이기에 더욱 소중했다. 항상 카리스마가 넘쳐 조금은 어려웠지만 내가 한국에 있는 가족들이 보고 싶다고 할 때면 나를 따뜻하게 바라보며 엄마처럼 안아주던 브티하(Btiha)아주머니. 모로코에서의 첫 인연이기에 아쉬우면서도 그리운 감정이 교차한다. 그들이 나에게 좋은 인연이었듯 그들에게도 내가 좋은 인연으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